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새벽 집근처의 약수터까지 산책을 하였습니다. 무학산의 가을은 최고조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붉은 화살나무에도 분홍 여뀌꽃 줄기에도 찬이슬이 맺혀있습니다. 새벽에 내리는 이슬에는 신(神)이 깃든다고 하더니, 온 우주의 기운이 한 방울 이슬에 맺혀 세상만물의 정령이 깃들여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바스락거리는 산길을 반쯤 오르니, 곱게 나이 든 부부가 약수통을 들고 내려오십니다. 몸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부인의 손을 잡고 남편 분이 조심조심 이끌어 주십니다.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 분이 환하게 웃으십니다. 눈 주위에 주름살이 잡히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가을꽃처럼 아름답습니다. 그 분의 웃음을 보고 저 역시 저절로 미소가 배어져 나왔습니다. 웃음은 바람에 날리는 비눗방울 같습니다. 가벼워서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퐁퐁 행복의 씨앗을 퍼뜨리는 아닐까요?
산책길에 만난 노부부의 웃음처럼 즐겁고 행복해서 웃는 표정을 ‘뒤센 미소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신경과 의사 뒤센 드 블로뉴(1806∼1875)는 어려운 환경에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학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의학 학위를 받은 해 결혼한 아내가 첫아들을 낳다가 죽고 맙니다. 그런데, 뒤센의 계모는 아내가 출산할 때 같이 있었던 사람은 뒤센 혼자였다는 나쁜 소문을 퍼뜨려 결국 아들을 죽은 아내의 친정에 빼앗기고 생의 마지막쯤에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그는 사람들의 웃는 표정에 주목합니다. 연구를 통해 미소에도 두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 하나는 입꼬리를 올리는 근육과 눈가 아래 주변을 주름지게 하는 근육 둘 다 수축했을 때 생기는 ’진짜미소‘입니다. 이는 진심으로 즐거웠을 때 나타나는 미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입꼬리 근육만 수축하는 ‘억지 미소’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팬 아메리카 항공 승무원들이 손님을 예의 바르게 맞이하기 위해 억지로 짓는 미소라고 하여 ‘팬암 미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광대뼈 근처와 눈꼬리 근처의 얼굴표정을 결정짓는 근육을 발견해 낸 뒤센을 기려 긍정적 정서가 반영된 환한 웃음을 그의 이름을 따 ‘뒤센의 미소’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뒤센 미소’는 그 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버클리대 켈트너와 하커 교수는 밀스대학의 1960년도 졸업생 141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졸업앨범에서 웃고 있는 여학생 중 절반은 ‘뒤센 미소’, 나머지 절반은 ‘팬암 미소’를 띠고 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여학생들이 27세, 43세, 52세가 될 때마다 결혼생활이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뒤센 미소’를 띤 사람들은 약 30년 동안 행복하게 결혼생활과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따뜻하고 진심으로 미소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긍정의 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말하는 회복탄력성을 증가시켜 준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 늘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음먹고 시작한 사업이 파산을 맞기도 하고, 시험에 여러 번 떨어져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잃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벼랑 끝에 내몰릴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그럴 때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힘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듯 무섭고 힘든 이에게 단 한 사람이라도 환하게 웃으며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진심으로 건네는 벗이나 선생님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난 사람은 참 행운아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에게 손을 많이 내밀어주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향해 웃어줄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이끌어줄 멘토나 길잡이 늑대처럼 작은 손길로 내 눈물을 닦아주는 뒤센 미소의 그녀나 그가 없으면 그냥 고통 속에 있어야 할까요?
이 때 제가 권하는 방법은 자가처방전을 쓰는 것입니다. 자기를 향해 뒤센 미소를 지어야 합니다.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며, 측은해 하며 힘을 내라고, 눈을 맞추고 따뜻하고 환한 미소로 위로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가 재생능력을 생성하듯 환하게 웃어준다면 내 몸의 세포들은 그 미소를 따라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간과 허파와 위와 쓸개, 그리고 신장의 세포에게 뇌세포를 움직여 환하게 웃으며 강력 항생제 같은 미소로 격려해 보십시오. 휴대폰을 꺼내어 최대한 눈가의 근육을 움직이며 입꼬리를 올려서 사진을 찍고 저장해 두고 필요한 때에 꺼내어 사용하십시오.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우주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만물에 우주의 정령이 깃들여 있으면, 나 자신은 하나의 우주입니다. 내가 웃으면 이 우주가 웃고 있고 이 우주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자신입니다. 내가 하나의 우주이면 내 곁에 있는 사람 역시 하나의 우주일 것입니다. 두 우주가 교차하는 경계에 피는 꽃,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마음의 나눔, 향기롭고 따뜻한 미소입니다.
흰 머리 날리는 산기슭의 억새가 한 계절의 절정을 알립니다. 추수를 끝낸 들에는 깊은 명상을 시작은 대지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네들을 향해, 온 우주의 한 구석을 밝히는 미소를 짓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