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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관객 1억명시대, 그러나 우울한 '광해, 왕이 된 남자'

상투적 표현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 특히 2012년 영화계가 그랬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는가하면 여름 대목에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1천 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최종집계는 1298만 명)을 동원했다. 그것도 놀랄만한 일인데, ‘피에타’ 수상 이후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천만 영화로 등극했다. 2~3개월 사이에 연달아 1천만 영화가 2편이나 ‘탄생’한 것.
 
결론은 2012년 11월 20일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돌파 시대로 이어졌다. 한국영화사를 새로 쓰게 된 것이다. 지난 해 12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서울 대한극장에서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돌파기념 관객초청’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영화 관객 1억 명의 의미는 각별하다. 일단 역대 최고 전성기였던 2006년의 9791만 관객을 넘어선 수치이기 때문이다. 2002년 한국영화 관객 5082만 명에 비하면 10년 만에 2배가량 늘어난 수치이기도 하다. 관객 수만으로 보면 더 바랄 게 없는 한국영화의 전성시대인 셈이다.
 
사실 그런 조짐은 여기저기서 예고됐다. 연초 사회성 짙은 ‘부러진 화살’이 300만 명을 훌쩍 넘긴 건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댄싱 퀸’(409만 명) ․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468만 명) ․ ‘건축학개론’(410만 명) ․ ‘내 아내의 모든 것’(458만 명) ․ ‘연가시’(451만 명)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1만 명)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되어 각각 400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1천만 명 이상의 ‘도둑들’ ․ ‘광해, 왕이 된 남자’, 그리고 비수기 11월에 600만 명을 넘긴 ‘늑대소년’까지 400만 명을 넘긴 한국영화는 9편이나 된다.
 
조선일보(2012.11.20)에 기대 한국영화 점유율을 살펴보면 11월 18일 현재 59%를 기록하고 있다. 2006년 ‘괴물’ 등으로 63.8%까지 치솟았던 점유율에 비하면 낮지만, 2007~2010년에 50%를 밑돌다가 2011년 회복한 51.8%보다는 높은 수치이다. 2, 8월엔 무려 70%대까지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치솟기도 했다.
 
놀라운 건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돌파가 ‘어벤져스’(707만 명) ․ ‘다크나이트 라이즈’(639만 명)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485만 명)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관람과 상관없이 이루어진 점이다. 영화관람은, 이를테면 상대적이기보다 일방적으로 열려있는 활동의 문화향유인 셈이다. 김보연 영진위 영화정책센터장에 의하면 “올해 한국인 1명당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3.12회로 미국 ․ 프랑스 ․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세계 4위”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인가?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시대가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라는 그늘이 ‘가혹하게’ 존재하고 있어서다. 단적인 예로 ‘피에타’를 들 수 있다. ‘피에타’를 구체적으로 만나본 ‘한울문학’ 2012년 11월호에서 이미 말했듯 ‘피에타’는 ‘줄 선’ 관객에도 불구하고, 김기덕 감독 스스로 조기 종영한 바 있다.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은 영화에 상영기회가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피에타’의 최종 관객 수는 60만 명이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그런 바람은 그냥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11월 8일 개봉한 ‘터치’의 민병훈 감독이 3일 만에 조기 종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2012.11.19)에 따르면 소규모 회사인 팝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터치’는 8일간 95개관에서 1541회(하루 평균 92회) 상영됐다. 12월 2일 현재 651만 명을 넘어서며 대박 행진중인 ‘늑대소년’의 하루 평균 상영횟수 3518회의 5% 수준에 불과하다.
 
내친김에 민병훈 감독의 절규를 들어보자. 민감독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게 복합상영관의 원래 목적인데 16개 상영관 중 12개에서 대기업이 유통하는 블록버스터 한 편을 틀고 나머지 영화들이 4개관을 두고 경쟁하는 실태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따위 우스갯말로 어영구영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것은 김기덕이나 민병훈 감독만의 딱한 사연이 아니다. 관객들로선 다양한 영화들을 볼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생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대형마트의 강제휴무 등 독과점을 규제하고 있는 이때다. 유독 영화판에서만 대기업의 독과점 문제를 소 닭 보듯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요컨대 ‘작은 영화’들이 오로지 작품으로 공정한 승부를 펼칠 수 있게 그 터전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시대에 또 하나의 1천 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만나는 기분이 우울한 것은 그래서다. 9월 13일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1232만 명(경향신문, 2012.12.12)을 넘어서며 ‘왕의 남자’(1230만 명)를 따돌리고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작으로 올라섰다. 계속 상영중이어서 1위 ‘괴물’(1301만 명)도 제칠지, 관심거리다.
 
‘도둑들’과의 관객 수 경쟁도 흥미롭다. 배급사(쇼박스)에 따르면 ‘도둑들’의 경우 자체집계 기준 1303만 명을 모아(한겨레, 2012.11.1참조) ‘괴물’의 기록을 깼다. 관객이 있으면 계속 상영되어야 맞지만, ‘피에타’나 ‘터치’를 생각해보면 그런 1천만 영화에 대한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광해’의 경우 개봉 7주차부터 평일 좌석점유율은 11~13%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CJ계열인 CGV가 200개관 넘게 지탱해주며 전국 400~500개관에서 상영, 그런 성적을 거둔 셈이 됐다.
 
사실 ‘광해’는 개봉 때부터 논란이 됐다. 예정일보다 6일 앞당겨 개봉해서다. 광해 역 이병헌의 할리우드 영화 촬영에 따른 출국 일정을 이유로 들었지만, 제작사 겸 배급사 CJ가 아니고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작은 영화’들임을 방증시킨 ‘광해’의 앞당겨진 개봉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극장 못지않게 관객들도 ‘작은 영화’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셈이라 할까!
 
자, 그러면 ‘광해’는 어떤 영화인가? 많은 리뷰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평론가 정재형의 ‘한국영화, 호황인가 위기의 시작인가’(조선일보, 2012.11.29)이다. 그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올해 아니면 흥행할 수 없는 작품”이라 단언한다. 올해 2012년은 무슨 해인가?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이다. 요컨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지도자상을 바라는 대중의 욕구가 관람 발길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일단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역사 비틀기가 관심을 유발한다. 연산군과 함께 조선시대 폭군으로 기록된 임금 광해군이란 일반 인식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다. 특히 대역, 일개 양반도 아니고 임금의 대역이라니!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는 대중의 욕구에 맞아떨어진 셈이지만,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광해’는 재미 있다. ‘광해’는 하선의 광해군 놀음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 볼 짬조차 주지 않는다.
 
사극에 처음 도전한 이병헌의 1인 2역 연기도 한몫한다. 거기에 가짜 광해 하선의 임금 노릇은 진짜 광해군보다 한 수 위다. 가령 호패법 알아가는 과정이라든가 가진 이가 세금을 더 내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그렇다. 또 “이 나라가 누구 나라요? 부끄러운 줄 아시오” 같은 일침이라든가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 더 중하오” 하는 다짐은 고단한 일상현실과 맞물려 뭉클한 정서를 피어오르게도 한다.
 
중전(한효주)을 위한 임금으로서의 결단 등 인간적 관계의 전개 역시 기본적이면서도 여린 감성을 자극했을 법하다. 군주가 아닌 그냥 지아비로서 아내를 보살피는 것이나 기미나인 사월이(심은경)에 대한 온정 등은 가짜 임금이라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디테일이 팩션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광해’의 재미적 요소에는 곳곳에 장치된 유머도 빼놓을 수 없다. 질탕하게 웃기려는 천박성을 자제한 고품격 유머라 할까. “웃기옵니다” 하면서 웃지 않는 중전의 모습은 그중 압권이라 할만하다. 하선이 두건 쓰고 기둥에 부딪치는 게 좀 통속적인 것 말고 허균(류승룡)이라든가 도부장(김인권)과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유머들이 그렇다. 임금의 대변 묘사 등은 처음 보는 것이라 새롭다. 
 
옥에 티라면 대사의 오류다. 예컨대 사월이는 임금에게 “소인의 아버지” 운운하는데, 픽션이라해서 그런 것까지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쇤네 애비” 아니더라도 “소인 애비”라고는 해야 맞을 것 같다. 애써 하나 더 들자면 ‘어보’의 손잡이 모양이 거북이여야 하는데, 용으로 된 점이다. 아무리 팩션일망정 그런 것까지 상상에 맡겨지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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