신설학교로 발령받았다. 신설학교이긴 하지만 설립 2년차인 학교에 문예부가 없다. 국어 선님들도 관심이 없다. 궁리 끝에 문예부를 만들기로 했다. 동아리를 관리하는 학생부에 문의해서 우선 학생을 모집했다. 안내장을 만들어 게시했더니 2학년 6명, 1학년 5명이 찾아왔다.
기대는 어긋났다. 문예에 흥미나 관심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었다. 친구끼리 어울려 좀 이탈하고 싶은 생각으로 온 게 분명했다. 대부분 호기심 차원에서 온 것이지 문학에 재주가 있거나 관심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인터넷 동아리 카페를 만들고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개인 방을 만들어 주고 작품을 올리라고 독려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1년이 지났다. 지역 축제 백일장에서 가작으로 입선한 학생이 있었고 전국규모 환경백일장에서 입선한 학생이 있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동아리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주 만나 작품 토론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학부모도 학생도 관심은 오로지 대학입시에 있으니 어떤 특기적성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1년이 지나고 다시 새 학기가 되었다. 2학년 학생들은 3학년이 되어 더 이상 문예부 활동을 할 수 없다. 2학년 학생들도 기대를 해볼 수가 없다. 우리 학교 문예부 동아리가 발전하기를 바랐지만 마음만 그럴 뿐 학생들을 한데 모으기 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25일 인천에서 전국규모 백일장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새얼학생 어머니 백일장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참가하기로 했다. 국어선생님이 모집한 학생과 함께 우리 문예부 학생도 몇 명이 같이 참석하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내 차에 태워 개최지인 인천문학경기장으로 향했다.
이미 수천 명의 참가자들과 인솔교사, 학부모들로 문학경기장은 북새통이었다. 경기장 내에선 농악대가 운동장을 돌며 공연을 펼치고 하늘엔 애드벌룬이 높이 띄워져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곧이어 내빈 소개가 있었다. 인천시장을 비롯해 대학교 총장, 교육감 후보 등 정계, 학계,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새얼백일장의 위상을 실감했다.
한 달이 지났을까. 결과가 궁금해서 새얼문화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뜻밖에 1학년 최상빈 학생이 산문부 차하로 입선했다. 고등학교부 1978명이 참가한 대규모 백일장 아닌가. 참 대단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아직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생각한다.
비로소 문예부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예부 결성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입선학생을 지켜봐야겠다. 그런 특별한 재주가 있는 학생이 또 학과공부에만 매몰되어 아까운 재주를 사장시킨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특별하게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내가 쓴 책도 주고 좋은 책도 선물할 것이다. 면담을 하여 언제부터 글쓰기를 했는지, 문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고등학교 때 문예부 체험이 그의 인생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나는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다. 문예부학생들을 지도할 시간도 이제 1년이 남았을 뿐이다. 내가 퇴직한 이후에도 다른 교사가 꾸준히 지도하여 인천남동고등학교 문예부가 전통 있는 동아리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 문예부 활동을 했다. 각 대학 백일장에 참가했던 기억과 교지 편집을 하던 기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청소년 시절의 그런 경험이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글을 쓰자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 경험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내가 문인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며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나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문학의 덕택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나는 글을 써서 나의 길을 밝힐 것이다. 문학을 모른다면 그 영혼이 얼마나 삭막할까. 문학은 영혼을 살찌우고 향기가 배어들게 한다. 한편의 좋은 글이 우리의 영혼을 얼마나 아름답게 해주는가. 나는 청소년들이 좋은 문학작품을 자주 접하고 그 문예의 향기를 맡으며 성장하기를 진실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