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인근에 있는 대학 운동장을 달리면서 마라톤이라는 것을 해봤으니 시간으로 본다면 9년이나 된 셈이다. 처음 달렸을 때는 400m 정도 되는 대학 운동장이 왜이리 크고 넓게 보이던지. 헉헉거리며 한 바퀴만 돌아도 다리가 뻣뻣해졌고 나를 추월해가는 아주머니들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괜히 얄밉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을 달리다보니 가쁜 숨도 안정되어 갔고 뛰는 거리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기에 조금 자신감을 얻은 나는 그해 가을 부산 광안대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의 10Km 미니구간에 출전했다. 갓 개통한 광안대로를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많은 참가자들의 '끈질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씬한 몸매로 바람을 가르는 아저씨도 있었지만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끝없이 뛰고 있는 아줌마, 할아버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걷는 듯이 느릿느릿 뛰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리 빠르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쉼 없이 움직이는 다리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반환점을 돌고부터 한없이 무거워진 나에게는 주로 위의 모든 사람들이 황영조이자 이봉주였다.
어쨌든 나는 그날, 처음 출전한 마라톤대회에서 한 번도 걷지 않고 끝까지 뛰어서 완주했다. 1시간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었지만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을 올림픽 금메달 못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했다는 뿌듯함이 목에 걸린 완주매달처럼 주어졌다.
오늘은 동호회(부산교사마라톤) 사람들과 사직보조경기장을 뛰었다. 보름정도 쉬어버린 탓도 있고 추운 겨울인 점을 가만해 조금 천천히 몸을 풀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 400m 트랙을 25바퀴를 돌았으니 10km를 뛴 샘이다. 손목에 찬 타이머는 1시간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10년 전 처음 달릴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다. 달리는 시간이나 거리가 꾸준히 늘었고 동호회를 통해 달리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10km 단축코스 뿐만 아니고 21Km 하프코스도 주기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42.195km 풀코스를 달려볼 용기를 내기도 한다.
복잡한 장비나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 없고 남과 경쟁을 통해 승부를 판가름하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내가 즐기는 최고의 여가가 됐다. 달리기라는 단순한 반복을 통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 묻혀버린 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고 운동 뒤에 주어지는 휴식의 뿌듯함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달리기를 통해 세상을 둘러볼 수 있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하루키 역시 달리기를 통해 세상과 글쓰기, 혹은 글쓰기와 자신 사이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글이라는 틀에 매몰되지 않도록 자신을 단련시키면서 동시에 오래도록 글줄기를 뽑아낼 수 있는 체력적 밑바탕을 만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해보일 수 있는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통해 내면에 감추어진 욕구를 풀어내는 힘과 절제력을 동시에 단련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달리기에 대한 그의 철학인 동시에 그의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에서건 매일 10Km 이상씩을 달리며 자신을 훈련시켜 온 작가가 마라톤과 철인삼종경기를 통해 끝없이 자신을 단련시켜나가는 한 인간의 자화상을 그렸다.
문득 뜨거운 아스팔트나 비오는 운동장을 몇 시간씩 달려보지 않은 이들에게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가 된 기분"을 전해준다는 게 인생의 커다란 해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은 아깝기도, 샘이 나기도 했다. 심장을 태우며 쏟아내는 진한 땀방울은 책상머리나 컴퓨터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인데 말이다.
올해는 42.195km의 풀코스를 달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로에 있겠지만 달리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일 것이다. 격해진 호흡과 굵은 땀방울로 온전한 나를 껴안고 싶다. 달리기라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와 마주하고 싶다. 아니, 나라는 존재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다. 그땐 아마도 하루키의 마음을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역시도 지구 어디선가 나와 같은 마음이 되어 달리기를 하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