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교사폭력 사건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학생의 교사 폭력 사건이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으로 초등학생의 교사 폭력이 처음으로 수면위로 떠 오른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 사람들을 놀라움으로 밀어 넣는 듯하다. 초등학생인가 중학생인가 공등학생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승을 군사부일체라 여기며 그림자조차 밟지 않았다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젠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마구 뱉어내는 대상중의 하나가 교사가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을 퍼붓는 아이들과 그들을 통제활 수 없는 학부형들에게 그들만의 잣대에 의한 교원평가를 당하며 때론 인격적인 모독을 느끼면서 신명나게 아이들에게 나의 혼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가르치는 일은 내 혼을 내 영혼을 주는 일이다. 내 기를 전달하는 일이다. 한 시간 수업을 하고 난 후 내 기가 쑤욱 빠져 나가는 느낌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직 정서적으로 발달 단계적으로 미성숙한 학생들과 그리고 교사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학부형들의 분위기 속에서 교사로서 가장 먼저 갖게 되는 생각은 그래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냥 그만큼만 하자. 서운하지 않을 만큼만.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아이들이 나를 알아줄까? 학부형이 나를 알아줄까? 그래 내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아이들은 저런 태도로 저런 말로 나를 대하는 구나. 최선을 다 한 다음에 서운하기 보다는 서운하지 않을 만큼만 하자 하는 생각이다.
노나라의 장수 양호가 송나라를 공격했을 때의 일이다. 양호는 포악하고 파렴치한 만행을 많이 저질러 사람들에게 원한을 산 인물이다. 어느날 공자가 송나라를 방문했을 때 송나라 사람들이 공자를 양호로 착각하고 공자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공자는 그 모든 욕설을 묵묵히 듣기만하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 자로가 왜 아무런 사실도 말하지 않느냐고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물에서 만나는 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어부의 용기이고, 육지를 다니면서 외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 것은 사냥꾼의 용기다. 자신이 곤궁하게 된 것을 운명으로 알고, 뜻을 이룰 때가 있다는 것을 알며, 큰 어려움이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아는 것은 바로 성인의 용기이다.” 라고.
용기가 무엇일까? 용기란 특별한 상황 특별한 시간에 필요한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늘 지니고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와 태도라고 어부에게 어부의 용기가 없는 것은 나약한 것이고, 사냥꾼에게 사냥꾼의 용기가 없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이낙훈씨는 동아일보 그의 연재물에서 용기의 정의를 전하고 있다.
어부의 용기가 있고 사냥꾼의 용기가 있다면 우리 교사들에게는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 생각해본다. 바로 그만큼만, 서운하지 않을 만큼만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주고 내 시간을 주자는 그 만큼만의 생각과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한다. 교육은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다, 물건을 만들고 꿏을 기르고 과일을 기르는 무생물과의 소통과는 다르다.
살아있고 감정을 가진 생명 있는 자들과의 관계에서는 쌍방향의 아름다운 어울림 주고받음이 더 살맛나고 일하고 싶은 관계를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교사에게 들려주는 반응이 교사의 자세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더욱 더 그 인지상정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로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학부형의 싸늘한 냉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교육자로서 내 신념을 꿋꿋하게 실천 해 나갈 용기를 가지는 일이 매일 매일 우리 교사들이 가져야할 삶의 양식과 태도로서의 교사가 가져야할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