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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자원개발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정책 제언

그동안 논의돼 온 HRD전략은 국가차원의 사회구성원의 경제적인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선진국에로의 도약이 중차대한 과제임에 틀림없으나 이에 못지않게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회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가인적자원개발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정책 제언을 살펴본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세기말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넘어 21세기에 있어 국가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서 지식기반경제로의 급속한 이행을 강조하는 정책 담론이 정부와 기업 그리고 다수 언론에 의해 폭넓게 공유·설파되어 왔다. 지식기반경제론은 그동안 자본주의경제의 기본적인 생산요소였던 자본과 노동을 대신하여 새로운 중심적 생산요소로서 지식이 강조되는 디지털경제로의 시대적인 전환을 주장하며,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국가경제와 기업경영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는 지식-정보화의 기반 구축을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로서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식기반경제의 정책담론은 비단 우리 나라에서만 한정되어 나타는 게 아니고 서구 선진국 대부분에서뿐아니라 후발개도국들에 있어 공통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21세기 국가발전전략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정보화-세계화의 시대적인 변화 여건 속에서 선진경제로의 도약과 국민생활의 물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핵심적인 경쟁력 원천으로서 인적자원의 지적능력개발이 중요하다는 점을 들어 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한 종합적인 인적자원개발(HRD)전략의 수립을 강구해오고 있다. 정부는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하는 ‘신지식인’의 육성에 정책적으로 역점을 두는 한편, 디지털경제에 의해 요구되는 지식인력의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인적자원개발체계의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까지 논의되고 있는 인적자원개발전략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국가 및 기업경영 차원에 있어 향후 지식집약 부문 중심의 산업구조개편을 실현하기 위해 지식노동의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력의 원활한 공급을 도모함과 동시에 국민 개개인에 있어서 정보사회화의 여건 속에서 풍족한 경제적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서 지식·정보 활용능력의 개발을 통해 경제활동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데에 정책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더불어, 관련 정부부처들과 국책연구기관들은 직업훈련과 일반교육의 종합적인 개선을 통한 평생직업교육시스템의 확립과 지식인력의 수급 균형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시장체계의 정비, 그리고 ‘일과 인간개발을 연계시키는 생산적 복지인프라’ 구축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방안들을 준비해오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소위 국가인적자원개발(NHRD)전략을 수립함과 동시에 기존의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칭·승격하고, 또한 인적자원개발위원회를 대통령 자문기구로 설치·운영하고 있다.    

다른 사회문제는 소홀

그런데 그동안 논의되어진 HRD전략은 지식기반사회에로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한 지식인력의 공급과 지적 능력의 개발이라는 국가차원 및 사회구성원의 경제적인 필요에 주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우리 사회의 여타 문제들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에 진입하여 경제선진국에로의 도약이 국가차원의 중차대한 과제임에는 이론이 없겠으나, 이에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중대한 사회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PAGE BREAK]우리 사회는 지난 40년 동안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의 생활여건을 일정하게 확보할 수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인명 경시의 사고 빈발, 환경오염 및 공해, 구조적인 빈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범죄와 청소년비행, 성차별 및 성폭력, 고질적인 지역감정, 정치계와 관료층의 되풀이되는 부정비리, 탈법의 집단·개인이기적인 행태 만연 등과 같이 무수히 많은 사회문제들로 얼룩져 있다. 이처럼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어지는 화려한 경제적 치적의 뒷자리에는 ‘사고공화국’, ‘복합위험사회’, ‘지역분절사회’, ‘부패국가’ 등의 지우기 어려운 오명들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은 우리 사회전반의 급속한 변동을 그동안 재촉해온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 정책논리가 단선적으로 추구됨에 따라 빚어진 사회 규범의 왜곡현상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21세기에 진입하여 전지구적 차원에서 근대적인 사회경제 패러다임의 재편을 의미하는 탈근대적인 사회변동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 사회는 새로운 도전들에 당면하고 있다. 탈근대적 사회변동의 핵심 내용은 세계화와 정보화로 집약될 수 있다. 세계화와 이에 동반하고 있는 시장화는 무한경쟁이라는 경제적 요구에 따라 자유경쟁논리로 사회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을 철저히 규율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성과 시장화의 공세적인 논리가 우리 사회에 있어 인간관계의 해체를 보다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바우만(Bauman)과 벡(Beck)에 의해 지적되듯이 정보화는 그동안 근대화시대의 담론적 기저에 숙성되어온 양분법적인 가치체계를 대체하여 다원적 애매성(multi-ambivalence)의 가치관이 침투·확산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의 가치 혼돈과 공동체적 유대 상실을 초래함과 동시에 이들의 이기주의를 더욱 급진화할 수 있는 조건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화와 정보화로 대변되어지는 탈근대적인 사회변동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치체계의 공유와 공동체성의 강화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국가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인적자원개발전략의 수립에 있어서 과거의 개발시대에서와 같이 속도효율성의 경제논리만이 일방적으로 또는 협애하게 관철되어질 경우에는 그 결과로서 심화되는 사회 규범의 왜곡을 통해 야기되어질 사회문제 비용(costs of social problems)의 증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위험성 확대와 삶의 질 악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보화-세계화로 대변되는 탈근대화(post-modernization)의 세계적인 흐름을 맞이하여 공동체적인 도덕률을 견실하게 확립하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공동체의 해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난 과거로부터의 업보(압축적 근대화·compressed modernization가 배태한 사회규범의 왜곡)와 현재 진행중인 사회변동으로부터의 도전(탈근대적 사회변동에 따른 사회 해체 위기 및 남북통일의 완수)을 동시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이중적인 과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추어 볼 때, 지식정보화시대의 새로운 경제발전논리에 근거하고 있는 기존 인적자원개발의 전략의제에 있어 그 외연을 확장하여 사회적 차원의 과제, 즉 사회구성원들의 자기성찰성을 재정립하는 과제를 도모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국가 인적자원개발전략을 기획·추진함에 있어 경제적인 필요에 따른 사회구성원들의 지적 능력 향상에 못지 않게 사회적 차원의 인성개발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적자원개발전략의 수립에 있어 경제 논리와 사회 가치(성찰성)가 균형잡힌 조화를 이뤄야만 우리 사회의 ‘병든 외형성장’이 아니라 ‘도덕적인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압축적 근대화과정을 통해 왜곡되어진 사회 가치규범(물신주의, 경쟁주의, 권위주의 등)이 다양한 고질적인 사회문제들을 결과하여 왔다는 점을 고려하거나, 현재 전개되고 있는 탈근대적 사회변동의 도전들(세계화와 정보화 등)을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인적자원개발전략의 추진방향에 있어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규범 재확립’이라는 사회적 차원의 과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겠다.
[PAGE BREAK]선진 사회로의 발돋움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인적자원개발전략에 있어서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지적 능력 함양 못지 않게 이들의 가치규범을 재정립하는 정책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21세기의 인적자원개발을 추구하려는 정부는 우리 사회공동체의 규범적 성숙을 구현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의 자아 성찰성을 고취·강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균형 잡힌 정책접근을 해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떠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들과 당면한 탈근대적 변동의 도전들을 해결·대처해 나감에 있어 사회구성원들의 인성개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성찰성의 덕목들에 대한 적절한 훈육과정이 정부의 교육 및 인적자원개발정책에 포괄되어져야 하겠다.          

인성개발의 필요성

▶ 도덕적 성찰성의 재정립: 과도한 물신주의에 따른 인명 천시 풍조와 경쟁주의에 편승된 개인·집단이기주의, 그리고 편법·탈법적인 부정비리의 행태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인간 존엄과 사회적 책무, 그리고 사회보편적 도덕률을 우선시하는 공공윤리의식의 함양이 요구되고 있다.
▶ 공동체적 성찰성의 회복: 압축적 근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탈근대적 사회변동에 의해서 우리의 사회적 인간관계가 심각한 해체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바, 우선 개별적 차원에서는 다양한 인격체에 대한 포용과 이웃사랑-인간존중-신뢰문화의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하겠다. 국가 차원에서는 지역감정 극복과 민족 이질감의 해소를 위한 사회공동체의식의 확립이 요구된다. 또한,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시민으로서의 개방적인 태도와 가치관 역시 필요한 공동체적인 가치규범의 하나라고 하겠다. 더불어, 정보사회화와 관련해서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행위효율성을 중시하던 산업화시대의 경제적 합리성에서 탈피하여 지식 공유와 교환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사회(관계)적 합리성이 보다 중요시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비판적 성찰성의 강화: 지난 압축적 근대화에서 비롯되어진 사회문제들과 앞으로의 사회변동에 의해 낳아질 수 있는 위험·소외·해체의 문제들에 대해서 사회 구성원 스스로가 그 발생 원인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해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다. 특히, 사회문제의 피상적인 현상 인식에 그치기보다는 국가 실패와 시장 실패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요인들을 천착할 수 있는 비판적인 상상력의 의식 개발이 더불어 요구된다.
▶ 민주적 성찰성의 제고: 사회구성원들은 공공영역을 통해 발생된, 또는 발생되어질 사회문제에 대한 시민사회 차원의 공론화를 조직하고 그 문제의 해결 및 예방을 위해 집단화된 대응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의식의 계발이 필요하다.
▶ 미학적 성찰성의 증진:보다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와 물질적인 풍요의 생활조건 속에서 쾌락적 소비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건강한 생활문화의 향유능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감수성과 인문학적인 지혜를 추구하는 생활태도와 문화기획 능력을 적극 육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환경의 중요성이 갈수록 중요시되는 만큼 사회구성원들의 생태친화적인 가치관을 확립해 나가야 하겠다.

요컨대, 지식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시장경쟁논리에 기반하는 정부의 국가인적자원개발전략의제에 있어 누락되어 있는 사회적 차원의 과제, 즉 사회구성원들의 자아 성찰성을 함양하기 위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발전을 위한 ‘자원’으로서 사회구성원들의 지적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재의 국가인적자원개발(NHRD)정책은 우리 사회공동체의 도덕적 성숙을 동시에 구현해 나갈 수 있도록 그 추진 방향을 인간 개발로 확대하여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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