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랑이 지극하여 동물애호가의 나라인 영국을 방문해 동물병원, 동물보호감찰관제도의 운영 등을 참관하고 직접 체험하기도 한 대구여중 박성실 교사. 지난해 클럽활동시간에 동물사랑반을 개설하고, 학생들과 함께 동물사랑정신을 실천해 보이는 봉사활동으로 방학중에도 바쁜 나날을 보낸다. 동물애호가의 별난 방학 이야기를 필자의 글을 통해 들어본다.
3년 전 여름방학 초엽 한국동물보호협회를 방문한 World Society for Protection of Animals의 조사요원 Travor Wheeler와 수의학 관련 자문요원인 Ray Butcher를 만나게 되었다. 일주일의 조사활동 후 하루의 여유가 남은 이들에게 나는 경주를 구경시켜 주었다. 경주 쌈밥 집에서 식사를 하며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영국의 동물보호활동에 대해 견학할 수 있는 기회가 없겠느냐고 물었고, Travor는 견학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Ray는 내게 숙소를 제공해 주기로 하였다.
동물애호가의 나라 영국에 가다
그 해 겨울 영국에 갔다. Travor는 아시아 조사여행을 다시 하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내가 영국에 도착하는 날 한국에 도착하도록 일정이 짜여져 있었다. 그래서 나의 영국 체류에 관한 모든 것은 Ray가 보살펴주게 되었다. 새벽에 눈을 비비며 나를 마중하러 나온 Ray와의 반가운 해후. 서로 공항에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BBC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누워있는 언덕들의 그 푸릇푸릇한 곡선들, 그리고 공기의 양감이 느껴지는 촉촉함. 아 영국이구나 싶었다. 집에 도착하니 Ray의 부인 Moira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Ray의 동물병원으로 갔다.
수의사 8명, 수의간호사 36명, 임상병리사 1명, 행정요원 5명 정도가 함께 일하는 이 동물병원은 365일 24시간 영업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되어있었고 3만여 명의 Upminster 지역 주민들의 반려동물의 건강관리 및 사고를 당한 배회동물과 야생동물들의 응급처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오전 8시에 도착을 했는데 벌써 큰 수술이 2건 진행되고 있었고, 그 이후 4개의 수술대 위에서는 여러 다양한 수술이 쉼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3개의 진료실에서의 진료도 저녁 8시까지 계속 되었으며 거의 모든 진료의뢰는 예약을 통해 스케줄이 관리되고 있었다. 입원환자를 돌보며 수의사를 보조하는 간호사들의 움직임 또한 분주하며,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세탁기, 각종 검사기들의 소리, 가끔씩 외쳐지는 “엑스레이(엑스선 촬영을 곧 할 것이니 조심하라는 뜻)”라는 소리 등…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터져 버리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다.
한국에서 동물보호 자원봉사자로서 다친 동물들의 치료를 보조하고자 할 때 갖추어야 할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기 위하여 Ray는 자신의 수술 및 진료 과정에 나를 참관시켜 나를 마치 수의사인양 대하며 작은 사항 하나하나에도 나의 의견을 묻고 또 상세한 설명을 해주며 일을 해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병원 사람들은 내가 한국에서 온 수의사인 줄 알았다고 한다. 내가 학교교사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간호사들은 나를 편하게 대하며 자신들의 댄스파티에도 나를 데려가 주었으며 간호사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Ray의 일정에 맞추어 병원실습을 하면서 느낀 것은 수의사라는 직업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참 중노동이라는 것이다. 실지로 영국 수의사들의 잡지책들을 살펴보니 “어떻게 하면 ‘Burn out(다 타버리다. 기력을 탕진하다)’ 되지 않을까”에 대한 기사들이 항상 들어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참관자로서의 나의 기력도 쇠진되고 있다고 느낄 때쯤이면 항상 색다른 견학거리가 주어졌다.
청각장애아의 특수교육 참관 기회도 가져
Moira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버밍햄 대학원에서 청각장애특수교육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청각장애아동에게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초등학교 특수교사이다. 그녀는 자신이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딸 Gillian이 다녔던 중고등학교에서 내가 참관활동을 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었다.
[PAGE BREAK]현재 영국의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통합교육을 행하고 있으며 청각장애아동들은 영문학에 관한 특수교육(음성언어의 아름다움까지 녹아있는 문학을 청각장애학생들이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그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교과활동이 필요하다고 한다)을 두 시간 정도 받은 후에는 일반아동들과 합류하여 동일한 교과과정을 함께 공부한다. 이때 수화통역보조 및 청각보조장치의 도움이 곁들여지나 대부분의 경우 청각장애아동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의사소통활동에 임하도록 격려 받는다.
어눌하게 들릴 수 있는 그들의 말을 다른 아동들은 별 이상한 느낌을 갖지 않고 끝까지 들으며 장애아동도 어색함이 없는 태도로 질문을 하고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소리에 관한 과학실험을 하면서 소리파장과 그 변환에 대한 구체적 예로서 청각보조장치의 작동원리를 살펴보는 활동이 있었는데, 이것은 일반아동들이 청각장애아동들과 함께 공부하는 통합교육만이 제공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편을 가르쳤는데 그리 쉽지는 않았어. 듣기에 영롱한 시어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보여주기가 수월하지는 않구나. 더 공부를 해야겠다. 하…” 마른 한숨을 뱉으며 상기된 표정으로 잠시 하늘을 보는 Moria의 모습을 보며 고민이 사람을 아름답게 할 때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감찰관과 함께 조사활동 나서기도
The 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RSPCA:동물학대예방을 위한 왕립단체)는 동물보호감찰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동물보호감찰관을 경찰관직의 일종으로 보고 있고 실제로는 공권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사활동에 적극 협조한다. 동물학대 사안이 발생한 듯하면 이 감찰관에게 신고를 하고 그러면 감찰관이 신고 장소로 출동하여 진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운다.
업민스터 지역을 담당하는 감찰관을 따라 다니며 활동내용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나를 지도했던 그 감찰관의 성함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해병대 출신이었으며 제대 후 사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이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하셨다. 활기가 넘치는 분이셨는데 한국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고 또 동물보호에 관한 자신의 경험들에 대해 최대한 많이 가르쳐 주시려고 노력하셨다. 일정에도 없던 여러 동물보호소 방문을 주선하시고 직접 태워주시곤 하셨다.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나를 챙겨 함께 출동하였고 조사활동시 주의사항 등을 꼼꼼히 짚어주셨다.
영국은 동물애호가의 나라로 유명하지만 또 사회의 한편에서는 무지와 방관과 폭력에 찌든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동물학대 행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현장에 갔을 때마다 받는 충격이 상당히 컸는데 그것을 감지한 감찰관은 나에게 동물보호활동을 할 때는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유의해야 하며 심리적 충격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긍정적 세계관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을 직시하나 현실에 매몰되지 말며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다는 것을 목격할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것의 예가 될 사건을 나도 함께 겪은 적이 있다. 추운 겨울에 앵무새를 베란다에 내어놓았다는 어느 제보전화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니 진짜 아파트 베란다에 앵무새가 있는 것이 보였다. 감찰관과 함께 그 집에 가서 조사협조를 요청하니 집주인이 베란다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랬더니 정말 앵무새와 꼭 같이 생긴 장난감 앵무새가 있지 않은가. 세 명 모두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장남감 앵무새로 다른 시민들에게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고 집주인은 사과를 하였다. 앵무새의 안녕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빚어낸 재미있는 사건이었다.
영국에서 지켜보았던 많은 동물보호활동들이 내게 영감을 주면서 그 이후 나의 관심은 항상 그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이후 해외여행의 목적은 해외동물보호 활동가들을 만나보고 그 활동들을 배우는 것이 되었고 그런 여행을 통해 조금씩 동물보호에 관한 나의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게 되었다.
[PAGE BREAK]특히 비슷한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인식수준을 가진 아시아국가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나름대로의 활동을 한국에서 시작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아시아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다른 생업을 가지면서 자신의 여가시간과 에너지를 동물보호활동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활동의 제약성으로 인한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생명존중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미 그 실천을 시작한 동물보호교육활동가들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동물사랑정신을 실천으로 옮겨
지난해 클럽활동시간에 동물사랑반을 개설하여 어설프게나마 활동을 시작하였고 2학기부터는 학교 동아리로 정식 등록하여 활동중이다. 동물사랑반 학생들은 대구시 지정 야생동물치료센터이기도 한 대구동인동물병원에서 매주 토요일 동물치료활동에 관한 참관수업을 하였으며 학교 축제인 매화제의 동아리발표회를 통해서 동물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연극과 동물사랑정신을 담은 노래를 수화와 곁들여 공연을 하였다. 그리고 팔공산 도동에서 집없는 개 80여 마리를 돌보는 어느 할머니를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사랑의 개집마련 모금운동을 벌여 총39만원을 모아 개집 30채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방학동안 토요일마다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청소노력봉사를 하고 있다.
올해에는 생명존중정신을 담은 노래를 5곡 정도 더 만들고 수화도 연습하여 학교 및 일반 행사가 있을 시에 공연하여 동물사랑정신을 전달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리고 동물원의 동물들에 대한 관람자의 올바른 태도에 대한 계몽활동을 시작해 보려고 구상중에 있다.
“깨달은 사람의 수준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령 누군가에 의해 걷어채이는 개를 보았다면, 어느 수준만큼 깨달은 사람은 걷어채이는 고통을 함께 느낍니다. 비록 그가 신체적으로 구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 자그마한 벌레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아도 동일한 전율을 느낍니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또 점점 상호의존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생명에 대한 보편적 책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인간 대 인간, 국가 대 국가의 책임 의식뿐만 아니라, 사람 대 생명 사이의 책임의식도 느껴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
지난해 여름 경북대학교 생물과의 야생동물구조센터에 학생들과 함께 갔다. 신기한 볼거리에 자지러질 듯 흥분만 하던 학생들은 다친 야생동물 돌보기에 관한 설명을 들은 후 아기 고라니를 보러 한 연구실로 가고 있었다. “야, 고라니 놀랄라. 살살 걸어라.” 서로 발소리 내지 말라는 핀잔을 주며 발꿈치 들고 사뿐사뿐……. 이런 소녀들이 있기에 내일은 오늘보다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