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3 (수)

  • 맑음동두천 12.1℃
  • 흐림강릉 10.5℃
  • 맑음서울 13.4℃
  • 흐림대전 16.4℃
  • 흐림대구 15.1℃
  • 흐림울산 13.7℃
  • 구름많음광주 16.3℃
  • 흐림부산 15.5℃
  • 흐림고창 11.9℃
  • 구름많음제주 14.0℃
  • 맑음강화 13.3℃
  • 흐림보은 16.1℃
  • 흐림금산 16.8℃
  • 구름많음강진군 15.3℃
  • 맑음경주시 13.5℃
  • 흐림거제 16.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필리핀 KOICA 현장 견학을 다녀와서

2008년 제11회 KOICA 국제협력 글짓기 초등부 대상 지도교사상 수상 기념으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필리핀 해외현장을 견학하게 되었다.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2배 면적으로 인구는 약 840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스페인, 일본, 미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로서 지금도 혼혈이 되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7~10월까지는 雨期이고 11~6월까지는 乾期라고 한다.

KOICA 필리핀 사무소 김인 소장님께서 환영오찬을 베풀어 주셨다. 격의 없이 우리 일행을 반겨주셨고 구수한 충청도 말씨에 정겨운 느낌마저 들었다. 음식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한식이 나와서 다행이었다. KOICA 사무실로 이동하는 중에 곳곳에 ‘지뿌니’라는 대중교통수단이 인상적이었다. 미군이 버리곤 간 짚차를 개량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데 이 나라의 유용한 교통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훤출한 키에 미남인 박준성 부소장 님께서 대 필리핀 지원현황을 설명해주셨다. 우리나라가 어느새 선진국이 되어서 다른 나라를 돕는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기고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는 한국대사관을 방문했다. 홍종기 필리핀 대사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와이셔츠와 비슷한 필리핀 전통의상을 입고 계셨다.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들의 질문에 답해주셨다. 필리핀은 1950, 60년대에는 아시아에서는 선진국이었으며 UN총회 의장도 나왔었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필리핀을 발전 모델로 삼을 정도로 부강한 나라였다고 한다. 1970년대는 장충체육관을 지을 때 우리나라에 기술지원도 해주었다고 한다.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김민정 학생은 외교관의 자질에 대해 묻기도 했다. 홍종기 대사님은 외교관의 자질로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함께 경청과 배려를 들었다. 반기문 장관님이 유엔 사무총장님이 되면서 외교관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사무실에는 역대 필리핀 대사님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지금의 유명환 외교 통상부장관님의 사진도 있었다.

첫째 날의 마지막 방문지는 한-필 IT 훈련원이었다. 젊은 시절 KOICA 봉사단원이었던 박영충 단원은 현재 60이 넘은 나이에 다시 시니어 봉사단원이 되어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계셨다. 한-필 IT 훈련원은 개원식 때 노무현 대통령과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 홍종기 대사님이 참석할 정도로 이 나라에서는 매우 비중 있는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국제협력에 대한 글짓기에서 수상한 것도 좋지만 그 내용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둘째 날은 카라바우 센터를 방문했다. 마닐라 호텔에서 거기까지는 무려 5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었다. 이동 중에는 ‘트라이 씨클’ 이라고 지붕 있는 오토바이가 도로를 활주하고 있었다. 카라바우 센터에는 우리 단원들(한경대학교 학생)이 기계, 축산, 전기, 컴퓨터, 사료작물 등의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카라바우’ 는 우리나라의 황소같이 필리핀에서 부르는 소 이름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시설은 JICA(일본 국제협력단)에서 지어주었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100배 정도 많이 지원을 한다고 하니 좀 부럽기도 했고 약도 올랐다. 이 곳 카라바우 센터는 우리나라의 낙농기술과 필리핀의 낙농기술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필리핀은 3차 산업인 관광산업에 치중한 나머지 1, 2차 산업이 발달이 안 되었는데 낙농업도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셋째 날은 한-필 친선병원을 방문했다. 이 병원은 우리나라의 시립병원에 해당되는 곳으로 1950년대 건물을 확장했으며 김영삼 대통령 때 한-필 협정을 맺으면서 지원에 활기를 띄었다고 했다. KOICA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보건, 의료 사업인데 페루에는 병원을 5개 지어주었고 모기장 하나만 있어도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모기장을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고 하니 지구상에는 절대빈곤의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한-필 친선병원에서는 김영아 단원이 간호사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곳의 병원장님이 직접 병원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고 우리들에게 망고와 쌀떡으로 환대해주셨다. 열대과일을 좋아하는 나는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아 망고를 실컷 먹는 즐거움에 원장님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정도면 그래도 필리핀에서는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필리핀이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모든 국민들이 마음 놓고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했다. 

저녁에는 이 나라의 전통식당인 잠보앙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비교적 고급 식당이었는데 전통문화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뱀부 댄스라는 대나무 춤은 보기에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무대에 나가 해보니 만만치 않았다.

넷째 날은 호세 리잘 공원을 방문했다. 호세 리잘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안과의사, 문학가, 예술가로서 이 나라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했다. 스페인에게 300여년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스페인군에 처형되기까지 필리핀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처형되기 직전 ‘나의 마지막 이별’이란 시를 써서 누나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호세 리잘이 투옥되었던 지하 감옥과 처형장으로 나오기까지의 발자국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안중근, 윤봉길 의사가 생각났다. 그래도 스페인은 일본과는 다르게 식민통치를 하면서도 잔인하게 학살하거나 처형하지 않았다고 한다. 혹독한 고문으로 처형되기까지 숱한 고통을 당한 안중근, 윤봉길 의사나 지하 감옥에서 우기때 물이 가득차서 가득찬 물에서 고통을 당한 호세리잘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애국자였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불에 타서 죽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호세 리잘이 죽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을까를 생각하니 외국인인 나도 마음이 아팠다. 

다음으로 마닐라 성당을 방문했는데 짧은 옷이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사람은 입장이 불가했다. 성당에서는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욱 번영하기를 기도했다. 

이번 견학에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도 나름대로 해외봉사 사업을 하여 국제적인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생겼고 또한 그러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했고 이제부터 자라나는 2세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강한 긍지를 심어주고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봉사의 주체가 되어 대한민국의 발전에 일조하는 국민이 되어야겠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