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시험장에서 나올 때 너희의 환한 미소 기대할게!”2015. 11. 12. 목요일.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여느 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 대충 세수를 하고 난 뒤, 옷을 주섬주섬 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으나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어젯밤부터 간헐적으로 내린 비로 날씨가 제법 추우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다지 춥지 않아 다행이었다.
06시 20분. 배정된 시험장이 집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일찍 서둘렀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다만 교통 순찰차만 여러 대 눈에 띠었다. 아마 시험장 교통정리와 수험생 수송을 위해 서두르는 것 같았다.
06시 45분. 시험장 주변이 복잡할 것이라고 고려도 했지만, 수험생 가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주차를 시험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도로변에 차를 세워두었다. 그리고 시험장까지 걸어갔다. 주차한 곳에서 시험장까지는 약 5분이 걸렸다.
06시 50분. 시험장이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각급 학교에서 나온 후배들과 선생님들이 수험생을 응원하기에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일찍 서둘러 나온 듯했다. 미리 나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한 학생에게 몇 시에 나왔는지 궁금하여 물었더니 새벽 5시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07시 00분. 차츰 날이 밝아지자, 시험장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과 벽에 붙은 카드 위에 적힌 수험생을 위한 응원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감동을 주는 응원 문구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배님! 올 한해 수능 대박 나시고, 내년에는 저희에게 그 기(氣) 물려주세요.”07시 10분. 갑자기 시험장 한 곳에서 구호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시험장에 들어가는 한 수험생을 위한 ○○고등학교 후배들의 응원 소리였다. 아직 입실 완료(08시 10분)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일찍 서두른 것을 보면 많이 긴장한 듯했다.
07시 20분. 삼삼오오(三三五五) 짝을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오기 시작했다. 때를 맞춰, 각급 학교에서 나온 후배들의 응원 구호가 커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구호는 달랐지만, 수험생의 긴장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그중 평소 잘 알고 있던 제자 한 명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찾아왔다. 시험 잘 보라고 격려해 주고 난 뒤, 포옹해 주었다.
그리고 각 방송사에서 나온 취재진의 취재 열기 또한 뜨거웠다.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자, 아이들은 더 소리를 지르며 방송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응원 나온 선생님은 제자들 한명씩 꼭 껴안아주며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07시 30분. 수험생을 태운 학부모들의 자가용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때 시험장 앞이 혼선을 빚기도 했으나 교통 경찰관의 발 빠른 대처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07시 40분. 한 학부모는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자녀가 못 미더운 듯, 자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고사장 앞에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고사장 앞 한쪽 구석에서는 자녀와 포옹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친구를 기다리며 발발 동동 구르는 아이들과 수험표를 가지고 오지 않아 다급히 전화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띠었다.
07시 50분. 한꺼번에 많은 수험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험생이 교복을 입지 않았는데도 응원 나온 후배들은 학교 선배가 누군지를 잘 알고 있었고 응원을 해주는 것이 이상했다. 아마 그것은 보이지 않는 동문끼리의 끈끈한 정이 아닌가 싶었다.
08시 00분. 수험생 입실 완료 십 분 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고사장 앞이 조용해졌다. 고사 본부에서 나온 한 관계자가 수험생 입실 완료 10분을 외치며 입실을 다그쳤다. 그리고 행여 지각생이 생기면 취잿거리를 잡으려는 듯한 방송사 카메라 기사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08시 10분. 수험생 입실 완료시간. 고사장의 철문을 닫기 위해 학교 관계자 두 분이 나왔다. 순간, 고사장 앞 수험생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모든 사람이 아쉬워하듯 소리를 지르며 교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철문이 서서히 닫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수험생의 이름과 학교 이름을 합창하였다.
08시 20분. 지각한 수험생이 단 한 명도 없어 다행이었다. 철문이 닫히고 난 뒤에도 일부 학부모들은 고사장을 떠나지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수험생이 들어간 고사장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학부모도 있었다.
매년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대학입시을 앞둔 자녀들을 위해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함이 감도는 하루였다. 그리고 오늘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 약 63만 명 모두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