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지구촌 건너편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정오 뉴스에서 ‘피에타’(감독 김기덕)의 제69회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건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한국영화사상 처음이다.
여기서 잠깐 스포츠서울(2012.9.10)에 기대 세계 3대 영화제 수상 내역을 살펴보자. 우선 베니스국제영화제다. 1987년 강수연 여우주연상(임권택 ‘씨받이’), 2002년 이창동 감독상 ․ 문소리 신인여우상(‘오아시스’), 2004년 김기덕 감독상(‘빈집’), 2008년 예술공헌상(전수일 ‘검은 땅의 소녀와’) 등이다.
다음 베를린국제영화제다. 1961년 특별은곰상(강대진 ‘마부’), 1994년 알프레드바우어상(장선우 ‘화엄경’), 2004년 김기덕 감독상(‘사마리아’), 2007년 알프레드바우어상(박찬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11년 단편부문 은곰상(박찬욱·박찬경 ‘파란만장’) 등이다.
마지막으로 칸국제영화제다. 2002년 임권택 감독상(‘취화선’), 2004년 심사위원대상(박찬욱 ‘올드보이’), 2007년 전도연 여우주연상(이창동 ‘밀양’), 2009년 심사위원상(박찬욱 ‘박쥐’), 2010년 주목할만한 시선상(홍상수 ‘하하하’) · 각본상(이창동 ‘시’), 2011년 주목할만한 시선상(김기덕 ‘아리랑’), 2011년 비평가주간 카날플뤼스상(신수원 ‘서클라인’) 등이다.
수상 내역에서 보듯 1961년 ‘마부’를 필두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이런저런 상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세계 3대 영화제를 통틀어 이번 ‘피에타’의 최고상 수상이 유일한 것임도 알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받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이 한국의 영화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기덕 감독의 세계 3대 영화제의 ‘석권’이다.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이래 가장 많은 수상이다. 동시에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감독상, 주목할만한 시선상에 이어 황금사자상까지 김기덕은 세계 3대 영화제 최다 수상 감독이라는 기록도 갖게 되었다.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장한 일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피에타’의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확 ‘필’이 온 것은, 그러나 서둘러 영화를 봐야겠다는 조급함이었다. 수상 소식 전인 9월 6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 ‘피에타’가 교차상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사는 이곳 전주에서 ‘피에타’는 맘껏, 어느 때고 골라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유럽에서의 수상과 달리 대박은커녕 흥행과 남이었다. 그가 연출한 18편중 ‘나쁜 남자’(2001)의 70만 명이 최고 성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긴 ‘섬’(2000)은 제1회전주국제영화제 상영에서 표가 매진되기도 했다. 그래봐야 일반 개봉까지 합친 전체 관객 수는 3만 5천여 명이지만.
그 무렵, 그러니까 1996년 ‘악어’를 시작으로 ‘야생동물 보호구역’, ‘파란 대문’에 이어 4번째 영화 ‘섬’이 개봉(2000년 5월 13일)되었을 때 김기덕 감독은 독설을 퍼부어댔다. “4편을 만들도록 내 영화엔 관심조차 없는 평론가들은 직무유기하는 것”이라고.
평론집을 7권이나 내느라 죽자사자 영화를 봐온 필자 역시, 고백하자면 18편의 김기덕 영화중 애써 챙겨본 것은 4편뿐이다. ‘섬’ · ‘나쁜 남자’ · ‘사마리아’(2004), 그리고 ‘피에타’가 그것이다. ‘피에타’ 수상 소식에 전 언론이 호들갑을 떨어댄 것처럼이나 필자 또한 이전 태도를 싹 바꿔 서둘러 ‘피에타’를 본 셈이라 할까!
그것은 개봉 3주 만에 이미 800만 명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추석대목 영화들을 제친 이유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에 따르면 ‘피에타’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은 영화에 상영 기회가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기 때문 추석 연휴인 10월 3일까지만 상영했다.
손익계산서를 보면 9월 30일 57만 명을 돌파했으니 대박인 셈이다. 마케팅비까지 포함한 ‘피에타’ 제작비는 2억 원, 손익분기점이 25만 명이니까 말이다. 국제영화제 수상 덕을 본 최초의 김기덕 영화라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런데, 김기덕 감독의 의도적 상영중지조차 끝까지 영화계 이단아로서의 행보라면 필자만의 억측일까? 소설이 출판되면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관객이 없으면 모를까, 내 것이 아닌데 그렇듯 인위적으로 영화상영을 그만두는 건 썩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딴 짓’은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피에타’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전작들에 비해 많이 완화되었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섬’ · ‘나쁜 남자’ · ‘사마리아’ 들과 비교해보면 오십 보 백 보다. 그만큼 ‘피에타’는 ‘김기덕식’ 아니면 ‘김기덕표’ 영화이다.
‘피에타’는 한 마디로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사채업자 하수인 강도(이정진)가 어느 날 엄마라며 나타난 미선(조민수)으로 인해 인간다워지는 이야기다. 인간다워진다고? 그렇다. 강도는 송곳으로 이마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냉혈한이다. 영세상인들에게 빌려준 돈을 못받게 되자 보험금으로 받기 위해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는 걸 예사로 한다.
바로 김기덕식이다. 주제의식이나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탈리얼리즘적 표현기교, 독특하면서도 애잔한 정감이 생기는 등장인물의 성격창조 등이 그렇다. 거기에 “시발년아” 욕하고, 귀싸대기친 것도 모자라 엄마인지 확인한다며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갈게” 따위 위악적 묘사가 영락없이 김기덕표 그대로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버려 악인이 된 아들을 사람답게 만들려는 엄마의 죽음도 그렇다. 굳이 아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추락사하니 말이다. 엄마의 의도대로 사람이 된 강도가 피해자 아내의 차에 매달려 죽어가는 속죄행위도 마찬가지다.
그런 극단적 영상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거기에 “니는 돈 때문 죽지마라”라든가 “겁나니까” 섹스를 하고, 4만 원 생겼다며 환희작약하는 모습 등 “돈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주제의식 구현에 한몫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피에타’의 또 하나 미덕은 시종일관 의식을 떠나지 못하는 긴장감이다. 진지하거나 심각하거나 하다못해 골치아픈 걸 싫어하는 대중일반의 취향에 치여 상업영화로서의 성공이 유보되어온 김기덕 영화지만, 사실 필자로선 그런 흐름은 불만스럽다. 영화를 보러온 게 맞을텐데, 무릇 관객들이 팝콘 먹기 따위로 정작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에서 느끼던 불만과 같은 것이다.
‘도둑들’ 같은 오락영화가 한국영화 최다관객 동원 1위에 오른 현실을 부인할 수야 없다. 그렇더라도 ‘피에타’ 같은 ‘예술영화’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과 상관없이 폭넓게 상영되는 극장 인프라였으면 한다. 또 일정량 성공을 거둬 작지만, 뭔가 건질 게 있는 영화들이 상업영화와 상생하는 그런 풍토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피에타’는 갖게 한다.
물론 ‘피에타’가 완벽한 영화냐면 그렇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인지는 알겠는데, 디테일 면에선 좀 아쉽게 느껴진다. 우선 매끄럽지 못한 스토리라인이다. 예컨대 “죽이고 싶은 사람 있냐?” 해놓고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장면이 전환되고 있다. “옷은 어딨냐?” 해놓고 이어진 나무 심기 장면전환도 그런 경우다.
결정적인 아쉬움은 따로 있다. 엄마가 스웨터를 들고 가서 우는 대목이다. 상구를 부르는데, 그가 또 다른 아들인지 남편(강도의 아빠)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과 강도의 인과관계, 엄마의 그런 행위에 대한 구체적 당위성 결여가 아쉽다.
알고 보면 상구는 강도에게 당한 피해자중 한 사람이다. 미선은 상구의 엄마다. 그러니까 미선이 아들의 복수를 위해 거짓 강도 엄마가 된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본 관객중 과연 얼마나 그걸 다 알게 되었느냐 하는 데 있다.
또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갈게”에서도 실제인지 시늉만 낸 것인지 그럴 듯한 박진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낚시 바늘이 걸린 자궁 묘사가 너무 피상적이었던 2000년작 ‘섬’에서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배경음악이 너무 깔리지 않는 것도 아쉽다.
그것들이 어쩜 빈약한 제작비 때문이라면 얼마나 서글프고 씁쓸한 일이겠는가? 그러고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니 김기덕 감독과 ‘피에타’가 장한 또 다른 이유이다. 사족 하나! 신문 등 언론 표기가 ‘베니스’와 ‘베네치아’로 나눠져 있는데, 여기선 ‘베니스’로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