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님,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누구보다도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자라나는 2세들에게 가르쳐야할 책무가 있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저 자신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가를 점검해보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애국지사 중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바로 안중근 의사이십니다. 아마 저 뿐 만 아니라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올 여름 방학 보훈교육연구원에서 나라사랑 선양 연수를 받았습니다. 다양한 교육과정 중에서 '안중근 의사의 독립 전쟁과 역사적 의의'라는 내용을 배울 때는 예전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면서 저도 모르게 애국심이 불타올랐고 안중근 의사가 존경스럽고 위대한 애국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 그러니까 1909년 10월 26일 우리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서 숨지게 한 뒤 여순 감옥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일본인들의 잔학한 고문을 당하시며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셨을까를 생각하니 한 아름 눈물이 가득 고여 옵니다.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님, 당신은 정말 용기 있는 애국자이시며 지혜로운 전략가이시며 이론가이셨습니다.
도마 안중근 의사님을 이해하기 위해 부친의 생애를 공부했습니다. 부친께서도 조선왕조말 권력층의 가렴주구에 시달린 민중들이 관리들의 횡포에 벗어나기 위해 천주교 신앙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님의 소망은 현세에서의 평화로운 도덕사회 실천과 내세 구원이며 전교활동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과 삼위일체였다는 것을 강사님의 강의를 통해 알았을 때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빌렘 신부에게서 천주교 신앙과 서양의 근대 사상을 배우게 되면서 그것을 동양적인 교리로 설명하시려했던 노력에서 안 의사님의 신앙심과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안 의사님께서는 민족운동과 모든 행동의 근원에 신앙인의 자세로서 임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지만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한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앙인으로서 그들을 진정으로 섬기고 배려했는가를 반성해보면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순국 직전에도 일본 변호사에게 가톨릭 신앙을 권면하실 정도의 두터운 신앙심으로 조국을 사랑했기에 후손들도 안 의사님을 존경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안 의사님은 참으로 지혜롭고 앞을 내다보는 慧眼(혜안)이 있으셨습니다. 1905년 을사 늑약이후 ‘신민회’라는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여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는 교육 구국운동을 전개하셨던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국채보상운동에 온 가족의 패물을 헌납하셨고 민족운동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합의’라는 무연탄 회사를 경영했던 것도 모두 조국의 독립운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시기 위함이셨지요. 또한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하여 온 세계에 알렸던 것만 보아도 얼마나 지혜롭고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를 알 수 있지요.
안 의사님, 제가 안중근 의사님을 정말 용기 있는 분으로 알고 있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할 의거를 스스로 자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얼빈 의거는 당시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 일대 쾌거였으며 중국을 대신하여 원수를 갚아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영웅이라고 중국인들조차 극찬하였고 하니 의사님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하셨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시면서 일제침략의 부당함과 국제법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간교함을 세계만방에 알리려하신 것 또한 대단한 선견지명이셨습니다. 8발의 총성을 울리며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이국땅에서 장엄하게 외치신 의사님의 모습을 상상만 해봐도 피가 끓어오르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의거 뒤 5개월 동안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금도 의기를 굽히지 않고 당당하기만 하셨고 왼손 약지를 끊어 그 피로써 태극기 앞면에 ‘大韓獨立’이란 글자를 쓰시기도 하셨지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두 아우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返葬하지 말라“는 유언에서 비장하고도 결연한 불타는 애국심과 조국독립의 염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형을 당할 때까지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마지막까지 걱정하셨던 초인적이 삶을 생각하면서 머리 숙여 안중근 의사님의 숭고한 애국심을 떠올려 봅니다.
안중근 의사님께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후손으로서 큰 죄를 지은 게 있지요. 안 의사님의 시신이 현재 중국 어딘가에 있으며 아직도 발굴조차 못한다고 하니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치신 분의 넋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얼마나 조국의 품을 그리워하실까를 생각하니 정말 죄스럽고 하루빨리 시신을 찾아야겠다는 의무감이 듭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작년에 전남 함평군 신광면 상해임시정부 청사 복원 터에 ‘안중근 장군 동상 제막 행사’ 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님, 올해는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평화는 바로 안중근 의사님과 같은 애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안중근 의사님의 숭고한 애국심을 잘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롤 모델’이 되겠습니다. 저 먼 하늘나라에서는 이 땅에서 누리지 못했던 참된 평안과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세요.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