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인자요산 지자애산 용자호산(仁者樂山 智者愛山 勇者護山)'이다.
'어진 사람은 산을 즐겨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산을 사랑하며, 용기 있는 사람은 산을 보호한다.'는 이 말이 매주 쓰레기봉투를 들고 청주와 대청호 주변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찾아다니는 청주삼백리 회원들에게 딱 들어맞는다.
지난 일요일(13일)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청원군 낭성면 인경리와 미원면 화창리 사이에 있는 인경산을 다녀왔다. 산성터널과 낭성소재지를 지나 호정교 못미처에서 초정약수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호정대신로를 달리다 인경삼거리에서 우회전해 한티를 넘으면 좌측으로 화창리농기계보관창고가 보인다. 창고 앞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만나는 숫골의 화창리 경로당이 산행의 들머리다.
인경산(仁景山)은 높이 582m로 청주․청원지역에서는 꽤 높은 산이지만 전형적인 시골마을 화창리의 경로당에서 바라보면 높이에 비해 산세가 편안해 보이고,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인근의 마을들을 품고 있는 모습에서 인자함이 묻어난다.
출발에 앞서 이번 산행에 참석한 청주시민과 청원군민들이 인사를 나눴다. 한범덕 청주시장님은 홀로 승용차를 몰고 참석하셨다. 왼편의 산길로 접어들면 화창리에서 북쪽의 대신리로 향하는 임도가 이어진다. 마을을 벗어나면 제법 널찍한 임도를 따라가며 줄지어선 잣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비포장이라 걷기 좋은 흙길에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들이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내며 운치를 더한다.
임도 아래편으로 작은 도랑과 예전에는 농지였을 습지가 나타나자 요즘 도시에 출몰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멧돼지에 관한 얘기가 이어졌다. 김학성 전 충북환경운동연합 대표는 독일은 산속에 멧돼지가 살기 좋은 습지를 만들어 먹이까지 제공한다며 인간과 산짐승이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조성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한참 낙엽을 밟으며 가을 분위기에 젖는데 임도를 가로막은 쇠줄이 출입금지 구역을 알린다. 이곳에서 왼편의 산길로 접어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산등성이를 만난다. 등성이를 한 줄로 늘어서 따라 오르다 회원들이 물푸레나무 연리목을 발견했다. 연리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며 사람의 욕심에 의해 지금은 고사목이 된 송면의 연리지를 생각했다.
연리목에서 10여m 거리의 산마루에 산불감시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인경산의 정상을 알리는 표석이 서있다. 정상은 나무 끄트러기가 많아 쉼터로 적당하지 않고, 나뭇가지들이 주변의 전망을 가리지만 모인 사람들끼리 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로프를 잡고 조심해야할 만큼 미끄러운 내리막길도 있지만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널찍한 쉼터에서 억새들이 반겨준다. 이곳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늘 그렇듯이 싸온 게 없다는 건 빈말이다. 배낭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으면 먹을 게 지천이다. 기분이 좋을 만큼 막걸리 몇 순배 도는 것도 기본이다.
청주시민과 청원군민이 함께하는 산행이라 청주‧청원의 통합과 싼 배추 값이 화두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세상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산에 올라 행정적인 얘기를 오래 할리 없다. 청주삼백리 회원들은 산행 중 상대방에게 불쾌한 발언을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산 아랫부분의 습지에서 멧돼지들의 놀이터를 만난다.
산에서 내려서면 마을이 바라보이는 길가에 키가 큰 노송이 있고, 그 아래에 청원군이 고향이신 한범덕 시장님의 선대 묘소가 있다. 출발지인 경로당에서 바라봐도 가족묘 뒤편의 노송 때문에 인경산 아래편의 풍경이 멋지다.
인경산을 산행하다보면 널찍하고 한적한 임도, 나뭇짐 지고 넘던 소로, 이웃마을과 연결된 마실길,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를 다 만난다. 인경산 산행은 비교적 짧은 코스이고 찾는 이가 적은 한적한 산길이라 잠깐 짬을 내서 다녀오는 산행지로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