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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누가 내 책상 위를 청소했을까?

“김 선생, 고시에 합격했어? 그 많던 책 어떻게 했어?”

출근하자, 갑자기 깨끗해진 내 책상 위를 보면서 교감 선생님이 한마디 던졌다. 그리고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저 이제 하산했습니다.”

사실 교사의 일상은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교재 연구와 업무 등으로 늘 바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퇴근할 때는 몇 가지 중요한 서류만 간단히 정리한 뒤 퇴근하기에 급급하다. 다음 날 출근하면 어제와 똑같은 책상을 맞이하지만, 이상한 것은 나 자신이 이 환경에 너무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일까? 지금까지 나는 책상 위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에 그다지 익숙하지가 않다.

책상 위가 아무리 지저분해도 필요한 물건을 찾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으며 교재 연구나 업무를 보는 데도 그 어떤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책상 위를 정리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인지 모른다.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꼈으면 청소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 정리 정돈쯤은 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앞에 있는 정선생의 책상이었다. 정선생의 책상 위는 항상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어 누군가가 이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자리의 주인이 남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몸집이 큰 정선생은 평소 성격과 달리 필요 이상의 물건을 책상 위에 꺼내 놓는 적이 거의 없으며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바로바로 치웠다. 그러다 보니 정선생의 책상 위는 늘 쓰레기 하나 없는 청정지역이었다. 그래서 주위 선생님은 정선생의 이런 깔끔함에 혀를 내 둘렸다.


이와는 반대로 내 책상 위는 마치 고시공부 하는 사람의 책상처럼 항상 온갖 종류의 많은 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물론 고시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책상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어떤 때는 음료수를 마시고 난 뒤 병과 캔이 이틀 동안 책상 위에 그대로 남아 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내 책상 위를 보면서 한 선생님이 농담으로 ‘교무실 고시생’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까지 했다.

주위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심 책상 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잘 지켜진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건, 나 자신이 현재의 습관에 너무 깊이 길들여진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내 모습에 선생님들 또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출근하여 자리에 도착하자 어제 퇴근 전까지만 해도 지저분했던 내 책상 위가 말끔히 정리 정돈이 되어있지 않은가. 내심 고집불통인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어느 선생님이 참다못해 청소해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깨끗해진 책상 위를 보는 순간, 예전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좋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는 이상하리만큼 하루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만 책상 위를 정리해 놓은 것뿐인데 말이다.

“누가 내 책상 위를 청소했을까?”

하루 종일 이 의문점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퇴근 전까지 이 의문점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 시간 10분을 남겨놓고 책상 위를 하나둘씩 정리 정돈하였다. 조금은 내 행동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오늘 내 책상을 정리해 준 누군가를 생각하며 빠른 손놀림으로 열심히 청소했다.

다음 날 아침.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진 노란색 스티커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스티커 위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 책상 위를 제가 매일 청소해 드리려고 했는데…,
선생님, 오늘 하루도 파이팅 하세요.
2학년 ○반 ○○○ 올림”


그제야 어제 아침 내 책상 위를 청소해준 천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매일 아침 교무실 청소 때문에 자주 마주치는 여학생이기도 하였다. 그 아이의 눈에도 선생님인 내 자리가 매우 지저분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 업무가 많고 바쁘다는 핑계로 매일 사용하는 책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그 이후, 퇴근 시간이 아무리 늦어도 책상 위를 반드시 정리하고 퇴근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깨끗한 책상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이 모든 것은  한 여학생이 내게 전한 작은 사랑의 메시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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