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가짜 왕 하선은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중전의 웃는 얼굴애서, 어린 궁녀 사월이, 조 내관의 얼굴에서도 웃음을 보고 싶어 했으며 언제나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도 부장에게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궁궐 밖의 백성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넘쳐나길 원하였다. 그리하여 대신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들의 마음에 웃음을 찾아주었다.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소중하오!”라며 대신들을 꾸짖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지로 끌려가는 수만 명의 군사는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선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필요로 한 사람이었으며 그 누구보다는 실천하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광해 그의 공감능력이 더 의미있는 이유는 그가 바로 왕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주기를 적극적으로 기대하고 원하고 때로는 그것을 요구한다는 것인데 하선은 오히려 자기의 권위를 권력을 다 내려놓고 낮고 낮은 자들의 마음에 자기를 맞추었다. 거기에 그의 위대함이 존재한다.
공감 배려라는 단어가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 키워드로 인식되고 있다.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으며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사전적 정의를 갖는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의 공감과 배려는 관계에 있어서 매우 소극적인 일이다. 단지 상대의 마음처럼 그렇게 느끼고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을 쓰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이익으로 인해 나에게 손해가 생기더라도 상대의 이익을 그리고 상대의 편안을 먼저 추구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더 적극적인 공감이고 배려란 생각이 든다.
“그래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당신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어요” 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당신의 마음이 그러하니 당신의 입장이 그러하니 당신에게 당신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내가 무엇으로 당신의 그 마음을 위로해주고 당신을 도울 수 있을까요? 그것을 말해주세요. 내가 당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말이예요.”
마음의 소통을 넘어 상대를 위한 실천의 배려 비록 그 사람이 나의 이익에 그리고 나의 감정에 반하는 일을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을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을 내 맘으로 100퍼센트 기쁘게 받아들여주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