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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강마을 편지 - 가을, 생성과 소멸의 경계

가을이 깊어진 강마을은 점점 비어간다. 추수한 들판에 희고 고운 서리가 내렸다. 우수수 노란 은행잎이 건드리지 않아도 떨어져내린다. 붉은 화살나무 잎도 꽃잎처럼 바람에 날리고 그 사이로 작은 벌레의 주검이 보인다.

비어 있다는 것은 다시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비어 있는 공간, 비어있는 마음, 비어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화장대에 바르지 않는 립스틱이 있고, 들지 않는 가방들이 있고, 쓰지 않은 수첩들이 몇 개나 있고, 보내지 않은 편지지 뭉치가 발견된다. 일 년에 몇 번 사용할 지 모르지만 꼭 필요해 보여 샀던 전기오븐, 야쿠르트 만드는 것, 쥬스기, 커피를 내리는 기계, 작은 찜질기.... 옷장을 열어보면 더 많은 옷들이 걸려 있다. 일년에 한번도 입지 않는 코트, 스카프, 머플러. 그리고 서랍을 열어보면 옥색 개구리 모양의 반지, 팔찌, 목걸이가 수북하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내 옆에다 가두어 두고 나는 계속 내 삶을 비워가리라 하면서 노자 도덕경을 읽는다. 이렇게 채우지 못해 안달하는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고 한심하다.

눈부신 황금비가 내리는 신갈나무 숲이 보인다. 우수수 바람에 고운 잎을 날리는 은사시 나무는 강가에 서 있다. 그리고 나는 텅빈 들판을 보며 나를 어떻게 비워야하나를 고민한다.

가을은 깊어가고 유무상생이란 말을 내내 중얼거린다. 유와 무는 같은 차원에서 서로 공존한다. 두 대립면인 유와 무가 같은 공간에서 서로 꼬여 있는 상태가 바로 근본적인 존재의 형식이자 운형의 법칙이다. 이 세계의 만물이 들락거리는 문으로 비유하고 있다. 만들의 발생하고 나오는 곳이다. 문은 출구이지만 입구이기도 하다. 들어가고 나가는 교차점인 것이다.

된서리가 하얗게 내린 강마을의 들판에 작은 풀벌레의 주검을 보여 이것은 끝나는 지점이자 시작되는 지점이 아닐까 하였다. 소멸의 공간이자 생성의 공간으로의 경계에 나는 서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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