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도교육청이 공립유치원에 지원하는 학급당 운영비가 연간 600만원도 안 되는 시도가 절반으로 나타났다. 그로 인해 낡고 부족한 교재교구로 수업이 이뤄지고 각종 교육행사, 견학활동이 위축되거나 학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경우가 많아 운영비 현실화가 시급한 상태다.
최근 16개 시도에 따르면 공립유치원에 지원되는 학급당 1년 운영비가 600만원도 안 되는 곳이 대구, 광주, 울산, 강원, 경남, 경북, 전남, 제주 등 8개 시도로 나타났다. 특히 광주, 울산, 경북은 겨우 300만원대의 운영비에 그쳤다. 이들 시도의 운영비 지원액은 매달 수업료가 1만∼3만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시도교육청 차원의 지원은커녕 학생들이 낸 돈도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 셈이다.
이 때문에 많은 유치원은 '값싼' 교육을 택하거나 학부모들의 주머니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최수안 울산 옥현유치원감은 "6학급 단설유치원인 우리 유치원도 매달 운영비가 200만원 정도인데 전기세가 180만원에 수도세, 전화세를 내면 돈이 모자라 추경을 요구한 상태"라며 "연 308만원이면 한 달 30만원 꼴로 사실 색종이랑 풀 사고 활동 영역에 들어가는 자질구레한 교구 한 두개 바꿔주면 더 할게 없다"고 말한다. 비디오나 시디 자료를 사려면 운영비를 서 너 달은 모아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자료나 소모품은 아이들에게 부담시키거나 교사들의 사비에 의존하는 일이 많다. 최 원감은 "전임 C초 병설유치원에서는 운동회나 학예회 때 만드는 공, 꽃 등 소품비와 의상 대여료 등을 학생들이 다 부담했다"고 말했다. 또 "울산의 경우 컴퓨터도 원당 1대뿐이고 교사들에게도 컴퓨터가 다 지급되지 않아 초등교에서 빌려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돈이 없으니 교사들이 교재교구를 직접 만들어 쓰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김미희 경북 금호초 병설유치원 교사는 "언어영역에 필요한 손인형을 사려면 몇천원에서 몇만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교사들이 날밤을 새며 바느질을 해 만들기도 한다"며 "그런 교구로 어떻게 가르칠 건가 하는 교수학습방법 연구가 더 중요한데 그 시간을 뺏기고 있다"고 한탄했다. 더욱이 요즘은 인터넷을 활용한 학습활동에 다양한 컨텐츠와 시디자료를 이용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보니 대부분 교사가 만드는 간단한 파워포인트 자료로 대체하는 형편이다.
보통 매달 진행되는 현장견학도 생략되기 일쑤다. 한반 15명 내외인 시골 병설유치원은 한번 외출에 차량 대여비를 포함해 학생 1인당 2만원 정도의 경비가 드는데 유치원이나 학부모 모두 부담할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박은정 광주 임곡초 병설유치원 교사는 "경비 내기를 꺼리는 부모들이 많아 학기에 한 번 나가거나 아예 한번도 현장견학을 못하는 유치원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학기마다 두 번은 직접 견학활동을 하고 나머지 두 번은 인터넷 화면상으로 방문하거나 교사가 직접 인근 박물관 등을 찾아 캠코더로 찍어와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들 시도의 유치원은 인천, 전북, 서울, 대전, 경기 등 학급당 운영비를 연간 1000만원이 넘게 지원 받는 유치원과 크게 대비되면서 교육 불평등 우려까지 낫고 있다.
인천의 경우, 학급당 400만원의 간식비와 급당 1명씩 배치된 업무보조자 인건비 500여만원을 포함해 연간 2560여만원의 운영비가 2년 전부터 지원되고 있다. 그간 노후화된 시설, 기자재 등으로 시도평가 시 하위권을 맴돌아온 데 자극 받아 획기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유치원마다 실외놀이터를 새 단장하고 번듯한 자료실, 교단선진화기기, 각종 교구, 자료를 구비하고 지점토나 액자 등 웬만한 학습재료를 모두 자체 제공하면서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도 점차 간식비를 무료로 제공하는 추세고 원당 1명의 업무보조원, 학급당 3대씩의 컴퓨터를 배치하는 등 여건 개선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권미애 서울 탑동초 병설유치원감은 "1000만원이 넘는 운영비를 지원받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유치원에는 실외놀이터가 없어 교사들이 늘 안전사고 위험에 가슴을 졸인다"며 "유아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운영비를 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