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진리는 대학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어릴 때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이야기 속에서 배웠다.'는 괴테의 말처럼 동화는 어린이들의 인지적·정의적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년부터 개정된 2학년 2학기 <듣기 말하기>교과서에 ‘황소가 된 돌쇠’ 이야기가 나온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으로 학교교육에서 교과서는 매 차시 수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바이블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텍스트로서 수업의 정수(精髓)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개정된 교과서를 살펴보면 <듣기 말하기>교과는 창의적 의사소통의 방안으로 동영상 자료나 구전동화를 많이 수록했고 고전문학은 대부분 전설, 민담, 신화의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수록했으나 특이하게도 읽기 교과서에 규중칠우쟁론기를 바탕으로 한 동화 ‘아씨방 일곱 동무’가 눈에 띈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리는 동화내용은 그 재미에 못지않게 교훈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학년 2학기 책에 소개된 황소가 된 돌쇠(부록 CD에 나온 영상 : <황소가 된 돌쇠>, 인형극단 '친구들', 2009 동영상 자료) 인형극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아주 게으른 돌쇠라는 총각이 있었는데 돌쇠는 매일 먹고 자고 싸기만 했다. 하도 어머니가 게으르다고 잔소리를 하셔서 낮잠 자러 산에 갔는데 어떤 노인이 소의 탈과 천을 가지고 있길래 돌쇠는 그것을 써 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돌쇠가 황소로 바뀌어 있었다. 노인은 황소가 된 돌쇠를 시장에 가서 어떤 농부에게 ‘이 소에게 무를 먹이면 소가 죽으니 절대로 무를 먹이면 안 된다’고 하고는 소를 팔았다. 황소가 된 돌쇠는 매일같이 밭을 갈며 일을 해야 했다. 일이 너무 힘들었던 돌쇠는 죽으려고 생각하고 무 밭에 가서 무를 먹었다. 그러자 돌쇠는 죽지 않고 다시 소에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돌쇠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이 이야기는 <듣기 말하기>교과서에서 ‘읽었던 동화책의 재미있는 장면에서 인물이 한 말과 행동을 찾아봅시다.’라는 주제로 선정된 차시이다. ‘황소가 된 돌쇠’ 이야기가 담고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아마도 ‘근면’ 즉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는 내용일 것이다. 이 인형극을 보게 된 학생들은 돌쇠처럼 게으름을 피우면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부지런한 어린이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각을 달리해서 생각을 해보자. 돌쇠는 소로 변한 후 너무나 힘이 많이 들었다. 매일 같이 잠을 잘 수도 없고 좀 쉬려고 했다가는 어김없이 농부의 채찍이 등을 내리치게 될 테니까. 이런 어려움을 겪자 돌쇠는 노인이 한 말을 떠올렸다. 무를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즉,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죽기로 마음먹고 무를 먹은 후 돌쇠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더욱 열심히 일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자살을 결심하게 되자 비로소 사람이 되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소: 음매~. 흑흑. 엄니. 흑흑흑. 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유? 어차피 내일이면 도살장에 끌려가야 하는디……. 그냥 여기에서 콱……. 가만 그런디 내가 뭘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디 그게 뭐였더라?
-중 략- 자, 그럼 간다! 하나, 둘, 셋! 으다다다! 잡았다. 엄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셔유. 흑흑흑, 엄니. 우걱우걱. 엄니!
이 인형극을 본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혹시 살다가 너무 힘이 들면 ‘자살을 해도 된다’라는 사실을 자기도 모르게 배우지 않을까? 요즘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연예인들과 정치인, 기업인들의 잇단 자살 소식은 성인들에게도 모방 범죄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하는데 아직 정신적·신체적으로 미숙한 초등학생들에게는 더 큰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어쩌면 학생들은 재미있는 인형극을 통해 본래 얻으려던 ‘말과 행동을 실감나게 표현해보기’나 ‘근면’이라는 덕목보다는 ‘자살’이라는 부정적 행위를 은연중에 접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교과서에 실리는 동화의 소재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동화나 이야기 소재는 재미와 더불어 그 교육적 효과도 같이 고려되어야한다. 이 이야기 소재가 꼭 필요했다면 약간의 각색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교과서에 많이 등장하는 <금도끼 은도끼>이야기는 ‘정직’을 가르치기 위함이지만 산신령이 나무꾼에게 금도끼, 은도끼를 보여준 것은 마음을 떠보기 위한 ‘의심’이 전제되어있고,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이 목욕하는 장면을 몰래 숨어서 보거나 결혼을 하기위해 선녀의 옷을 숨긴 것 등은 아이들에게 괜찮은 것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작금(昨今)의 자살 문제, 관음증, 인신매매 등으로 점철되는 현 사회의 문제들이 어렸을 때 지금의 성인(成人)들이 접한 이러한 전래동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이 기우(杞憂)이기 만을 바란다. 요즘 학교에서는 생명존중 교육, 성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이참에 교과서에 수록된 전래동화 내용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