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즐거우면 고단해도 피곤하지 않다. 습관처럼 일찍 일어나 아름다운 로토루아의 아침을 맞이했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사람들이 없는 길거리에 'tidy'가 크게 써있는 청소차와 청소원들만 바쁘다. 대부분 단층집이고 2~4층 건물은 시내 중심가의 도로변에 있다. 기념품점과 종가집 등 한글간판이 눈에 띈다. 'POLICE' 건물 입구의 안내판에도 한글로 '경찰서'라고 씌어있다.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더니 가랑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어 시내와 연결된 바닷가에 도착했다.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벤치, 물위에 떠있는 유람선과 경비행기, 잔디밭에 앉아 휴식 중인 갈매기들이 평화롭다.
아침을 먹고 시간이 남아 아내와 호텔 앞 바닷가로 갔다. 갈매기들이 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가까운 곳이라 별 뜻 없이 갈매기들에게 다가섰다. 아내가 두 팔을 하늘로 향하자 날아오른 갈매기들이 주위를 빙빙 돈다. 아뿔싸, 곳곳에 알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몇 마리는 호텔근처까지 날아와 험한 인상으로 경고를 보냈다.
호텔을 나와 대자연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삼림욕장 레드우드로 갔다. 입구부터 미국 캘리포니아가 원산지인 레드우드가 빽빽이 들어서있어 깨끗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준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보다 나무의 성장 속도가 3배나 빠르다는데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다 살아 돌아온 병사가 심기 시작한 나무가 지금까지 커왔다.
둘레가 몇 아름이나 되는지 나무를 안아보며 확인한다. 자유를 누리며 나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게 뻗은 수 십 만 그루의 나무들을 부러워한다. 현지인들이 음악을 들으며 조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30분에서 8시간 완주까지 코스가 다양하다. 30분 코스의 빨간색부터 8시간 코스의 검은색까지 표시판의 색으로 거리를 구분하는 것도 특색이다.
테푸이아 마오리 민속촌을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큰 돌과 혀를 내밀거나 손가락이 세 개인 목각 조각들을 만난다. 마오리족 남자는 혀를 잘 놀려야 하고, 손가락 세 개는 '탄생, 삶, 죽음'을 뜻한다.
민속촌 안에 고사리 나무로 건축한 마오리족의 전통가옥, 음식저장소, 교도소, 무덤 등 생활용품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지열에 의해 달궈진 돌로 음식을 익혀 먹는 전통음식 항이를 만드는 부엌, 전통 공예품을 파는 상점도 있다. 민속촌을 한 바퀴 둘러보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마오리족의 생활상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살아있는 화산 작용으로 인해 물과 수증기 가스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온천이 간헐천이다. 민속촌 바로 옆에 간헐천과 진흙열탕이 있어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수증기 가스를 내뿜는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간헐천은 20~30분간 최고 68m까지 솟아오르는데 1시간쯤 쉬었다 다시 솟아오르기를 반복한다. 물이 솟아나오는 구멍주변은 유황으로 인해 색이 노랗다. 높은 온도의 수증기 가스가 뽀글뽀글 거품을 만드는 진흙열탕도 옆에 있다.
양털 깎기 및 양몰이 쇼를 관람하러 아그로돔 농장으로 갔다. 입장할 때 받은 헤드셋을 끼고 있으면 한국인 직원이 자세히 통역을 해준다. 뉴질랜드에서 방목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양을 비교해서 보여주는데 털의 품질이 가장 좋은 메리노종이 제일 먼저 등장하고, 고기가 맛있어 가장 많이 키우는 엔지롬니종이 두 번째 등장한다.
말썽부리는 몇 마리가 사람들을 웃기지만 이곳의 양들은 참 양순하다. 기계가 몇 번 왕복하면 양털 깎기가 끝난다. 벌거벗은 양이 부끄러운 듯 점잔을 빼는 모습도 볼거리다. 소젖 짜기, 아기 양에게 우유먹이기, 양 경매 쇼가 코믹하게 진행된다. 밖으로 나가면 눈빛으로 양을 모는 개와 큰 소리로 짖어 양을 모는 개가 등장해 양몰이 쇼를 보여준다.
해발 900m까지 올라가는 스카이라인 곤돌라에 탑승해 로토루아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VIEW포인트로 갔다. 바다와 유황온천이 어우러진 로토루아가 녹색세상을 만들며 발아래로 펼쳐진다. 로토루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통유리로 건축한 레스토랑에서 우리의 입맛에 맞는 뷔페음식을 먹었다.
요트의 도시 오클랜드에 도착해 전망대 역할을 하는 에덴동산으로 갔다. 오클랜드는 평지라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사방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에덴동산은 오클랜드에서 가장 높은 화산 분화구로 높이 196m의 정상에 움푹 파인 휴화산과 분화구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에덴동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클랜드항과 시내의 전경이 볼만하다. 나무숲과 잔디, 낮은 집과 바다가 아름다운데 날씨도 좋아 바라보이는 풍경이 시원하다. 세계의 주요 도시를 표시해 놓은 동판에서 서울을 찾아볼 수 없고, 멋있다는 야경을 다른 일정 때문에 보지 못해 아쉬웠다.
노벨상 수상자가 4명이나 되는 오클랜드대학을 구경했다. 오클랜드대학은 뉴질랜드 최대의 국립종합대학교라 국비로 운영된다. 주 캠퍼스인 시티캠퍼스는 도심에 위치하고 구 정부청사, 시계탑, 유니버시티하우스 등 오래된 건물이 많다. 대학의 건물들이 도로변에 있고 넓은 캠퍼스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여행객들은 대학을 알리는 안내판 앞에서 입학생이라도 된 양 기념사진을 남긴다.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주변과 호텔로 가는 길거리가 깨끗하다. 도심의 집들이 고풍스럽고 전원주택처럼 나무가 많아 녹색세상이다. 아내와 어둠이 물든 호텔 앞 바닷가를 산책했다. 나무로 만든 체육기구들이 보면 볼수록 실용적이다. 이곳에서는 겉모습보다 실속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