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강한 ‘Dynamic 부산’. 우리나라 제1의 항구도시답게 태종대와 신선대, 해운대와 광안리 등 대부분의 관광지가 바닷가에 있다. 부산에서 유독 북쪽의 내륙에 위치한 관광지가 금정산성과 범어사다.
지난 9월 15일 청주산누리산악회원들과 금정산을 산행하며 금정산성의 성벽을 둘러보고, 부산 시내를 비롯한 바닷가와 낙동강 물줄기를 내려다봤다.
이른 아침, 둘째 아들과 택시를 타고 2차 집결지인 청주 남부터미널로 갔다. 7시 15분경 회원들과 합류해 문의IC로 향한다.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작은 나라를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한다. 금정산까지 청원상주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고속도로를 달리며 도로사정이 좋다는 것을 실감한다. 관광버스로 부산에 몇 번 다녀온 사람들은 선산휴게소와 청도휴게소가 쉼터라는 것도 미리 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잠이 없다. 살아온 세월만큼 할 얘기도 많다. 이석기 국회의원 내란음모사건, 채동옥 검찰총장 혼외자식사건 등 이야기 거리가 많고 의견이 다양하다보니 버스 앞에 붙어있는 ‘대화는 조용히... 음악, 스마트폰 소리는 이어폰으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같은 차안에서 젊은 사람들은 거리가 멀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시간이 짧다.
낙동강을 만나고 김해부산IC를 빠져나와 잎이 우거진 나무들이 터널을 만든 굽잇길을 한참동안 달리며 대천천계곡과 금성동주민센터를 지나 산성고개에 도착했다.
10시 50분경 성벽을 따라 대륙봉, 2망루, 남문, 망미봉, 헬기장, 상계봉, 1망루, 파리봉을 거쳐 화명수목원으로 하산하는 산행을 시작한다.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은 행정 구역상 금정구 금성동에 위치하고 금정산 줄기에 성문과 망루가 각 4개씩 있다. 원래 이름은 동래산성이고 한반도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조건에 걸맞게 길이가 약 17㎞, 면적이 250만여 평에 이르는 큰 산성이다.
산정의 돌샘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났는데 이 샘에 금색 물고기가 5가지 색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된 금정산은 낙동강과 수영강의 분수계를 이루며 주봉인 고당봉(801m), 장군봉(727m), 미륵봉(711m), 원효봉(687m), 상계봉(638m), 의상봉(620m), 파리봉(615m), 망미봉(605m), 계명봉(601m), 대륙봉(520m)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입의 나무데크와 급경사 오르막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이름이 생소한 대륙봉에 도착한다. 평평바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부산시내와 해운대 앞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으로 보이는 파리봉도 멋지다.
대륙봉에서 호젓한 성벽 길을 따라가면 동제봉(높이 545m)에 2망루가 서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망루지만 산성의 성벽과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801m)이 한눈에 들어온다. 망루 앞 나무숲과 무리를 이룬 큰 암석들이 쉼터 역할을 한다.
2망루에서 가까운 남문은 동제봉과 상계봉을 잇는 능선 아래에서 만난다. 남문은 산성고개와 케이블카 종점에서 도로가 연결되어 있을 만큼 교통이 좋아 가볍게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망미봉(높이 605m)은 남문에서 경사가 급한 나무계단을 올라 그냥 지나치기 쉬운 오른편 숲속 바위위에 표석이 숨어있다.
망미봉을 돌아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상계봉이 멋지다. 안부로 내려섰다 다시 나무계단을 올라 헬기장을 지나면 암석들이 촘촘히 박힌 산줄기와 상계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헬기장 아래편 숲속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늘 그렇듯 각자가 싸온 음식들을 배낭에서 주섬주섬 내놓으면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진다. 상계봉을 향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헬기장과 망미봉 방향의 산줄기가 가깝게 보인다.
상계봉(높이 638m)의 풍경은 금정산의 남쪽을 대표하는 봉우리로 손색이 없다. 30여m의 깎아지른 직벽과 기묘한 암석들이 하늘을 향하여 송곳처럼 솟아오른 모습이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을 뜻하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을 닮았다. 좁고 위험한 곳이 많지만 초입부터 바위 사이를 오르내리며 스릴을 즐긴다.
상계봉 정상 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상학산 상계봉(上鶴山 上鷄峯)’이라 새겨진 표석 윗부분에 ‘상학산’ 부분만 글자를 지운 흔적이 있어 이곳이 예전에는 상학산이었으며 날카로운 바위들이 무리지어 있는 초입의 봉우리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상학봉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케 한다.
상계봉에서 파리봉까지는 비교적 산행하기 쉬운 산길이 이어진다. 이곳에도 기이한 바위들이 많다. 상계봉에서 북쪽으로 300여m 거리의 1망루는 누각이 복원되지 않은 채 투박한 성벽과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조망이 좋은 이곳에서 낙동강은 물론 금정산과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의 숲길을 걷다보면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대륙봉에서 바라봤던 파리봉이 나타난다. 돌무더기 암봉이 능선 위에 성처럼 솟아오른 파리봉(높이 615m)의 표석에 ‘파리란? 불교의 칠보 중의 하나로써 수정을 뜻합니다.’라고 써있다. 파리봉이라는 이름은 산위의 바위가 수정처럼 빛나고 코끼리가 낙동강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과 닮아 붙었다.
멀리서 바라본 모습처럼 울퉁불퉁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며 불쑥 솟아오른 암봉들이 장관이다. 파리봉 북쪽으로 화명수목원과 금성동, 고당봉과 원효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파리봉에서 얼음골을 거쳐 서문으로 하산하는 산길은 공사로 당분간 산행할 수 없다.
전망데크에서 화명수목원 방향으로 계단을 따라가면 뒤편으로 보이는 파리봉의 암벽이 웅장하다. 먼발치로 보이는 낙동강과 산길에서 만나는 멋진 바위들이 구경거리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산행을 함께하는 일행들의 구수한 이야기도 보약이 된다.
초행 산길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살이를 닮았다. 다 내려왔는가 싶었는데 날카로운 철조망이 길을 막아 한참을 빙빙 돌며 고생한다. 그래도 길은 길로 연결된다. 고생했지만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따라주는 산성주를 마시며 부산 사람들의 후한 인심을 만끽했다.
2시 40분경 화명수목원에 도착해 아래 주차장에서 시원한 막걸리로 뒤풀이를 했다. 주변 사람과 얘기 몇 마디 주고받으면 세상 좁다는 것 금방 안다. 인간관계는 고구마처럼 캐면 캘수록 아는 사람들이 연관된다. 중학교 2년 선후배를 같은 자리에서 만났는데 선배는 초등학교도 동문이다.
3시 20분경 출발한 관광버스가 왔던 길을 따라 청주로 향한다. 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휴게소의 청도를 상징하는 소싸움과 홍시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에서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에 추석을 앞두고 한껏 살을 찌운 달이 걸려있다.
해가 참 많이 빨라졌다. 석양을 바라보고 달리더니 문의IC가 가까워지며 고속도로의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7시 20분경 청주에 도착하며 금정산의 상계봉 일대를 돌아본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