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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솔직함과 진실성에서 감동적인 시가 쓰인다"


이승하 교수(시인) 초청 강연회에 다녀와서
인천남동문학회는 지난 27일  장수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제1회 명사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이 날 행사에는 중앙대 이승하 교수(시인)이 초청됐다.  남동문학회 회원과 문학애호가들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회장 인사말, 강사와 내빈소개, 강연, 알리는 말씀, 사인회와 교제의 시간, 식사 등으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승하 시인은 "이런 시도 있다, 이렇게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자신의 시와 다른 유명 시인 시를 예로 들면서 설명해 나갔다. 이성복 시인의 ‘어떤 싸움의 기록’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경험을 얘기했다.

어떤 싸움의 기록(記錄)

                                                                  이성복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법(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 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법(法)도 없는 동네냐 법(法)도 없어 법(法)도 그러나
나의 팔은 죄(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시장(市場)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문(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 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1980>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시인은 이성복 시인의 불행한 가족사를 읽으며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서울대 문리대까지 졸업했구나 하고 존경의 마음을 갖는 한편 감동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가족사를 알았을 때 그는 부유한 환경에서 다복한 성장기를 거쳐 왔다는 것을 알았고, 이 시가 허구(Fiction)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구성(Plot)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시인은 채충석 시인의 198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겨울의 첫걸음’을 예로 들어 시가 관념, 철학, 사색 같은 개념의 시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수필 같은 시가 수천 편의 경쟁을 뚫고 당선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도 했다. 이 시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는 황동규 시인이라면서 진솔한 자기체험이 녹아 있어 뽑게 되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 아직 데뷔하기 이전 시인은 시의 다양성을 보고 좋은 시는 어떤 시인지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을 터이다.

겨울의 첫걸음

                                        채충석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것을
나는 5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방 사립대학을
증서 없는 졸업식 날 학교 떠나는
친구들이 모아 주는 30만원으로
나머지 1학점의 등록을 마치니
노천강당의 개나리 넝쿨은
올 들어 두 번째 피어났다.
낯선 이름과 언어가 붐비는
수요일의 한 시간을 위해
두 시간 거리의 직행 버스로 등교하면
지독하게 피곤하였다. 그 다음 날도
이렇게 한 주간이 쉬 지났다.
대학원에 다니냐는 후배들은
모란이 피자 모두 아스팔트 위로
파도처럼 밀려나고, 나만이
텅 빈 풀밭에 오그리고 앉아
흩어진 과우들에게 엽서를 쓰거나
도시의 변두리가 돼버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동네 어른들이 입을 모아 흉년이 들었다고 하는 동안
코스모스 피는 가을은 슬쩍 찾아들고
5학년 1학기도 한 달을 더 끌다
끝났다, 자, 가야지 내일은
경제학사 학위를 받으러
성이 최씨로 바뀐 무거운 앨범도 찾고
홀로 교문을 나서는 나를 만나러
서랍만 달린 겨울을 만나러

시인의 강의는 이어졌다. 1988년 이전엔 백석(白石) 작품도 해금되지 않아 읽지 못했다면서 우리나라에 이야기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이 백석이라고 소개했다. 최두석, 이시영, 이동순 같은 시인이 백석의 시를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시인이 인용한 대부분 시가 이야기시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이날 주제가 ‘이야기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일근 시인의 ‘흑백사진’, 김진완 시인의 ‘기찬 딸’, 이상국 시인의 ‘물 속의 집’ 등 이야기 시를 소개하고 자신의 시 ‘늙은 염장이에게 들은 말’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다’ 등의 작품을 소개하며 이야기시를 설명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다

                                   이승하

몸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모아
눈을 뜨신 아버지
가족 한 번 쳐다보고
천장 한 번 쳐다보고
눈을 감았다가 금방
다시 뜨신다.
이 세상 이 순간 이렇게
뜨기는 싫으신 듯

이대로 눈을 감으면
영원한 암흑.
죽음의 세계일 테니
한 번만 더 눈을 뜨자
한 번만,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사물을 보자고
자, 한 번만 더 눈을 뜨자고
아버지는 안간힘을 하고 계신 거다
삶의 마지막 암벽에
지금 매달려 계신거다

오르고 미끄러지기를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예닐곱 번
마지막 기운마저 빠지자
눈을 크게 떴다가
감으신 아버지
두 줄기 눈물을 주르르 흘리신 뒤
숨을 멈추셨다
그 몇 방울의 눈물로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 된다

그리고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수필 한 편을 소개하면서 굴곡 많은 가족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시는 자신의 환경과 체험에서 우러난다고 할 때, 시인이 겪은 모든 고뇌와 힘겨웠던 체험은 결국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자양분으로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시인의 진솔한 강의를 들으면서 바로 저런 솔직함과 진실성에서 감동적인 시가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고 언어선택이 탁월해도 시적인 진실성이 없으면 좋은 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좋은 강의를 마련해준 남동문학회에 감사하고 이런 행사가 해마다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강의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참석자가 많지 않아 주최측에서 당혹스러워했다는 점이다. 회원과 시민들의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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