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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중국 속의 한민족사 탐방 ④



◎ 넷째날(20일) - 후련함과 아쉬움을 잠재운 천지

새벽 3시 반. 집안의 새벽이 밝아 온다. 밤새 냉방기 소리가 바깥에 쏟아지는 빗소리인 줄 알고 홍수가 나는 꿈을 꾸었다. 커튼을 열자 우리보다 한 시간 늦은 새벽 다섯 시인데 자전거, 삼륜 오토바이, 손수레를 끄는 사람들이 국내성 남쪽벽 앞 좁은 길로 모여들고 있다. 손에 든 것을 보니 새벽시장에 가는 모양이다. 얼른 옷을 차려입고 새벽시장 구경을 나선다. 그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시장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시장의 규모가 꽤 크다. 축구장 크기의 빈터에 품목별로 형태를 갖추어 늘어선 반짝 시장이다. 우리나라 여느 5일장 시장과 같은 풍경이지만 천막이나 볕가리개가 없는 게 특징이다. 양고기를 즉석에서 파는 사람, 잡곡과 과일을 파는 사람 사는 모습이 구수하게 비추어진다. 아침 5시 30분 백두산까지 먼 이동을 고려하여 도시락으로 준비된 아침을 먹지만 잘 넘어가지 않는다. 집안의 북쪽으로 나와서 백두산 등정을 위한 서파산문까지는 통화와 백산 시를 거친다. 그리고 송강하를 지나 대략 350㎞를 8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는데 군데군데 비포장길도 있어 실크로드코스와 비슷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집안에서 통화로 나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깊은 협곡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이동한다. 흡사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계곡을 달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좁은 계곡 사이에도 철도가 있다. 저 철길은 일본이 부설하였다 하니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는지 짐작이 간다. 집안을 벗어나 어제 들은 긴 터널을 빠져나온다. 이 터널을 경계로 집안과 온도차이가 6도 이상 난다고 하니 집안이 왜 고구려의 도읍지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

3시간 정도 달려 도로변 간이 휴게소에 도착한다, 역시 화장실에 대한 기대감은 하지 않는 게 낙심이 덜 할 것이다. 송강하로 이동하면서 하늘이 맑아진다. 점차로 높아지는 고도가 백두산 자락임을 실감하게 된다. 차가운 공기와 맑고 시린 하늘 사이의 흰 구름이 깨끗하다. 청정이란 말은 이때 사용하는구나 싶다.

백두산 천지는 일년 중 11일이 맑은 날이라 좀처럼 천지를 보기란 어렵다 한다. 중국의 덩샤오핑도 천지를 세 번이나 올랐지만 보지 못했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아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전부 환호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백두산의 정상의 능선이 보인다. 미인이 편하게 누워 자는 형상을 닮았다.

정오쯤 식당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오는지 한글도 보이고 대중가요도 흘러나온다. 하늘이 정말 파랗다. 가시거리가 좋고 하늘이 파란 것은 그만큼 공기가 차갑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서파산문에 도착한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 네 곳이지만 3곳은 중국에서 오를 수 있고 동파만 북한에서 오르는 코스라 한다. 여기서 파는 언덕을 뜻한다.

서파산문에서 39㎞를 이동하여야 천지 아래 1236개의 계단에 도착한다고 한다. 중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관광지여서 깔끔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간마다 우리말로 장백산(중국은 장백산이라 부름)에 관한 해설이 나온다. 특히 고도별로 식생대가 변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백두산 일대 전체를 자연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천연의 상태로 보존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관광수입을 위해 길을 넓히고 비행장을 만들고자 벌목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파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낮은 지대에는 전나무, 가문비나무 그리고 줄기가 하얀 자작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들꽃들과 함께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조금 더 지대가 높아지자 침엽수와 관목지대가 나타난다. 전나무와 사시나무가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모습이 이채롭다. 서로 공생을 위해 버팀목처럼 위하며 성장한다는 소리에 배려심 없는 사람의 마음에 경종이 들린다.

더 높이 오를수록 관목지대 없어지고 야생화 군락들이 융단을 이루고 있다. 푸른 초원 위에 하늘과 함께 펼쳐진 꽃들의 향연 고산지역이어서 일 년에 딱 10일만 꽃을 피워 번식을 마친다는 야생화들. 어쩜 그 기간에 맞추어 이곳을 찾게 되었는지 행운이다. 천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정상은 희끄무레하다. 혹시나 화산폭발에 그을린 흔적이 아니냐 하고 물어보지만, 그것은 눈이 결빙된 얼음층이라 한다.

야생화 지대를 지나 오를수록 이제 풀로 덮인 언덕밖에 나오지 않는다. 모 회사의 컴퓨터 메인화면 배경이 저곳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비슷한 초원이다.

빗면을 따라 난 길을 한 시간 넘게 올라 천지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다. 와. 이럴 수가 높은 지역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는 낮은 공기층 위에 흰 물감을 풀어내는 구름이 또 하나의 층을 이루고 그 위한 푸르고 시린 하늘이 한 층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멀리 아래로 보이는 산의 준령들은 지평선이 된다. 맑은 날씨다. 셔틀버스를 내리는 순간 냉기를 머금은 공기가 뇌 세포를 자극한다. 우리나라의 8월 말쯤 지리산 성산제에서 만나는 공기와 비슷하다.

천지를 보려고 1236계단에 첫발을 내 딛는다. 천지를 보러 가는 첫 계단! 묘한 느낌이 마음을 감싼다.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떨어진 짝을 만나러 가는 기분일까? 아니면 먼발치서 마음에 그리던 님을 만남이 허락되어 엄숙한 연정을 품고 고백하러 가는 기분일까.

계단을 오르는 중간 흘러드는 말에서 중국사람도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잠시 숨을 고르면서도 이제 천지를 보았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한다. 흔히들 천지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오르기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두 사람이 운반하는 가마모양의 들것이 있다. 구간별로 나누어져 팀이 있는데 정말 어려운 직업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생계와 꿈을 위해서 저런 일도 마다치 않는 본인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래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하얀 물감이 실처럼 풀리는 모습이다. 너무 푸르다 눈이 아리다. 어쩜 저런 파란색이 있을까? 높게 솟구치다 분출로 멈춘 언덕은 녹색의 언덕이다. 알프스의 산 정상부근의 초원이라면 맞을 것이다.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되지 않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뒤쪽은 흰 구름이 파란 물속에서 끓어오르고 길 양옆에는 야생화가 피어 있다. 용담을 비롯한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들이다. 그리고 눈녹은 물이 작은 개울을 이루며 아래로 흘러가고 있다.

아 천지여! 40여 분 계단을 오른 끝에 펼쳐지는 심원의 그곳. 병풍처럼 사방을 둘러싼 천지는 연꽃 잎 모양이고, 그 속에 하늘과 염원을 담은 파란 물이 숨을 죽이고 있다. 거대한 자연이 만들어낸 흉내 낼 수 없는 감흥이다. 걸음을 5호 경계비 쪽으로 옮긴다. 한 걸음만 더 옮기면 북한땅이다. 이 거대한 조화 앞에 하찮은 인간들이 그은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슴이 트인다. 더 바랄 게 없다. 넓은 천지의 모습을 한 컷의 사진에 담는다. 너무 넓어 일반 광각렌즈로 담을 수 없어 한 지점에서 분할 촬영을 한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고 조용히 빌어본다. 빨리 남북이 하나 되어 국력도 융성하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의 바람들이 하나같이 이루어져 행복이 가득한 날들이 되었으면. 그리고 우리 땅에서 백두산을 오를 기회가 오기를….

반가움의 감흥도 잠시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내려가야 한다. 올라올 땐 아직 발견하지 못한 천지 옆의 공사현장을 본다. 해발 2470m 표지석 주변에 전망대를 건설하는지 곳곳이 철제빔을 꽂히고 파헤쳐져 있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다시 내려온다. 이제 보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장면을 한 컷 한 컷 담는다. 용트림하여 오르는 흰 뭉게구름의 아래쪽이 경계면을 이루고 있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두 겹으로 나누어졌다 하면 맞을까? 흰 구름의 갈라진 뜸으로 햇살의 직진하는 모습이 선명하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반대의 순서를 밟는다. 아쉬움을 뒤로 오후 4시쯤 장백산 대협곡에 도착한다. 화산지형의 대지가 오랫동안 침식작용을 거쳐 형성된 곳으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의 모습과 비슷하다. 푸른 대지의 깊은 협곡. 그 중심에는 솟은 바위들이 여러 가지 형상을 이루고 협곡의 가장자리 언덕에서는 아직도 침식되어 쏟아지는 토사들과 바위, 나무들이 보인다. 생명의 강인함. 아직 남아있는 바위 언저리에 관목이 자라고 있다. 지나가는 다람쥐도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

오후 5시 30분 가라앉지 않은 천지의 설렘을 누르며 숙소로 출발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안내자의 애국가 시작이란 말에 버스 안은 무거운 분위기에 서로의 마음이 엮인 육성의 애국가가 울러 퍼진다. 모두가 상기된 얼굴이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백두산 고원을 따라 아래로 좁은 길을 달린다. 높은 지역에서 본 노을이 붉고 아름답다. 길 양옆의 자작나무들이 하얀 줄기를 드러내고 잎들은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다.

숙소인 백산을 향하여 가는 동안 어둠은 깊어진다. 어둠 속에 보이는 중국 농촌의 집들은 우리나라 70년대 모습과 비슷하다. 조명은 어둡고 마을이라 해도 가로등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오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3시간 정도 달리자 빗방울이 창문을 긋는다. 백산에 도착하자마자 비는 소나기로 바뀌어 걸음을 어렵게 한다. 피곤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천지를 본 백산의 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긴 버스의 여정은 피곤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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