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초임 시절에 시를 수업할 때는 참 편했다. 국정 교과서 시만 가르쳤다. 몇 년 하다 보니 입에 붙어 책도 안 보고 가르쳤다. 그뿐인가. 그야말로 실력이 대단(?)해서 학생들에게 시를 자세히도 가르쳤다. 주제를, 소재를, 운율, 성격 등 시의 특징과 요소를 설명했다.
시를 쉽게 이해하도록 나누고 쪼개고 분석했다. 학생들이 어려워할까봐 시의 감상 요소를 암기할 수 있도록 정리해 주곤 했다. 내 딴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식 요소들을 많이 정리해 주었다. 그 수업은 일명 암기 주입식 수업이었다. 어떤 학자는 암기를 위해 죽을 먹이듯이 한다고 해 암죽식 수업이라고 하는데, 꼭 그런 것이었다.
그때 나는 교직 경력이 짧았다. 그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조급해 했다. 결국 나는 수업 속에서 학생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차 있었다. 그때 내 수업은 학생들에게 내가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쇼였다. 내가 얼마나 지식이 많은지 보여주는 것, 그리고 내가 얼마나 수업 준비를 많이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보다 내가 가르치는 것에만 방점을 두고 있었다.
생각하니 부끄럽다. 학생이 배우는 것이 없고, 내가 가르치기만 하는 수업은 학생들의 성장이 없었다. 학생들은 시의 형식과 의미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내는 시적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시는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학생들이 의미를 발견하고 고차원적인 사고로 도약하는 학습의 즐거움이 없었다. 단순 개념을 외우고, 오로지 점수 올리는 것만 있었다.
지금도 고등학교는 시험 준비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이런 경향이 더 크다. 기본적으로 학생들도 선생님이 시적 상황을 자세히 해석 해주기를 기다린다. 나는 수업 중에 아이들 활동을 시키고 내 의도와 다르게 내가 정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다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 눈치를 보고는 내가 나선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지루해 하는 눈치를 느낄 때 나도 모르게 서둘러 정리를 해 버린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 교사들은 수업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 이렇게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문학 장르도 그렇지만, 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시는 감상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수업 시간도 이렇게 흘러가야 한다. 시를 읽고 감상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감상의 주체는 교사가 아니다. 학생이다.
내가 시를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이 느낄 수 있도록 길을 튼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정 먼저 시를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단계를 가진다. 시인은 어떤 대상과 마주한 뒤 그것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면 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시를 읽고 ‘시적화자가 누구니? 배경은? 노래하는 대상은? 화자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니? 화자가 대상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등을 찾아보게 한다.
시가 함축적인 언어 표현으로 이루어졌지만, 시도 쓰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들은 후의 느낌이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본질적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관점이다. 작가는 이것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주제다.
시의 주제를 알아야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사실적 이해를 바탕으로 시의 주제를 아는 길로 안내한다. 시는 화자의 태도와 정서를 반영하여 진술하는 이야기다. 따라서 화자의 상황과 심정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게 한다. 그리고 시를 이야기로 꾸며보게 한다. 그러면 시인이 하는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것이 곧 주제다.
시는 언어가 생략되고, 함축적으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서술을 활용하여 시를 감상하는 방법을 쓰면 쉽게 다가간다. 시에도 서사적 구조가 있다고 인정하고, 시를 감상했을 때 시를 깊고 넓게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선생님의 설명 없이 주체적인 시 감상을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
누구나 시를 읽고 정서적 반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너무도 친절해서 이런 정서적 반응조차 기계적으로 가르쳐주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시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고, 시도 멀리하게 된다.
시 교육은 개인의 경험을 확대하고 타자를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수업 시간에 내가 시에서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가 아이들의 능력을 무시하고 너무 가르치기만 했다. 시 수업만이라도 학생들에게 맡겨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감상하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으로 시를 읽어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아름다움 삶을 꿈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상은 창작이 만났을 때 빛난다. 작가의 노래뿐만 아니라, 내 삶도 노래해야 한다. 한 편의 시로 타인의 가슴을 울리는 시를 짓게 해야 한다. 그래야 수업이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