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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오늘은 어버이날

"2학년 친구들, 내일이 무슨 날이지요?"
"예, 선생님.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계획을 세웠나요?"
"예, 선생님. 편지도 쓰고 그림도 그려서 드릴 거예요."
"그럼, 선물을 살 용돈도 있나요? 부모님 선물은 속옷이 좋답니다. 입을 때마다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기 용돈 액수를 말하는 아이들. 그 중에는 단돈 500원 밖에 없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2학년 꼬마들이지만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의 은혜를 알게 하는 일은 어떤 교과 공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까닭이 뭘까요?"
"예, 선생님.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맞아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여러분의 생명을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보면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이 나온답니다.

살아 생전 갚을 수 없는 은혜

불가에서 가장 높은 산을 수미산이라고 한답니다. 부모님을 자기의 양 어깨에 올려놓고 그 수미산을 오르고 내리며 어깨뼈가 닳아서 피가 철철 흘러도 낳아주신 공을 갚을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낳아주기만 하고 길러주지 못했다고 하여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생명을 주신 은혜가 크다는 뜻입니다.

용돈이 없어도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숙제는 첫 번째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일을 5가지 이상 하기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어버이날만 하지 말고 늘 하는 겁니다."

어버이날을 영원히 기억하렴

매년 어버이날이면 15년 전 교실 풍경이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라서 부모님께 편지 쓰기를 숙제로 내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6학년을 가르칠 때는 교과 지도 시간에 밀려 국어 숙제로 내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숙제 검사를 하면서 편지를 썼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내용을 검사하지는 않지만 오탈자의 교정을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34명 중 7명 정도가 편지를 아예 써 오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 전해져 오는 수미산 이야기를 해주며 1년에 한 번뿐인 어버이날에 편지조차 드리지 않는 자식을 보며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실망시키는지 잔소리를 했습니다. 좀더 충격적인 방법을 써서 오래도록 생각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께 편지 쓰기 숙제를 안해 온 사람에게는 특별한 벌을 주고자 합니다. 오늘 이 일을 통해서 평생 동안 어버이날이 될 때마다 나를 생각하며 어버이날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벌은 1시간 동안 교실을 기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지요? 자기를 낳아서 길러 주신 부모님께 1년에 한 번 쓰는 감사 편지마저 쓰지 않는 잘못을 고치지 못하면 개만도 못한 불효를 할지도 모르므로 1시간 동안 개가 되어 교실을 돕니다. 알겠습니까?"

그러자 선생님이 정말로 교실을 기게 할까 반신반의하며 내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다시 강한 어조로 기라고 하자 마지못해서 기는 시늉을 하던 아이들을 보며 숙제를 해 온 다른 아이들이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기는 동안 나의 잔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효도하는 사람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부러워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으뜸이 부모님을 섬기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뿐인 생명을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어버이날 과제를 주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아야겠습니까? 6학년이면, 그 나이라면 선생님의 숙제가 아니더라도 시키지 않더라도 당연히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이렇게 모욕적인 벌을 주는 까닭은 해마다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오늘을 생각하며 미리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부모님을 슬프게 하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무슨 꿈을 이루고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 부모님을 슬프게 하지 맙시다. "

그러자 교실을 서너 바퀴 돌던 아니, 기어다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반성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웃으면서 장난으로 쳐다보던 아이들도 숙연해졌습니다. 눈물을 보이며 반성하던 아이들을 불러 숙제를 하게 하고 어버이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해 주던 15년 전 5월 7일.

지금쯤 그 아이들은 서른을 바라보는 젊은이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담임으로서 인격적으로 다소 무리한 벌을 주면서까지 어버이날을 미리 지도하던 용감했던 제 열정이 부러워지는 날입니다.

교육은 세상의 소금

만약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어버이날 부모님께 편지 쓰기 숙제를 해 오지 않은 벌로 그때처럼 교실을 기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저는 고발 당하기 쉽겠지요? 효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서 자식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부모가 10%도 되지 않는 현실이지만 교육 현장에서 만큼은 효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맑게 하는 샘물은 쉼없이 흘러야 강이 썩지 않고 살아납니다. 단 3%의 소금이 바다를 썩지 않게 합니다. 교육은 바로 그 소금이며 선생님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지닌 영혼의 바다를 썩지 않게 지키기 위해 적절한 소금을 뿌려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으로는 가르침을 다할 수 없습니다.

15년 전. 5월 7일 아침 1교시에 교실을 기며 벌을 받던 사랑하는 제자들아! 오늘 어버이날은 어떻게 지냈니? 부끄러운 벌로 가르치던 부족한 담임의 이름은 잊었어도 너를 주신 어버이의 은혜는 결코 잊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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