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가 피크였던 8월 4일부터 5일까지 815투어 회원들과 홍도와 흑산도를 다녀왔다. 회사에서 휴가를 받았다는 처남의 연락과 오랜만에 회원들의 얼굴을 봐야할 모임이 겹쳐 곤혹스러웠으나 주말 남서쪽 해안의 날씨가 맑다는 기상청의 예보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남자 펜싱 대표팀이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 따는 장면을 지켜보느라 날밤을 새우고 출발지인 몽벨서청주점으로 갔다. 오전 7시 목포로 향한 관광버스가 벌곡휴게소에 들린다. 야외의 인공폭포를 카메라에 담고 유부우동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눈을 감고 인생살이가 들어있는 노래들을 이어폰으로 감상하는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올림픽 중계방송이 피곤에 지친 눈을 뜨게 한다. 두 번째 쉼터였던 고인돌휴게소를 지나자 낮고 작아서 정이 가는 산과 마을들이 이어진다.
유독 홍도로의 여행길에 사건이 많았다. '차에 비디오카메라를 놓고 내려 마음고생을 하고, 태풍에 갇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비오는 날 유람선으로 들이친 빗방울에 디지털카메라가 고장 나고, 흑산도에서 아내의 휴대폰을 분실하고...' 그동안의 악연들을 생각하는데 목포 북항을 지나 목포대교가 눈앞이다.
기사님의 배려로 올해 6월 29일 개통한 목포대교를 왕복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목포대교는 목포신외항과 서해안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목포의 관문으로 해양대학교와 유달산, 장좌도와 달리도, 고하도와 허사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목포항국제여객터미널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쾌속선이 바다를 향한 모습이 역동적인 연안여객선터미널로 갔다. 조망이 좋은 4층에서 유달산과 시내를 바라보고 2층 대합실로 가면 오른편에 목포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보는 관광홍보관이 있다.
홍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15㎞ 거리의 망망대해에 있다. 오후 1시 홍도를 향해 출항한 여객선이 유달산 앞 목포대교, 팔금도와 안좌도 사이의 신안1교, 비금도와 도초도사이의 서남문대교를 차례로 지나는 천사의 섬 신안바다를 신나게 달린다. 여행하는 데는 어느 것이나 잘 먹고, 어느 곳에서나 잘 자고, 차멀미와 배멀미 안하는 무딘 신경이 좋다. 파도에 뱃머리가 자주 들리자 환호성 대신 비닐봉지를 입에 댄 사람들이 많다.
망망대해에서 실루엣처럼 나타난 흑산도를 먼발치로 바라본지 30여분만인 3시 45분경 홍도1구 죽항마을 뒤편에 도착했다. 이곳의 선착장은 태풍이 불어오는 여름철에만 이용한다. 홍도는 행정구역상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속하고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곳이라 여객선에서 내리는 사람 만큼 승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홍도는 붉은 옷을 입은 섬이라하여 홍의도로 불리다가 해질녘이면 바닷물과 섬이 온통 붉게 물들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비치모텔(061-246-3743)에 짐을 풀고 삼륜오토바이가 교통수단인 좁은 골목길을 돌아본 후 이곳의 최고봉인 깃대봉(높이 365m) 산행에 나섰다. 여객선에서 멀미로 고생한 사람들이 많아 산행 참가자가 적은 것도 어쩌면 자연의 섭리다.
깃대봉의 초입에 초등학생 15명, 유치원생 5명이 공부하고 있는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장이 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산위로 올라가면 원추리꽃이 만발한 산길에 선착장과 몽돌해수욕장, 홍도1구 마을과 양산봉, 등대와 바닷가의 기암절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몇 곳 있다.
연리지를 구경한 후 상록활엽수가 사계절 푸르른 연인의 길을 걸으면 발걸음이 편안하다. 바다 밑으로 구멍이 뚫려있었다는 숨골재, 여러 곳에서 숯을 굽던 숯가마터를 지나면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려놓은 깃대봉 정상이다. 표지석이 서있는 정상은 조망이 좋아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산길을 따라 40여분 직진하면 배로 왕래해야 하는 등대와 홍도2구 석촌마을에 갈 수 있다.
깃대봉을 내려와 한국전력 내연발전소까지의 산책로를 걷는다. 나무 테크로 이어진 산책로에서 마을과 항구, 등대와 기암절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해질녘 섬 전체가 붉게 물드는 모습이 홍도의 자랑거리다. 석양에 바다와 바위가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며 홍도해변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7시 40분경 홍도의 서쪽 해안과 만선의 꿈에 부푼 어선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아름답다.
늦은 저녁을 숙소의 주인이 운영하는 1층의 식당에서 회와 매운탕으로 포식을 했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처음 만난 회원들과 마음이 맞았다. 배가 불렀지만 마을 앞 선착장의 횟집에서 여럿이 어울렸다. 이날 주인장의 마음씨가 착한 '해녀 민수네집(010-7157-6547)'에서 늦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5일 새벽에 깃대봉 일출이 약속됐으나 산에 오르는 대신 우리나라와 영국의 올림픽축구 준결승전을 시청했다. 승부차기로 개최국을 이긴 승리의 기쁨을 객지의 여관방에서 만끽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마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러 산책로에 올랐다. 연세 많은 부모님을 모시고 산책하는 가족을 보니 이 세상에 없는 어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울컥했다.
다양한 전설을 간직한 기암과 크고 작은 19개의 무인도가 만든 홍도의 명승 33경은 유람선을 타고 섬 주위를 돌아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7시 10분경 유람선에 승선해 9시 30분까지 홍도해변부터 시계방향으로 유람을 했다.
한 폭의 동양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거북바위, 만물상, 2구 마을과 등대, 독립문바위, 띠섬, 진섬, 슬픈여, 공작새바위, 홍도1구 마을과 항구, 남문바위, 시루떡바위, 물개굴, 석화굴, 기둥바위, 원숭이바위, 도담바위, 남녀의 거시기바위 등 깎아지른 절벽과 분재를 닮은 소나무, 바다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이 절경을 만든다. 유람이 끝날 즈음 어선에서 파는 회로 소주 한 잔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다.
홍도는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감탄시킨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오랜 시간 카메라와 가슴에 담았다. 이 세상에 사람보다 아름다운 게 있을까. 일행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느라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10시에 홍도해변 선착장을 출항한 여객선이 20여분 후에 흑산도에 도착했다. 흑산도는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이후부터 사람이 살았고, 육지와 멀리 떨어져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인 정약전을 비롯해 많은 인물들이 유배생활을 하던 제법 큰 섬이다.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고 산지가 대부분인 흑산도의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을 돌아보는 연장 24km의 일주도로가 있다. 여객선터미널 옆에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올라 시계반대 방향으로 흑산도 일주 버스투어를 시작했다. 구수한 목소리로 흑산도의 역사와 풍경에 대해 설명하는 운전기사의 걸쭉한 농담이 재미있다.
차창 밖으로 진리지석묘군, 관음사, 흑산중학교, 천주교성당, 진리성결교회, 흑산면사무소, 흑산비치호텔, 연리지나무, 흑산초등학교, 배낭기미해변을 구경하고 굽잇길을 오르면 산중턱에 흑산도아가씨노래비가 있다. 이곳에서 내ㆍ외망덕도와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다시 지도바위, 간첩동굴, 솔섬, 샛개해변, 면암최익현선생유배지, 여자바위(구멍바위)를 지나고 도로변 어촌마을의 풍경을 구경하며 흑산항으로 갔다.
발품 팔은 만큼 보이는 게 여행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점심을 먹고 홍탁삼합원조인 '우리식당 할머니집'을 비롯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항구 주변의 모습을 돌아봤다. 큰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사방으로 연결되는 좁은 골목에 작고 초라한 다방, 끌려온 아가씨들이 묵었던 쪽방 등 흑산도의 옛 모습과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다.
마을과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뒤편의 쉼터에 올랐다. 해경초소였던 이곳에서 주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흑산항 바다 위에서 생선 시장이 열릴 만큼 고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육지에서 돈벌러온 아가씨들이 많았고, 들어설 틈이 없을 만큼 배가 꽉 들어차면 사람들이 배 사이로 통행했으며. 항을 새로 만들며 새하얀 모래가 가득했던 해수욕장과 주변의 해당화가 사라졌고,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진 후 처음으로 이미자씨가 이번 9월 15일에 흑산도를 방문한단다.
3시 40분 여객선에 올라 목포로 향했다. 섬에서 육지로 들어가는 배편이고 바람이 적어 배멀미를 안하니 모두들 생기가 난다. 날씨 덕분에 홍도와 흑산도의 모습을 제대로 구경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목포에서 청주로 가는 동안 휴게소에 들려 815투어 신광복 산대장이 준비해간 수박도 나눠먹고 차안에서는 일행 몇 명이 귀를 즐겁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