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자꾸 마음이 산란해진다. 10대 적에 시가 좋아서 대학노트 가득 시를 써보던 이래 수십 년간 시를 아주 놓지 못하고 지내왔는데, 그 결과가 지금의 나라고 생각하니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 없다. 바쁜 직장 생활 틈틈이 글을 써서 8권의 시집과 2권의 수필집을 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종종 시인의 이름표를 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내 작품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데 주된 원인이 있다.
객관적 평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도취하여 작품집을 내는 데만 열중한 것 같다. 문학에도 '스펙 쌓기'가 중요하다는 걸 근래 나는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대학도 명문대가 있어서 사회의 평판이 다른 것처럼 문학에도 좋은 문예지나 신춘문예 같은 권위 있는 매체를 통해 등단했다면 내 문학도 일취월장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보는 독자나 문단의 시선도 다를 것이다. 이러한 점에 나는 소홀했다.
또 한 가지는 시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시도 예술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내용과 형식이 있고 시창작의 기본요령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문예창작 강사들은 그 분야에 연륜을 쌓아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을 터이다. 나는 체계적으로 배워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오로지 글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감정의 찌꺼기들을 걸러내는 데만 급급했다. 그래 첫 시집을 발간한 지 27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떳떳하게 이름 석 자 문단에 올려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7월 26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한 강연회가 있었다. '다음세대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공동 주최하는 '내 문학의 기원' 강연회에 신경림 시인이 나오는 자리였다. 10여 년 전 한 여학교에 근무할 때 '명사초청 강연회'에 신경림 시인이 강사로 초빙된 적이 있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많이 연로해지셨으리라 했는데,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아주 정정한 모습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분이니, 시인의 노후 삶은 내 노후를 대비하는 데도 귀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그의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한다. 현실과는 무관한 신선을 대하듯 하는가 하면 하루 세 끼 밥 먹고 세상사에 부대끼며 사는 보통의 생활인 모습보다는 우리와 다른 신성한 존재로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신비스럽고 신성한 요소는 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갖고 있는 아주 보편적인 일면이다. 하루 세끼 끼니를 해결하고 자식 학비 걱정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늙어가는 것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인에게도 아주 보편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 사람을 시인으로 성장시키고 평생 시인의 삶을 살게 하는가? 그것은 사소한 칭찬과 성취가 그 원동력이다. 신경림 시인도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칭찬이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했다고 한다. 국어를 가르쳤던 유재영 선생님이 계셨는데, 자기를 아껴주고 시를 쓸 적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 분이 바로 유종호 평론가의 부친이라고 했다.
첫 시집 '농무'를 출판하던 때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시집을 내줄 출판사가 없어서 자비로 500부를 찍어 그 많은 책을 어떻게 처분할지 몰라 고민했다는 얘기였다. 자비 출판 이후 우연히 창비시선 제1권으로 다시 출판한 얘기를 하며 '결국 좋은 시는 살아남는다, 독자에 의해 살아남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 시대정신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적 탐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이전엔 해외여행이 금지되어 국내여행만 많이 했다며 대한민국 군 단위 지역 안 가본 데가 없는데, 바깥 여행보다 내적인 여행, 정신적 여행이 더 중요하다는 말 속에서 시의 본질을 감지하기도 했다.
지금도 수천 명의 시인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시를 쓰고 시인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을 내고 동인지를 발간하고 모임을 만들어 회장을 뽑고, 정기총회와 세미나를 열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모처럼 몇 만원 원고료가 들어오면 천하를 얻은 듯 기뻐하며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다. 우리 모두 유명 문인이 될 수는 없다. 시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시인이 되는 것보다 더 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시인 동네' 내부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온갖 악취가 풍기기도 한다. 가끔 나는 시인 이름표를 떼고 저만치 물러서서 옛날 문학 소년 시절로 돌아가 시 본래의 순수를 되찾고 싶기도 하다.
시간의 빛깔
나무마다 제 빛깔로 물들고 있다
밤나무는 밤나무의 빛깔로
떡갈나무는 떡갈나무의 빛깔로
젊어선 나의 빛깔도 온통 푸른빛이었을까
목련꽃 같던 첫사랑도
삼십여 년 몸 담아온 일터도
온통 꽃과 매미와 누룽지만 같던 고향마을도
모두 제 빛깔로 물들고 있다
늙는다는 건 제 빛깔로 익어가는 것
장미꽃 같던 정열도 갈 빛으로 물들고
농부는 흙의 빛깔로
시인은 시인의 빛깔로 익어가는 아침
사랑과 미움, 만남과 헤어짐
달콤한 유혹과 쓰디쓴 배반까지도
초등학교 친구들의 보리 싹 같던 사투리도
입동 무렵의 빛깔로 물들어 가고 있다
<졸시 '시간의 빛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