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4 (목)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봄 꽃 폭탄에 몸살을 앓는 산수유 마을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물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적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이 시는 이호우의 ‘산길’에서이다. 자주 내리는 비가 봄을 재촉한다. 비 갠 다음날 물기를 머금은 들녘을 햇볕이 따스하게 어루만지자 논두렁 밭두렁은 초록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춘분을 지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 봄이면 꽃나무 중에 제일 먼저 개화한다는 산수유가 마을 초입부터 노란 꽃등으로 불을 밝히고 한적한 골목에 피어난 목련과 더불어 나그네 마음을 훔치며 수줍은 인사를 한다.

지리산 자락 산골마을. 산등성이는 아직 겨울 회색빛에 점령되어 있지만 산 아래 마을에는 눈물 나도록 환한 산수유 빛이 진종일 봄날을 밝히며 노랗게 짙어지고 있다. 어느 마을이나 가까이에는 개울이 있기 마련이다. 이곳 상위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물소리는 긴 겨울의 정적을 깨우며 수정같은 포말을 흩어 놓는다. 문득 마을을 따라 달리는 개울을 보니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에 흐르는 개울이 겹쳐진다. 바다를 끼고 산과 어우러진 그곳도 지금쯤 봄이 한창일 것이다. 땅의 봄이 무르익으면 바닷속도 봄을 맞이한다. 봄 하늘과 햇볕에 물든 비단결 같은 남해의 연푸른 해변과 몽돌밭이 아른거린다.

산수유 마을의 돌담길. 긴 세월의 속삭임이 거무스름한 이끼에게서 묻어나고 이름 모를 산새 소리만 내려앉는다. 골목길 어귀에 좌판을 낸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전에 이 마을도 꽤 번성했던 곳이라 한다. 산수유 농사가 주 수입원인 이곳도 젊은이는 떠나고 대부분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산골의 봄소식을 산수유꽃이 일찍 알려주어 좋지만, 늦가을 빨간 산수유 열매를 수확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 돌담으로 쌓아 올린 텅 빈 골목엔 파란 하늘과 바람만 내려앉았다 길을 떠난다.

마을을 뒤로 산길을 올라 내려다보니 온 집들이 꽃 속에 파묻혀 있다. ‘고향의 봄’에 나오는 꽃 대궐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온 천지 노란 수채화 물감을 뿌려 놓고 그 사이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눈을 돌리면 계곡 바위틈의 버들강아지가 부서지는 물보라와 함께 은색으로 빛난다. 슬로우시티!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다. 바쁘지도 서두를 일도 없는 시간, 마을 안길을 돌아서 나오는 길. 봄 햇볕을 쬐며 모이를 찾던 병아리들이 낯선 행인의 출현에 놀라 어미 닭의 품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환한 햇살, 노란 병아리, 산수유꽃 늘어지는 봄 나절! 산수유 마을의 정취를 담고서 남도의 봄은 더 진한 하모니를 연주한다.

산동면을 벗어나 섬진강을 따라 내달리는 19번 국도. 봄길도 심한 봄 앓이를 하고 있다. 바로 매화꽃,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개나리의 융단폭격으로 강은 봄꽃 열병에 콜록거리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비탈진 곳에 자리를 잡은 산동네를 본다. 멀리 떨어진 집 뜰에도 복사꽃이 환하게 손짓을 하고 낮은 언덕마다 회색빛을 밀치며 서서히 피워내는 싱그러운 봄의 향연이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처럼 다가온다.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봄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봄! 산골 마을은 산골마을대로 바닷가 마을은 바닷가 마을대로 그 특징이 있다. 봄바람에 실려오는 따스한 향기가 오감을 즐겁게 하지만 바다를 끼고 자란 습생은 민물 냄새보다 짭조름한 갯내음을 더 그리워한다. 바다를 낀 섬의 봄을 생각하며‘물새는 물새라서 바닷가 바위틈에 알을 낳는다. 산새는 산새라서 잎 수풀 둥지 안에 알을 낳는다. 산새알은 알락달락 알록지고 물새알은 간간하고 짭조름한 미역냄새 바람냄새를 담고 있다’는 박목월의 시를 섬진강변 봄바람 속에 날려본다.

모처럼 봄 찾아 나선 걸음. 마음껏 봄에 취해 각본 없고 감독 없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날 노랗게 번져가는 몇 시간 전 산수유 마을의 전경이 길어지는 봄날 발목을 잡는다.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