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도시에는 국화축제에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찻집의 창가에도 작은 국화화분이 놓여 있다. 들판에는 그야말로 국화천지이다. 노오란 감국과 산국, 연보랏빛 쑥부쟁이, 흰 구절초 모두 들국화로 총칭된다.
며칠 전 낚시를 다녀온 아이 아빠가 들국화가 많이 피었다고 소식을 전하며 올해는 국화차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몇 년 전 출장을 다녀오면서 감국을 한 아름 꺾어 와서 꽃을 하나하나 따서 국화차를 만들었다. 어린 두 아들이 옆에서 재잘거리며 같이 꽃을 땄었는데 그 때는 거들어주지도 않고 쳐다보기만 하였다. 두 아이들이 반항의 불꽃을 휘감는 사춘기에 접어들 때까지 국화차를 만들지 않았었다. 여행길에 노오란 감국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 아, 국화차를 만들면 참 좋겠다." 혼잣말을 하곤 했다.
남편이 스스로 국화차를 만들지 않느냐고 묻기에 "깨끗한 곳에 많이 핀 들국화가 보이면 좀 꺾어주세요." 라고 부탁하면서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제 퇴근을 하여 아파트 문을 여니 싸아한 국화향기가 먼저 나를 맞이하였다. 일부러 들국화를 꺾으러 다녀왔다고 하길래 보니, 베란다에 가득히 국화꽃 무더기가 보였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본격적으로 국화차 만들기를 하였다. 불타는 사춘기의 두 아이들도 잠시 게임을 접고 앉아 국화꽃을 따 주었다. 엄마와 함께 땄던 국화꽃과 국화차를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한 모양이다. 사내 녀석들이라 뚝뚝 거칠게 따기는 했지만 그 마음씨가 국화향처럼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더 신기한 것은 남편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껏 국화를 따주는 것이다.
사실 국화무더기를 보면서도 감탄을 하였다. 정말 깨끗하고 고운 것만을 정성스럽게 골라 꺾어온 것이다. 매사에 설렁설렁 일을 하는 나와는 달리 원래 꼼꼼한 성격인 사람인지라 하나를 해도 야무진 것이다.
밤이 깊도록 국화꽃을 땄다. 그리고 그 꽃을 깨끗한 물로 씻고 뜨거운 물로 데쳐서 말리려고 하얀 창호지 위에 펼쳤다. 활짝 피었던 국화꽃들은 다시 작은 봉오리가 되어 동글동글 맺혀진다. 좋은 가을 햇살과 서늘한 바람에 잘 마르면 향 짙은 감국차가 되리라. 그러면 내 좋은 사람들과 국화차를 마실 것이다. 뜨거운 물속에서 꽃송이를 다시 피우는 국화꽃 한 송이 한 송이에 눈을 맞추고 김수영의 시를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