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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문림의향 장흥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청준과 한승원을 들고 있다. 물론 두 분이 모두 소설가이어서 시인은 없나 싶지만 수많은 문필가가 있어서 이미 100명이 넘는 작가와 시인들이 있으니 문림(文林)이라는 말을 써도 충분한 고장이다. 옛부터 장흥은 큰 인물이 나기보다는 큰 작가가 태어나는 학자의 고장이었다.

이청준이 태어난 집은 얼마 전까지 이청준의 친척이 되는 분이 거주를 하였던 집이었지만 그 동안 생가라고 해서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면서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져서 집을 비워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다음 본격적으로 생가로서 보여주게 됐다고 한다.



이청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시대별로 나열해보면
** 1960년대
1965년에 《사상계》 신인상에 《퇴원》당선 등단. 《병신과 머저리》(1966),
《굴레》(1966), 《석화촌》(1968), 《매잡이》(1968)

** 1970년대
《소문의 벽》(1971), 《조율사》(1972), 《들어보면 아시겠지만》(1972), 《떠도는 말들》(1973), 《이어도》(1974), 《낮은 목소리로》(1974), 《자서전들 쓰십시다》 (1976), 《서편제》(1976), 《불을 머금은 항아리》(1977), 《잔인한 도시》(1978), 《살아있는 늪》(1979) 등

**1980년대
《시간의 문》(1982), 《비화밀교》(1985), 《자유의 문》(1988)

**이청준의 소설집 《별을 보여 드립니다》(1971), 《가면의 꿈》(1975), 《당신들의 천국》(1976), 《예언자》(1977), 《남도 사람》(1978), 《춤추는 사제》(1979), 《흐르지 않는 강》(1979),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 《따뜻한 강》(1986), 《아리아리 강강》(1988), 《자유의 문》(1989)

** 수필집 《작가의 작은 손》, 희곡 《제3의 신》(1982) 사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됨
                 [출처] 이청준 | 두산백과

이청준이 이곳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 광주의 사촌 누나 집에서 하숙생 노릇을 하고 있다가 어느 여름날 주말에 고향에 와서 고마운 누나에게 즐 것은 없고 어머니와 함께 땡볕에 그을어 가면서 게를 잡아가지고 광주까지 힘들어서 가져갔지만 벌써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사촌누나가 집어 던지면서 “이런 것을 왜 가지고 왔느냐?”고 욕설을 하자 크게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몇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이 경험을 살려 소살을 쓴 것이 '눈길'이라는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받는 등 출세작으로 떠오르게 됐다고 한다.

가난한 이청준은 자기가 살던 집이 팔리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서울대 법대를 진학해 판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어찌하여 독문학을 잔공하게 됐다고 한다. 공부 잘하고 장래가 촉망 되던 형은 사회주의자가 되어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술에 빠져 지내다가 망가져 버렸고, 집안을 일으켜야할 형편이 됐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고 어렵게 공부해 이렇게 역사에 남는 소설가가 되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고 특히 장흥에서 이만큼 그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주는 등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청준의 생가는 장흥군 회진읍 진목리의 마을 회관 곁에 있었다. 마을의 광장에는 유선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신선이 노니는 정자이니 정자 이름 한번 거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유선각이었으면 궁궐의 이름이 돼서 '각하(閣下)'가 생겨날 뻔 했다고 생각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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