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외국어이다. 이에 정부는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외고를 설립하였다. 외고에서는 스페인어를 배웠는데 수능시험은 한문을 선택한 것이다. 3년 내내 배운 언어 대신 학교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 ‘시험용’ 외국어를 택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정부는 외국어고등학교를 설립한 목적에 맞게 장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 "서울의 ㄱ외국어고에선 2013년 대입 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스페인어과 학생 73명 가운데 1명을 뺀 72명이 스페인어를 포기하고 ‘한문’ 시험을 쳤다. 지난해 ㄴ외고에선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전공한 영어과 학생 61명의 과반인 32명이 중국어 대신 기초 베트남어로 수능을 쳤다.” 이것이 바로 어느 언론기자가 보도한 기사이다.
이처럼 외고 학생 상당수가 학교에서 전공한 외국어를 수능에서 외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9월 1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한 의원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분석한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소재 16개 외고 재학생의 수능 제2외국어 응시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수능에서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외국어 과목에 응시하거나 아예 제2외국어를 포기한 외고 학생이 전공어과(중국어·독일어 등)와 영어과에서 각각 18.6%, 32.2%에 이른다. 제2외국어를 전공하는 2826명 가운데 262명이 전공어가 아닌 과목으로 수능을 치렀고 또다른 262명은 제2외국어 과목에 응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외고 학생이 전공 언어를 수능에서 포기하는 것은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입시 전략 때문이다. 독일어·스페인어 등 각 언어의 응시자 수가 워낙 적은데다 응시자 다수가 외고 학생이어서 높은 등급을 받기가 어려워서다. 수능에서 대개 30문항 가운데 1~2개만 틀려야 1등급이고 그 이상 틀리면 2~3등급으로 깎이기에 학생들이 제2외국어를 포기하거나 배우지 않은 다른 언어를 택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를 해결하려면 절대평가 도입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리고 국가는 학교의 설립 목적에 맞게 외국어 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높일 필요가 제기된다.
전공하지 않은 외국어를 택한 학생의 97.8%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개설되지 않은 아랍어, 기초베트남어 등 상대적으로 성적을 받기 쉬운 외국어 과목에 응시한 점도 눈에 띈다.이러한 결과는 결국 해당 과목을 학생 혼자 공부하거나 사교육에 의존해 수능시험을 준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가 글로벌화 되면서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이라는 ‘특수목적’을 위해 설립된 외국어고 출신 학생 상당수가 대입에서 자신이 전공한 외국어를 활용하길 포기하는 상황이라면 외고의 존재 이유와 교육과정 운영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 전략만 있고 교육이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책무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