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국제 행사나 축제를 열고,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한 시설물을 건축하는데 많은 돈이 지출된다. 행사 후 몇 년 지나면 화려했던 시설물들이 활용처를 찾지 못한 채 지자체의 골칫거리가 되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2013년 4월부터 10월까지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순천만정원은 행사가 끝난지 1년이 지났건만 관광객이 끊이지 않을 만큼 인기가 여전하다.
지난 10월 4일, 청주4050토요산악회에서 순천만정원에 다녀왔다. 오전 7시 산악회원 90여명을 태운 관광버스 두 대가 청주체육관 앞을 출발한다. 산악회에서 준비해온 아침을 먹기 위해 호남고속도로 벌곡휴게소에 들렀다. 화창한 날씨에 맞춰 벌곡휴게소의 작은 연못에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를 자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왠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순천완주고속도로 오수휴게소에도 잠깐 들렀던 관광버스가 10시 55분경 순천만정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순천만정원은 수목원구역, 습지센터구역, 세계정원구역, 습지구역, 참여정원으로 구분된다. 지표를 뚫고 올라 온 지구의 기운을 상징하는 동문에 들어서면 눈앞에 잔디광장과 호수정원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봉화언덕을 오르내리는 모습도 가깝게 보인다.
1평(3.3㎡)은 좁아 평소 관심을 끌지 못하는 면적이다. 하지만 아름답게 가꾸면 보석처럼 빛난다. 식물공장 주변에 ‘순천, 정원으로 수놓다’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1회 전국 한평정원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작품들을 전시하여 1평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자투리땅을 손바닥공원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지자체에서 참고할만한 작품들이 많다.
수령 600년 된 팽나무와 멋진 소나무, 조형물과 바위들이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하는 바위정원에 오르면 30톤이 넘는 바위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생명의 힘을 전한다. 추억사진 남기기에 좋은 장소로 하늘을 향한 솟대와 키 작은 야생화들이 어우러진 풍경도 볼거리다.
누구나 세계여행을 꿈꾼다. 누구나 너른 앞마당이 있는 전원주택, 자신이 먹을 채소를 손수 키우는 텃밭정원, 싱그러운 자연과 벗하며 멋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라스정원을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어디 뜻대로 되는가.
정원은 흙, 돌, 물, 나무 등의 자연재료와 인공물 및 건축물에 의해 미적이고 기능적으로 구성된 특정한 구역이다. 순천만정원에 태국, 일본, 영국,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중국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유럽이나 동남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정원을 구경하며 이루지 못한 꿈을 달랠 수 있다.
개울길을 따라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억새길, 하늘을 향해 길고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300m 가량 줄지어 서있는 메타세쿼이아길,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정원조성기법으로 산수를 이상적으로 표현한 석가산정원, 멸종위기식물을 포함 한반도 자생 식물만으로 조성된 꽃들에게 희망을 환경정원, 뉴 새마을운동의 변화·도전·창조의 세 가지 기본정신을 조형적이고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뉴 새마을정원 등 각종 조형물과 자연 풍경이 순천만정원을 더 빛나게 한다.
순천호수정원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영국의 찰스 젱스가 순천에 머무르면서 직접 디자인하여 산과 호수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순천의 지형과 물의 흐름을 잘 살렸다. 높이 16m의 봉화언덕을 중심으로 난봉언덕, 인제언덕, 해룡언덕, 앵무언덕, 순천만언덕이 순천호수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 한 폭의 멋진 그림이다.
주변의 작은 언덕들을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순천호수정원을 구경한다. 호수는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정화의 공간이다. 순천호수정원 위에 설치된 데크를 걸으며 사색하는 것도 좋다.
꿈의다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강익중씨가 디자인한 컨테이너로 만든 다리로 동천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순천만정원을 연결해준다. 다리를 건너며 세계 어린이들이 그린 꿈의 그림과 알록달록 채색된 문자 14만여점을 볼 수 있다. 정원역은 순천만정원과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사이를 왕복 운행하는 최첨단 무인궤도열차역이다.
순천만 국제습지센터 주변의 습지경관은 습지와 습지에 사는 야생 조류 보호를 위해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적인 시민 단체 ‘WWT’의 조언이 가장 많이 반영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습지 생물들의 다양한 삶과 습지의 수생식물과 야생 조류가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순천만국제습지센터는 습지의 자연정화 원리, 생물과 공존하는 모습과 세계적인 생태도시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순천만정원의 주제관이다. 갯벌과 철새를 테마로 실내전시관 및 야외 생태공원이 함께 어우러진 이곳의 로비에 갈대로 만든 순천만의 상징 흑두루미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옥상의 하늘정원에 오르면 순천만정원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야생동물원은 수달, 관상용 닭, 거북, 오소리 등 아이들과 친근한 야생동물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작은 동물원이다. 물새놀이터에서는 습지에 서식하며 발레리나처럼 아름다운 군무를 보여주는 쿠바홍학, 유럽홍학, 칠레홍학, 꼬마홍학 등을 만난다. 오랜시간 무거운 망원렌즈를 들고 홍학의 군무를 촬영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홍학의 군무에 빠져있다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정작 우리의 한국정원에는 들리지도 못한 채 땅으로 쏟아지는 빛을 한곳으로 모으는 서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벌교에 들러 꼬막정식으로 뒤풀이를 진하게 한 후 순천완주고속도로 오수휴게소와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에 들르며 9시 35분경 청주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