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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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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낙서

11월 ×일 ×요일. 비.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건만 봄비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정말 날씨가 요 모양이니 부아통이 터질 것만 같다.
청소시간의 일이었다. 반장인 내가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 비도 가릴 겸 쓰레기통을 머리에 이고 나서야 했다. 웬 계집애들이 그렇게 극성스럽게 야단인지 도무지 청소가 아니라 놀이시간이다. 교실에서 마구 뛰고, 걸레로 마구 치고, 던지고 야단이기에 그러지 말고 청소하라고 했더니, 걸레가 날아와서 뒤통수를 때렸다. 한 아이가 던지니 너도나도 덩달아서 집어 던지니 견딜 수가 없어서 쓰레기통을 이고 비우러 나선 것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쓰레기통을 뒤쪽에서 잡아당기는가 하면 밀어대기도 해서 도무지 교실을 나설 수가 없었다. 정말 울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주번 선생님께서 교실 복도를 지나셨기 때문에 다행히 더 이상 심한 장난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왜 이렇게 날 괴롭히려 드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지난 10월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 혼쭐을 내주고 싶다. 그러나 그때 내가 한일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짓궂게 구는 것일까 ? 나는 정말 바보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공부시간에 바보 같던 영숙이, 점순이 마저 한데 어울려서 날 이렇게 놀리고 야단을 하니, 나는 그 예들 보다 더 못난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언젠가는 하도 심하게 굴어서 선생님이 오시는 줄도 모르고 우로 있다가, 선생님께서 반 전체 아이들을 벌을 세우기까지 했지만, 그 날 오후에는 일러 바쳤다고 경아, 순덕, 영남이가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오늘도 선생님이 아실까 봐 난 아주 태연하게 넘겨 버렸지만, 아이들의 등살에 견디기 어렵다.

웅장한 산맥이 줄지어서 뻗어 가는 남쪽 기슭에 푸른 바다의 철썩이는 파돗소리를 들으며 한가하게 서 있는 이곳 영산초등학교의 6학년 3반 반장이며, 공부도 가장 잘하는 경자는 오늘 일기를 이렇게 써놓고 멍하니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습니다.
동그마한 얼굴에 유난히 까맣고 반짝이는 두 눈이 얼굴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나즈막한 코의 부족함을 메꿔 줍니다.
책상 앞에는 항상 담임선생님께서 강조하시던
“남보다 내가 먼저!” 라는 문구가 붙어 있고, 그의 책꽂이엔 단 한 권의 참고서도 없이 교과서만 덩그랗게 꽂혀 있을 뿐입니다.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던 경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벌떡 일어나더니, 책상 앞에 붙여 놓는 표어를 와드득 쥐어뜯어서 갈기갈기 찢어 버립니다.
‘흥 내가 먼저? 그 때문에 나는, 내가 먼저 바보가 된 것인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휑하니 밖으로 나가 찢어 뭉쳐진 표어 조각을 팽개쳐 버립니다. 경자네 집은 마을에서 서너 집 사이쯤 떨어진 외딴집입니다. 아버지는 물건을 싣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장사를 하시고, 어머니는 가끔 장사 뒷 심부름도 하시지만, 대부분은 집안일에 매여 숨 돌릴 틈도 없으십니다.

경자네 집에는 여자만 5자매인 속에서 경자는 세 번째입니다. 위로 두 언니가 있지만, 집안이 곤란하여 일찌감치 도시로 나가서 공장 일을 하기 때문에 집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자는 집에 오면, 동생들의 공부도 도와주고 집안일도 도와드려야 하지만 성적은 항상 좋았습니다. 작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있었던 군 학력 경시대회에서는 여학생으로서 군내에서 몇 째 아닌 성적을 거두어서 선생님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래선지 6학년이 되어서 반을 여자반과 남자반으로 나누어서, 여자반의 반장 선거에서 딴 사람과 다투지도 않고 반장에 선출되었으며, 반을 위해서도 힘껏 노력도 해왔습니다. 그러나 옛날처럼 시험을 봐서 중학교에 가는 것이 아닌 때문인지, 모두 그렇게 바보들만 모인 것인지, 아무튼 6학년 3반은 도무지 공부는 하지 않고 장난만 하는 반으로 유명했습니다.
한 시간 내내 이야기하고 풀어 보았자 막상 시간만 끝나면 아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고, 모두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조차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자는 이런 것이 몹시 못마땅합니다. 무엇을 하러 학교에 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과자나 사먹고 장난이나 하려고 학교에 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한 경자는 오직 공부만 열심히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점점 경자를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 공부 시간에 혼자 손을 들면, 모두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아서 경자는 점차 손을 드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어서 보름이 채 못 되어서 선생님께서,
“중학교 원서를 써야 하니 오는 25일까지 배정원서를 쓸 사람은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나와야 합니다.”
하시자 아이들은 부산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자는 그 날 밤 아버지를 기다리며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아버지가 진짓상을 물리시자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 중학교에 갈 사람은 25일까지 배정원서를 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고 말을 했습니다. 차마
‘아버지 저도 중학교에 가고 싶어요. 저도 원서를 내게 해 주세요.’
하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
하시고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한숨을 쉬셨습니다. 경자는 더 이상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만 있었습니다.
“경자야, 이 못난 아비가 잘못해서 너 하나도 중학에 못 보내고 말겠구나.”
하시며 시름에 잠기시는 아버지를 바라 볼 수가 없어서 그냥 공부방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아무렇게나 쓰러져 누워 있는 동생 경숙이를 바로 뉘어서 이불을 덮어 주고서 책상 앞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봅니다.
‘중학교에 못 가면 이제 나는 학교에 다닐 날짜가 두 달도 못 남았구나. 그 동안만이라도 열심히 노력을 해야지.’
이렇게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자네 학교에서는 원서 이야기가 나오면서 6학년 세 반에서 약 50여명이 읍내 학교로 전학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6학년은 말만 세 반이지 두 반이 될까 말까 하는 적은 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경자네 반에서도 영자, 영순, 경숙 그 외에도 12명이나 전학을 가고 말았습니다. 한 마을에서 함께 다니던 세 아이들이 전학을 가버려서 더욱 쓸쓸해졌습니다.

지난 10월 중순쯤의 일이었습니다. 반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뿔뿔이 흩어져서 장난을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가고 없는 사이에 월간 잡지라도 좀 읽으려고, 햇볕이 따사로운 창문 곁에 자리잡고 앉아서 달 넘긴 ‘어깨동무’를 펴들고 재미있는 동화를 읽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실패하여 집안의 재산을 전부 잃은 집의 이야기였습니다. 초등하교 4학년 여자 아이인 주인공이 손수 닭을 치고, 토끼를 길러서, 닭이 늘어나고, 토끼가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용기를 잃고 자리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힘을 얻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셔서 힘껏 일하게 되었습니다. 닭과 토끼를 길러서 나온 돈으로 식구들이 죽이라도 마음껏 먹고 살 수 잇게 되자, 온 식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닭을 치고, 토끼를 길러서 이제는 마음놓고 살 구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책을 읽던 경자는 책을 펴든 채 제 자신이 주인공이나 된 듯이 한 동안 멍하니 밖을 내다보며, 금방 읽은 내용을 다시 새겨 보면서 나도 이처럼 닭이나 쳐볼까 ?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때 장난꾸러기 영남이가 살금살금 창턱에 다가와서는 조그만 돌멩이로 경자의 이마를 딱 맞추고 달아나 버립니다. 경자는 마치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나 한 것처럼 낯이 붉어지면서 두리번거리다가 책을 덮어 버리고 일어서서 화장실로 가버립니다. 이렇게 조용히 책의 내용에 취해 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부끄럽습니다.
경자가 교실문을 막 나서자, 영남이는 경아, 순덕이를 불러서 뭐라고 소근거리며 교실로 들어갑니다. 조금 있다가 경아와 순덕이가 밖으로 나가서 반의; 아이들을 불러들입니다.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영남이를 둘러싼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뭐라고 소곤대는 영남이의 말을 듣고 나서,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흐뭇한 얼굴로 제각기 자리에 앉습니다. 6학년 3반이; 이렇게 조용한 것이 이상스럽게 생각된 경자는
‘혹시 선생님이 오셨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문안에 발을 들여놓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웃음보를 터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와 하하하하, 하하하하.”
처음엔 10여명의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웃음보를 터뜨리자, 온통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되어버렸었습니다. 경자는 영문을 몰라 주춤하고 그 자리에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더욱 소리를 내며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웃어댔습니다. 경자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책상을 두들겨 가면서 웃어댔습니다. 경자는 가만히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나?’
하고 거울에 가서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지만 아무 것도 묻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홍수가 터진 듯 마구 뒹굴기도 하고, 책상을 치거나, 발을 구르기도 하면서 또 한바탕 웃음 보따리가 터졌습니다.
경자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 온통 눈앞이 캄캄한 것 같았습니다. 경자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서 까닭도 모르는 창피함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배꼽이 빠지겠다고 웃어대는 소리가 경자에게는 채찍처럼 아프고 원망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경자에게서는 웃음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경자는 시작 종이 울린 뒤에야 교실 문을 들어서고, 끝종이 나기가 바쁘게 교실을 빠져나가는 것이 버릇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복도를 서성이다가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서시는 것을 보고 뒷문을 열고 들어서고, 끝종이 울리면 선생님 보다 먼저 교실을 나섰습니다.
같은 만 아이들과는 이야기도 하려 하니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책만 읽고 앉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경자를 따돌리게 되고, ‘책벌레’라고 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젠 정말 학교에 가는 것이 지긋지긋 하고, 골목에서 아이들을 만날까 두려워서 마을에서도 밖에 나가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기에 이제 몇 개월도 남지 않은 마지막 학교생활을 그만 두기는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일기를 쓴 이튿날 경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결심을 실천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교실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당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0월 ××일 ×요일. 흐리다.

참 이상한 아이들이다.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것일까 ? 반 전체가 나를 골려 주기 위해 있는 것만 같다.
집은 비록 가난해서 새 옷도 못 입고, 저희들처럼 돈을 안 쓰고 군것질도 안 하니까 그럴까? 날마다 선생님께 일러바치면 나는 그 얘들보다 더 못난 사람이 될 것이니 차마 그럴 수도 없다.
나도 새 옷도 사 입고 용돈도 달랠까? 그것도 안 된다. 아버지, 어머니는 정말 목 먹고 굶주리면서 나를 가르치려고 애를 쓰는데, 내가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 차라리 내가 먼저 봉사를 하는 것으로 그 얘들의 마음을 돌려볼까? 같이 놀아주고 청소는 내가 먼저 하고, 그러면 저희들도 미안 할 테지?





유리창을 열고나서 교실 구석을 쓸고 닦고, 또 책상을 반듯이 정돈하고 나서,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책을 펴 놓고 생각해봅니다.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친절하게.’
이때 순덕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경자가 웬일이냐?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데?”
하고 책가방을 책상에 처박고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렸습니다. 경자는 마음먹은 대로 먼저 인사를 하려 했으나, 숨쉴 틈도 주지 않고 먼저 비웃으며 놀리는 말을 내뱉고 나가버리니, 그만 용기가 쑥 기어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에라 빌어먹을 것, 밖에 나가서 놀기나 하자.’
이렇게 생각한 경자는 밖으로 나갔으나 갈 곳이 없습니다. 운동장에는 몇몇 아이들이 공을 차려고 이리 쫓고 저리 쫓으며 뛰어 다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경자는 학교 뒷동산에 올라갔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아이들에 대한 미운 마음은 달랠 길이 없습니다.
‘내가 공부를 잘해 설까? 내가 못나서일까? 옷이 지저분해 설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이 몰려오는 등교 길을 바라봅니다. 웃으면서 재잘거리며 오는 아이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경자는 막대기를 집어서 땅바닥에 낙서를 시작합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끄적거려 써 보는 것입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는 못난이도 아니다. 그 얘들이 나쁜 것이다. 영남이, 순덕이, 경아는 깡패다.”
이렇게 써 내려가던 경자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동산을 내려가 교실로 들어가서 분필토막을 찾아들고서 화장실로 갑니다.
화장실 문 앞에서 잠깐 망설이던 경자는, 5학년용 화장실 문을 노크하고선 벽에다 낙서를 시작합니다.
‘경아, 순덕, 영남이는 깡패 대장이다. 그리고 6학년 3반 아이들은 쫄짜들이다.’
라고 써 놓고 밖으로 나와서 누가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서 아이들이 내려다보며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가슴속이 후련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가슴속이 후련한 것 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쫄랑대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교실에는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떠들썩하게 야단들이었습니다.
중학교 배정원서를 내는 데,
“면에 있는 중학교엘 가느니, 차라리 고등공민학교를 가겠다.”
하고 순덕이가 말을 하자,
“나는 명산 중학교에 갈란다. 사립학교라도 공부만 잘하면 되지. 뭐?”
영남이가 한마디 던지자, 서너 명의 아이들이 제각기 그 말이 옳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명산중학교는 멀고 돈이 많이 드는데 그러냐? 공민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뭐 고등학교 검정시험 하나 합격 못하겠니?”
하자 옳다는 아이들과 명산 중학교의 진학이 옳다는 아이들이 서로 야단입니다.
경자는 또다시 기분이 우울해집니다.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끼니 따라 밥 독촉을 하는 동생들, 일년 내내 보리가 반 넘어 섞인 밥 한 그릇, 김치 한 주발이 고작인 밥상, 밤이 이슥해서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장사 밑천이 없어서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하니 남는 것이 없다고 푸념이십니다.
일년에 한 번씩이나 보게 되는 언니들은 그래도 도시에서 살아선지 기름기 있는 얼굴이 하얗지만, 집에 있는 식구들이야 얼굴이 새까맣고 턱만 뾰족한 모양이니 감히 중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쓸 수가 없습니다.
‘에라, 밖에 나가서 놀기나 하자.’
경자는 다시 교실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신장에서 신을 찾아 신던 경자는 옆에 놓여 있는 경아와 영남이의 유명상표가 붙은 신발을 보자 쭉 밀어서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나쁜 놈의 계집애들 !’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교실을 나왔습니다. 보통때 같으면 남이 떨어뜨린 신발도 주워 올려 놓았을 건데,
‘일부러 그러지도 않았는데 그냥 두면 어떠냐?’
하고는 그냥 지나칩니다. 운동장에는 5학년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경자는 자기도 모르게 뛰어들어서 함께 뛰어 보았습니다. 5학년 아이들이 그만 나오라고 아우성입니다.
“꼬마야, 꼬마야, 잘 가거라.”
하자, 줄밖으로 뛰어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때 교실 문을 나서던 경아가 부아가 잔뜩 나서 야단입니다.
“어떤 계집애가 내 신을 던져 버렸냐?”
하는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경자는 찔끔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주 속이 시원한 것 같습니다.
‘밉살스런 계집애, 남을 그렇게 못 살게 굴었으니 골탕을 좀 먹어야 해.’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 시간이 끝나자, 경자네 반 교실은 온통 야단이 났습니다.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와글거립니다.
“경자 저 가시내가 그랬어.”
“틀림없어 ! 누가 그럴 사람이 또 있냐, 뭐?”
순덕이와 영남이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우리가 깡패라고? 딴 아이들은 쫄자란다. 우리 한 번 가서 보자. 뭐라고 써 놓았는가.”
순덕이가 제안을 하자
“뉘 글씨인가 가 보자.”
하고 모두 따라 나섰습니다.
화장실 문 앞에서 와글거리며 몰려서 들여다보고 밀고 야단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 경자가 화장실에다 낙서를 했답니다.”
하고 명자가 일러 바쳤습니다.
“뭐 ? 누가 낙서를 해?”
“경자가 화장실에다가 낙서를 했어요.”
하고 와글와글 한꺼번에 야단입니다.
“조용히 해 ! 한꺼번에 왜 야단이야, 누가 봤어?”
하고 버럭 소리를 질러 버리시니까 교실 안은 조용해졌습니다. 이어서 선생님은
“남의 일을 함부로 말하면 안 돼 ! 누가 본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고 말을 해봐요.”
이렇게 말씀을 하시자, 아이들은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경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서 막아버리니 마음이 푹 놓였습니다. 경자는 끝종이 나기가 바쁘게 제일 먼저 나가면서 도 신을 떨어뜨려 버릴까 생각했으나, 아이들이 뒤 따라 나와서 그냥 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한 번 골려 주고 말리라 생각을 합니다.

이제 학생시절로선 마지막 방학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방학 동안에 무엇인가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에 쪼들리는 가정 형편이라 생각하니, 방학 동안에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숙제도 없으니, 공부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럭저럭 집안 일을 돌보면서 여러 가지 뜨개질을 배워서 집안 식구들의 장갑이랑 스웨터를 짜서 입을 수 있게 했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2월에 등교를 하자, 이젠 완전히 졸업 기분이 나서 졸업 날만을 세고 앉아서 어서 졸업이나 했으면 하고들 있었습니다. 졸업이 열흘 남짓 남아서 선생님들이 교대로 들어오셔서 마지막 학교를 떠나는 경자네 반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웃으면서 살라.”
하는 교훈을 주신 선생님도 계셨고,
“저축으로 잘 사는 앞날을 개척하라.”
“앞길은 오직 내가 맡아야 한다.”
등의 교훈 말씀도 좋았지만
“우리의 두뇌는 우주와 같다. 현재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은 우리 고장뿐이듯이, 여러분의 머리는 우주 속의 우리 고장만큼 밖에 개발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우주 여행을 하도록 까지 우리도 우리 나라에서 세계로 견문을 넓히듯이, 여러분의 머리를 넓게 일구고 가꾸어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펴서 인류를 위해 힘쓰는 인류 역사에 남는 인재가 되어야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던 5학년 때 담임이시던 박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자도
‘힘껏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보자.’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고등공민학교에서 입학시험이 있었습니다. 중학교는 무시험이었지만, 고등공민학교이기 때문에 입학시험을 보아서 7등까지는 장학생으로 뽑으며, 아주 가난한 학생에게도 혜택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자는 시험이나마 한 번 보고 싶어서 어머니를 졸라서 겨우 시험 전날에야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공부한 것을 다시 한 번 복습하여 시험에 대비를 하였습니다. 다들 공부를 안 하기 때문에 어쩜 장학생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에 장학생이 된다면 그렇게 가고 싶었던 중학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식 중학은 아니지만 공민학교면 어떠냐? 나는 진학만 하게 된다면 정말 부지런히 공부해서 경아. 순덕이들을 기어이 이기고야 말 것이다. 아니 나의 넓디넓은 머릿속을 더 넓게 일구어 가야겠다.’
이런 부푼 가슴을 안고 밤이 이슥하도록 까지 책상 앞에 앉아 책과 씨름을 했습니다. 드디어 발표하는 날인데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아서 딴 아이들보다 늦게야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발표가 끝나고 합격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경자는 어슬렁어슬렁 발표가 붙은 곳으로 가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분명히 두 번째 자리에 ‘윤경자’ 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2등을 한 것일까?’
경자는 눈을 의심했다.
‘비록 고등공민학교지만, 면내에 있는 네 개의 학교에서 공부는 잘하지만 가난해서 중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이 장학생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틈에서 내가 정말 2등을 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서 있을 때,
“경자야 ! 경자야, 얼른 와!”
하고 같은 반의 친구 영례가 손짓을 하며 부릅니다. 벌써 모여 줄을 선속에서 웃으며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자는 그리로 달려갔습니다.
고등공민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응, 네가 윤경자로구나. 축하한다.”
하면서 경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경자는 집이 가난해서 학교를 못 나올 형편이란 말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학비 전체면제 장학생이 되었으니 부지런히 공부하도록 해야 해 !”
하시더니
“우리 학교가 조금만 넉넉하면 너 같은 아이들에게 교복이라도 한 벌 지어 입혔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어렵구나. 우선 1학년 때는 교복을 입지 않아도 좋으니 나와서 열심히 공부나 하도록 하여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도 경자는 기쁨에 들떠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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