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교과서에 실렸다. 그것도 두 군데나 실렸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생활국어(새롬교육, 권영민 외)에 ‘조개껍질과 조개껍데기’라는 글과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대교출판사, 박경신 외)에 ‘차로와 차선, 구별하여 쓰자’라는 글이다.
두 글은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고 있는 언어에 대해 지적하고 올바른 언어 사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편집자는 학습자가 글을 통해 우리말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정확한 어휘 선택으로 올바른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 수록한 듯하다.
내 글은 금년에 첫 선을 뵈는 검정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지금까지 국어교과서는 국정교과서였다.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직접 발행한다. 당연히 편찬 주체는 국가(교육과학기술부)였다. 국정교과서는 단일 교과서로 교육하기 때문에 교육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양화 시대에 획일화된 교육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잃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따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중학교 국어교과서도 검정 제도를 도입했다. 검정교과서는 출판사가 교육부 지침에 따라 교과서를 제작하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에 통과하면 사용할 수 있다. 2010학년도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는 검정교과서의 출발인데, 이 검정 심사에 합격한 교과서가 자그마치 23종이다. 내 글은 이 중에 실렸다.
조사에 의하면 이번 검정 국어교과서에는 김소월의 작품이 14곳에 19작품이 실려 가장 많이 수록되었다고 한다. 기형도의 ‘엄마걱정’은 6곳에 실렸고, 이병기의 ‘별’이 5곳으로 그 뒤를 이었다. 소설은 허균의 ‘홍길동전’이 14곳에 실렸고, 박완서, 하근찬, 황순원, 김유정 등의 작품이 자주 등장했다. 수필은 법정의 ‘먹어서 죽는다’가 5곳,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와 장영희, 윤오영의 작품이 실렸다. 그 밖에 윤동주, 김영랑, 심훈, 박두진, 안도현의 작품도 다수가 실려 앞으로도 우리 국민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작가와 비교하면 내 존재는 미미하다. 글도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것과 비교할 수도 없이 초라하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다. 세상에 좋은 글이 얼마든지 많다. 따라서 내 글이 교과서에 실린 것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행운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내 글도 어쩌다 집필자의 눈에 띄어 이름 석 자와 함께 올라간 것이다.
흔히 글을 쓰는 행위는 산고(産苦)에 비유하는 것처럼, 내가 글을 쓰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아주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일반 사람은 정신노동이라고 영역을 구분 짓고 마치 육체노동보다 강도가 덜 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 글쓰기는 거의 육체노동이다. 특히 나는 글 쓰는 재주가 없어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거의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작업을 그만 두지 못한다. 글을 쓰면 물질적 대가는 받지 못하지만 정신적 포만감을 누린다. 나에게 글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삶은 늘 어떤 결핍의 상황을 만든다. 내게 결핍의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글쓰기다. 글쓰기는 일상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회복하기 위한 공간이다.
회고해보니 글을 쓰면서 굴욕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제법 큰 출판사에서 청탁을 받고 글을 발표했다. 당연히 원고료를 기다렸는데 되레 나를 속물 취급했다. 그러면서 글을 발표해주었으니 원고료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며 큰소리를 쳤다. 신문에 글을 냈을 때도 담당자는 내가 마치 이름을 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거만을 떨었다.
그래도 힘이 되었던 것은 이름 없는 독자들의 격려다. 나의 고민까지 읽어주고 격려의 글을 보내주었다. 내 수필집을 읽고, 수필 문학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도 있었다. 몇 년 전에는 고등학교 문학 교사용지도서(지학사, 박갑수 외)에 참고글로 실리기도 했다. 작년에도 내 글이 교육방송(EBS) 교재에 두 번이나 실렸다. 그 밖에도 과분한 애정을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학창 시절 국어교과서의 글을 읽으면 늘 작가가 궁금했다. 글이 아닌 현실로 만나서 저자의 인품을 직접 느끼고 싶었다. 이제는 나도 교과서 작가 대열에 들었으니 누군가 나를 동경을 할까.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기쁨이 넘치면서도 한편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어린 학생들이 내 글을 읽고 공부를 하는데 그들에게 좋은 글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더 욕심을 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나 보다.
역량이 부족한 줄 알면서도 피천득님의 ‘인연’이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처럼 멋 부리지 않으면서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다. 내 역량으로는 욕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순간 이 바람을 접을 수 없다. 그 바람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