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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동심과 시심은 상통한다


윤일주 시집 “동화(童畵)”-윤동주 시인 친동생의 유고시집



많은 시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꼽으라면 윤동주 시인을 꼽는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 윤동주 시인이다. 그런데 그의 친동생 윤일주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윤동주 사후에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윤일주도 사후에 시집 '동화'를 남겼다. 윤동주의 시에 아우가 등장하는 시가 두 편이 있는데 ‘아우의 인상화’와 ‘오줌싸개 지도’이다.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여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 전문(1938. 9. 15)

여기에 나온 동생이 바로 윤일주의 초상인 것이다. 윤일주는 1927년 요즘 ‘연변’이라는 지명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만주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다. 윤동주는 해방 직전 일본 감옥에서 옥사했지만 윤일주는 해방 직후 진학을 위해 서울에 왔다. 1946년 9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여 1953년 3월 졸업했다. 동란 때문에 학업이 늦어진 것이다. 그 후 1961년 3월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해군에 복무했다. 제대한 후에는 부산대학교, 동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85년 간암으로 58세의 삶을 마감했다.

윤일주는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이 옮겨가는 바람에 용정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 우리말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 ‘동화’에는 65편의 시가 실렸는데 31편이 동시다. 윤동주의 시집에도 115편 중에서 동시가 37편인 걸 보면 이 두 형제 시인의 유사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엔 유난히 동심이 많이 드러나 있는데 시심은 동심과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심정의 서술만으로는 현대시가 되기 어렵다. 윤일주의 시가 심정의 시이면서도 진부한 서정시가 아니라 세련미를 갖추고 있는 것은 언어의 그림, 즉 시각적 이미지의 제시라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도(縮圖)

따가운 모랫벌을
모래 투성이 된 개구리 한 마리
톡 톡 톡 뛰어가네

사막(沙漠)

-‘축도’ 전문

위 시에서 마지막 한 행을 이루고 있는 ‘사막’이라는 단어가 이 소품을 감칠맛 나는 시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그 한 단어로 금세 시의 이미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윤일주는 1955년 “문학예술”지에 두 차례에 걸쳐 ‘설조 雪朝’와 ‘전야 前夜’가 추천되어 정식 시인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군에 몸담고 있을 때까지 종종 이어지던 시 창작이 대학 강단으로 옮긴 후 중단됐다. 그의 시작 기간은 20년 정도 되지만 작품 수는 65편에 불과하다. 그의 시에서 특히 두드러진 내용은 고향과 가족에 관한 회상이다. 작품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낡은 맥고모 아래
허어연 수염 바람에 날리며
단을 묶는 할아버지는
진종일 내 반나체(半裸體)의 배경(背景).

곡식을 베고 난 들에
해는 서산에 걸리어

들은
할아버지 손바닥.

-‘들' 전문



파아란 하늘 밑으로새로 일군 이랑들이
끝없이 끝없이 뻗어나간 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종일 바쁘시다.

아버지는 괭이로 이랑을 지으며
나가면 나가는 대로 어머니는
졸졸 따르며 씨앗을 넣으니

괭잇날에 솟쳐나는
먼 할아버지들의 뼈.

소리 잃은 암탉과
조는 고양이를 데리고
집에 홀로 남은 나는

새파란 하늘에 송이송이
구름처럼 비낀 할아버지들의 뼈를
진종일 바라보는 것이다.

 - ‘봄’ 전문

망향(望鄕

푸른 하늘이 멀리 국경을 넘어가고

송이와 송이 서로 부닥치며 휘감겨
눈보래를 일으키던 먼 하늘가,

이제 종달새 울음 넘쳐흐르며

대지의 가슴으로
사래 긴 이랑들
늑골처럼 휘어져 뻗는데

어느 이랑 끝에서
아버지는 또 소를 돌려세우시는가

하늘, 저 깊은 곳에서
아스라이 들아오는 정다운 메아리,

뒷산 어느 바위에 서서
그리운 아이들이 노래부른다
진달래를 꺾으며 흥얼거린다.

 - ‘망향’ 전문

언덕길

여름내 소를 이끈 할아버지와
꼴망태를 맨 손주가
다정스레 오르고 내리던 길.

오늘
손주는 목메어 흐느끼며
상여에 뒤따라 오르고,

하늘 비낀 눈망울을 꿈벅이며
새김질 하며
황소는 풀밭에 저만치 서 있고

 - ‘언덕길’전문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 몇 편 전문을 옮겼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시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1947년에 쓰여진 ‘언덕길’은 할아버지의 장례풍경이 나타나 있다. 그의 시엔 소에 대한 내용이 자주 보이는데 소도 가족의 일원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망향에 보면 대지나 밭고랑 까지도 의인화 되어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그 시절 우리들의 생활이 농경과 밀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외의 여러 작품에 고향과 가족을 회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의 시중에 기독교에 관 한 시가 몇 편 있기도 한데 윤동주의 시에 ‘팔복’ ‘십자가’처럼 기독교 관련 시가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윤일주의 기독교 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골 목사관(牧使館)

시골목사 목사관은 초가 삼간,
처마 밑에 자전거가 비스듬히 놓이고
동지섣달 추운 밤을 눈이 내린다.

교회당의 불을 끄신 다음
목사관의 불을 켜시고
두터운 성경책을 펴신 목사님은
돋보기 알에 그윽한 말씀의
사래 긴 이랑을 더듬으신다.

목사관의 불을 끄시고
목사님은 엎드려 기도 하실 제
지붕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눈앞에 삼삼이는 교우의 초막들
세찬 눈보라와 기도의 대목에서
나직이 울리는 도야지 울음에
뉘우쳐 눈을 뜨며 혀를 차신다.

미처 덮지 못한 우리의
지붕을 생각하고 돌아누우며
눈 속에 파묻혀 떨고 잇을
어린 도야지를 근심하여
밤내 잠 이루지 못하시는 목사님.

목사관의 불을 끄신 다음
교회당에 불을 켜시고
목사님은 손수 새벽종을 치실 것이다.

 - ‘시골 목사관’ 전문

윤일주 시인은 그 심정으로 보아 타고난 시인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타고난 시인이었던 형 윤동주가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균관대 건축공학고 교수로 있는 그의 장남 윤인석의 말대로 “유고집으로 시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두 분의 운명”이었던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집은 시인이 작고한 뒤 그의 장남이 김종길 시인에게 맡긴 것을 시인의 20주기에 맞춰‘솔’출판사에서 시집으로 편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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