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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영릉의 원찰 신륵사

조선시대의 시(市)인 여주목(牧)에서 군(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18년 만인 2013년 9월 23일 시로 승격한 여주시 천송동 물가에 영릉의 원찰이었던 사찰 신륵사(神勒寺)가 있다. 이곳의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될 만큼 운치가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가 없고, 고려 말인 1376년에 나옹 혜근이 머물렀으며, 한때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자 영릉의 원찰로 보은사(報恩寺)라 불렀다. 이곳에서 입적하며 신륵사를 대찰로 만든 나옹선사는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읽어볼수록 가슴에 와 닿는 ‘청산은 나를 보고’를 남긴 고승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생략 ~>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도 몇 가지 전해진다. 미륵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고, 건너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용마를 인당대사가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여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 조사당(보물 제180호),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보제존자석종앞석등(보물 제231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제1791호), 극락보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호) 등 중요문화재가 많으며 구룡루, 명부전, 시왕전, 산신각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편액에 ‘봉미산신륵사’가 써있는 일주문을 지나 강변을 걸으면 조포(潮浦)나루터 표석에 1963년 10월 23일의 조포나루터 나룻배 침몰사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륵사로 소풍 왔다가던 안양 흥안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이 탄 나룻배가 이곳에서 침몰하여 어린이 37명, 교사와 학부모 12명이 익사하였다. 세월이 약이라고 강물은 그때의 슬픈 사실을 모른 채 유유히 흐르고 한가롭게 표석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밝다.


입구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고 고단한 마음을 씻어내는 세심정이 맞이한다. 범종각의 내부에 사물인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이 걸려있다. 범종은 깨달음을 얻게 하고, 법고는 축생의 무리·목어는 물속 생명·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 석가의 진리를 전하는데 의미가 있다. 수령이 600여 년이나 되는 은행나무와 참나무 보호수가 높은 곳에서 키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볼만하다.


구룡루, 다층석탑, 극락보전이 나란히 있는데 누각 구룡루의 명칭은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물을 뿌려 목욕시켰다는 아홉 마리용에 대한 경전의 내용이나 창건설화의 승천한 아홉 마리의 용에서 따왔을 것이라 추측되고, 누대 밑의 높이가 낮아 통로의 기능보다는 정자로서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보물 제225호)은 왠지 균형미가 부족한데 기단에서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졌다. 돌의 재질이나 조각양식은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과 비슷하다.

극락보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호)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기단 위에 추녀를 받치는 4개의 활주가 있어 금방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수령이 500여 년 되는 향나무 주위에 산신각, 조사당, 명부전, 관음전 등의 전각이 있다. 그중 조사당(보물 제180호)은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신 건물로 규모가 작지만 균형이 잘 잡혀 아담하다. 불단 뒷벽 중앙에 나옹, 그 좌우에 지공과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조사당의 왼쪽에 북쪽 구릉너머에 있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긴 원구형부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34호)와 팔각형원당형석조부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95호)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원구형석조부도(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4호)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원구형부도로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조사당에서 오른편으로 산길을 올라가면 나옹선사의 입적과 관련된 석재 불교문화재를 만난다. 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해 불교의 중흥을 꿈꿨던 나옹선사의 사리탑으로 단층 기단 위에 2단의 받침을 두고 종 모양의 탑신을 올렸다.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는 나옹선사의 탑비로 1379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이색이 문장을 짓고 한수가 글씨를 써 역사적 가치가 크다. 보제존자석종앞석등(보물 제231호)은 8각 석등으로 보제존자석종 및 석비와 함께 세워졌다.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는 현재 비의 몸통에 균열이 많은데 대장각의 조성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다. 불경을 만들어 보관하기 위해 1382년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세웠던 대장각은 찾아볼 수 없다.

대장각기비각 밑에 있는 다층전탑(보물 제226호)은 아래로 남한강의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경치 좋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전탑이 많지 않은데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얇아 전체가 주는 인상이 날카롭다. 나옹선사가 열반에 들자 다비식을 했던 장소에 세운 전탑으로 이 전탑 때문에 한동안 신륵사를 벽절이라 불렀다.


신륵사에서 경치가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한 육각정자 강월헌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극 추노를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자에 앉아 남한강 물줄기와 황포돛배를 바라보며 옛 사람들처럼 낭만과 풍류를 누린다.

정자 옆에 있는 삼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자료 제133호)은 암반에 건립된 3층 석탑이다. 나옹선사의 다비식을 거행했던 장소에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탑에 해당한다.

건너편의 강변유원지 선착장을 출발해 신륵사와 세종대왕릉을 연결하는 황포돛배에 올라 신륵사, 영월루, 여주보,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을 비롯해 자연경관유적 입암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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