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느낌을 안고 산책로를 걷는다. 시간이 날 때면 사색과 운동을 하는 길이지만 오늘은 더욱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아파트를 나서면 아스팔트와 보도불럭길을 걷게 된다. 큰 도로를 건너면 계명산쪽으로 오르는 흙길이 나온다. 해동(解凍)이 될 때는 습기가 있어서 신발에 흙이 묻어나기 때문에 불편했다. 비탈에서는 미끄러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촉촉이 다져진 흙길이 너무 좋았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면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포근함이 인공으로 찌든 내 마음을 달래어 주는 느낌을 받는다.
삼월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복숭아과수원 옆길을 걷는다. 복숭아 나뭇가지 끝을 보니 붉으스레 움이 돋아날 기운을 느끼게 한다. 꽃이 오기를 기다리며 전지(剪枝)를 한 복숭아나무 모양이 손가락을 활짝 펼친 듯 나에게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는 농부가 덤불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종달새는 짹짹거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산비탈 밭가장자리에서 장끼 한 마리가 하늘로 치솟으며 겨울동안에 움츠렸던 호흡을 토해 낸다. 봄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가?
저 멀리 봄볕과 함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묵은 밭가장자리에 앉아 달래냉이 씀바귀를 캐는 아낙네의 모습도 봄소식을 알리는 것 같았다. 등산길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정다운 인사를 나눈다. 자연에 나오면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등산로가 만약 곧은길로 되어 있다면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모를 것 같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구불구불 돌아가기 때문에 지루한 줄 모른다.
과수원이 끝나갈 무렵이면 소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산을 바라보면 아직 새싹이 움트지 않았지만 만수지왕(萬樹之王)이라고 불리는 소나무는 모진 한풍(寒風)을 겪어서인지 솔잎이 너무 싱싱해 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약 100여 미터 있는데 그 길을 걸을 때가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흙길도 좋지만 지난해 낙엽진 솔잎이 융단처럼 깔려있어서 나무에서 내뿜는 솔 향을 맡으며 걸으면 천국에 온 느낌을 받는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능선의 평평한 지점에 다다르면 나는 깊은 호흡을 하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자연의 맑은 공기를 더 많이 마시고 자연과 내몸이 하나임을 느끼며 교감을 주고받는다. 이보다 더 좋은 헬스장이 있을까? 운동기구는 없어도 자연과 더불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여름철이 되어 숲이 우거질 때면 나무그늘에 앉아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산에서 내려 올 때는 성취감을 안고 가볍게 내려온다. 은퇴 후에 전원생활을 누구나 한번 꿈꾸게 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과일나무를 가꾸고 채마밭을 일구어 주말이면 자녀들이 찾아오는 그림 같은 집을 그려본다. 사위들과 외손자들이 찾아오면 정원에서 삽겹살을 구워 상추쌈을 먹으며 밤하늘에 추억을 새겨보는 아름다운 꿈을 언제나 실현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시멘트 구조물로 된 집안으로 들어서려니 벌써 자연이 그리워진다. 자동차로 이동하지 않아도 30분만 올라가면 자연 속에서 교감을 할 수 있는 시내 변두리에 살고 있다는 것도 너무 큰 행복이라는 것을 봄이 오는 향기를 마시고 돌아오면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