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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호반의 정자와 어우러진 대청호

옛 사람들은 자연으로 자연을 즐겼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옛 그림과 글에 자주 등장하는 정자(亭子)다. 우리 주변에 자연의 풍치와 선인들의 풍류가 담긴 정자가 많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폭포나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의 정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예나 지금이나 정자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듯 김종의 시조 '정자'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사람에 대한 향수, 구름처럼 흘러간 옛 시절이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세월이 희끗한 정자는 한 폭 그림/ 구름 속에 떴다가 은은히 잠겨들고/ 바람을 기울이는 단가(短歌) 하나가 실처럼 날아온다.// 누군가 따르는 저 구름 아래로/ 산봉 하나 둥둥 떠 흘러 내려오고/ 부채 든 신선 몇 분이 조는 듯 앉아 있다.// 간간 바둑소리가 구름 속에 머물고/ 꽃잎 터지는 소리가 붉게 섞여 들 즈음/ 하늘도 잠시 내려와 물에 발을 담근다."

개발을 앞세워 자연을 마구 파헤치는 답답한 세상. 시나브로 정자에 관한 기억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모든 것이 급변하지만 결국 옛 사람들이 살던 모습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시골의 원두막처럼 작은 정자면 어떤가. 무더운 여름,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장소로 떠나보자.

함께 할수록 자연에 대한 고마움이 불쑥불쑥 샘솟는 대청호반에 소중한 사람과 동행하면 좋은 정자가 여러 곳 있다. 풍경이 아름다운 오각정, 초가정, 현암정, 찬샘정, 청풍정이 대청호의 물결과 하나의 몸통을 이룬 채 사람들을 기다린다.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백합나무 가로수길이 호반을 따라 이어진 청남대는 잘 가꿔진 수목원이다. 입장이 까다로운 만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숲을 느끼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산책로는 어느 길을 가든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산 좋고 물 좋은 것은 동물들도 안다. 다람쥐와 청설모가 길에서 환영하고 나무위에서 재잘대는 새소리가 낭랑하다. 청남대의 오각정과 초가정은 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일상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최적의 장소다. 


청남대 제1경 오각정은 무궁화 모양의 오각형 정자다. 본관에서 놀이터 옆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가면 역대 대통령과 가족들이 애호했던 산책길이 350여m 이어지고 그 끝에 낮에는 호수, 밤에는 달을 구경할 수 있는 정자가 있다. 호반의 절벽위에 있어 푸른 물과 녹색 숲, 나뭇가지 사이로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이 절경을 이룬다.


청남대 제2경 초가정은 국민의 정부 초기에 지은 초가 정자다. 초가정까지 사열하듯 줄지어선 메타세콰이어와 마사로가 이어진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색을 즐겼던 정자에 앉으면 대전시 동구의 성치산 방향까지 넓은 호수가 한눈에 들어와 섬에 와 있는 느낌이다. 솟대가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이곳에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에서 가져온 농기구와 문의 지역에서 수집된 전통생활도구를 전시하고 있어 옛 정취가 풍긴다. 


현암정은 문의에서 대청댐으로 가다 만나는 현암정휴게소 앞에 숨어있다. 대청댐을 건설할 때 해발 150m의 절벽위에 세운 콘크리트 팔각정자로 조망이 좋아 대청댐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휴식공간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대청댐 수문, 물문화관, 청남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또한 한려해상국립공원처럼 호수에 떠있는 작은 섬들이 수면에 비친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다.


동구의 직동 찬샘체험마을 뒤편으로 냉천로를 달리면 호반에 찬샘정이 있다. 정자에 올라 대청호를 내려다보면 호수에 비친 하늘과 크고 작은 섬들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얼음처럼 차고 시원한 샘물이 솟던 찬샘이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인근의 수몰민들은 달밤이나 마음이 울적할 때 이곳에 모여 향수를 달랜다. 보름날 즈음 호반 위에 떠오른 둥근 달과 다도해를 닮은 호수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물속에 잠긴 고향과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에 좋다. 이 길을 갈 때는 홀로 걷던 연인들이 두 손을 꼭 잡고 내려온다는 속설대로 이번 여름 찬샘정에 올라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좋다. 정자 앞에 산 좋고 물 좋은 냉천 땅을 그리워하는 수몰비가 세워져있다.


대청호의 위쪽인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징걸마을에 세 칸짜리 정자 청풍정이 있다. 야산의 끄트머리 호반에서 단아한 자태로 금강을 굽어보고 있는데 산수가 좋고 공기가 맑아 선비들이 자주 찾던 명소다. 이곳에 갑신정변에 실패한 김옥균과 기녀 명월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온다. 자신 때문에 김옥균이 큰 뜻을 펴지 못한다고 자책하던 명월이 편지를 남긴 채 금강에 몸을 던졌고, 정자 바로 옆 바위에 '명월암'이란 글자가 또렷이 음각돼 있다. 달 밝은 여름밤에 찾고 싶은 장소로 정자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풍경이 빼어나다.

물가의 정자에서 만끽하는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의 풍요로움이 여름을 시원하게 한다. 물론 눈과 마음을 즐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대청호를 사랑하는 문화시민은 쓰레기를 되가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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