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정보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 국민은 전세계에서 인터넷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사회의 미래가 그리 밝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보통신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유익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나, 그 기술의 그릇된 사용으로 인한 역기능도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회에서는 빈부 격차나 인간 소외와 같은 산업사회의 역기능이 더욱 심화되는가 하면, 산업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즉, 정보통신기술은 산업사회에 있었던 윤리적 문제들을 더욱 복잡하게 하거나 산업사회의 문제들과는 다른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보사회에서 나타나는 윤리적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에 정보사회에서의 대표적인 윤리적 문제들을 우리 사회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보사회에서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의 만연으로 인한 윤리적 상대주의이다. 그리고 윤리적 상대주의는 윤리적 회의주의를 초래하고 있다. 정보사회에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회의 상이한 규범들을 빈번하게 접촉함에 따라서 가치 상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가치 상대주의는 윤리적 상대주의를 조장하여 모든 윤리 규범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킨다. 윤리적 상대주의가 확산되면, 사람들은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포기함으로써 윤리적 무관심이나 윤리적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또 사이버 공간에서는 누구나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즉, 자신의 외모·신분·성격 등을 전혀 다르게 설정하여 현실 세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은 개인으로 하여금 현실에서는 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렇듯 사이버 공간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고정적이거나 단일하지 않다. 우리의 자아 정체성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의사 소통을 통하여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정보사회에서의 자아 정체성은 유연하고 복합적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열린 의사소통은 우리 안에 있는 여러 모습들과 다른 사람들의 여러 다른 모습들 각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를 가져다준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하여 봄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 진지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이 우리의 자아 정체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익명과 가명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실 사회에서와 같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고 주관적인 자신의 모습만이 강조될 뿐이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오랜 활동 경험은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귀기도 쉽지만,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관계를 쉽게 끊어 버릴 수도 있어서, 현실 세계에서처럼 친구간의 강한 유대감이나 신뢰를 형성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나아가 청소년 시기에 지나치게 사이버 공간에 몰입할 경우 성격이 충동적으로 되거나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은 여러 개의 가상적 자아가 움직이는 공간이기에, 현실 공간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는 윤리적 자아가 위축되게 되어 쉽게 비윤리적 행동에 빠질 수 있다.
계층 및 지역간의 정보격차 심해
정보사회에서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매우 많이 있으나, 실제로 그 정보를 누구나 똑같이 이용하고 있지는 못하다. 정보사회에서의 정보에 대한 불평등을 일컬어 정보 격차라고 부른다. 정보 격차는 유익한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계층간·지역간·세대간·성별간에 나타나는 불평등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정보 격차의 심각성은 서울과 지방,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남성과 여성,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PAGE BREAK]예를 들어 2000년 9월 현재 초고속 인터넷망에 가입한 비율(가입자 수를 인구로 나눈 것)은 서울의 경우에 7.5%로 최하위인 경남(2.1%)에 비해 3.5배정도 높다. 다른 지방도 대부분 2%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서울과 지방간의 정보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또한 연령별로 보면 현재 우리 나라의 인터넷 이용 인구의 75% 이상을 10대와 20대가 차지하고 있어 세대간 정보 격차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 격차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정보 불평등은 각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역별 정보 불평등이 심화되면 지역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며 계층별 정보 불평등이 심화되면 노동, 빈민, 범죄 문제 등 사회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 정보 불평등은 여성 문제나 가족 문제를, 그리고 학력별·연령별 정보 불평등은 세대간 대화 단절 등 이질성 문제, 또는 학벌 사회와 같은 엘리트 문제와 더불어 교육 불평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렇듯 정보가 주된 생산 요소이고 생활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정보 사회에서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 정보 분배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다양한 사회 갈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정보 격차는 윤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해킹(hacking) 및 정보 오·남용
정보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로서 인터넷의 개방성과 익명성을 악용한 정보 시스템의 불법 침입·파괴 현상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해킹과 바이러스 유포이다. 해킹(hacking)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하여 사용이 허락되지 않은 다른 컴퓨터에 불법으로 접근하여 저장되어 있는 파일을 빼내거나, 정보를 마음대로 바꾸어 놓거나, 컴퓨터 운영 체제를 손상시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컴퓨터 바이러스란 마치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처럼 컴퓨터에 전염되어 장애를 일으키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주로 컴퓨터의 운영 체제나 프로그램 속에 숨어 있다가 컴퓨터를 작동하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프로그램이나 중요한 파일의 자료들을 지워버리는 등의 피해를 일으킨다. 한국전산원 자료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동안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가 무려 572종에 달하였다. 이것은 1999년의 379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로서 1일 평균 1.6종 꼴로 신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진 셈이다.
정보사회에서는 또한 정보통신망을 통한 개인 정보 유출·유통으로 인한 개인 신용 정보 노출, 사생활 침해 등 피해가 많이 발생한다. 전자 거래가 활성화되고 개인 정보를 활용한 마케팅이 증가함에 따라, 소비자 사생활 권리 침해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소비자들에 대한 정보가 새나가 퍼짐으로써 생기는 윤리적 문제이다. 한국전산원 자료를 보면 우리 나라의 사생활 권리 침해 유형은 ‘본인의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으로 사생활 노출(30%)’ ‘사업자의 관리 소홀로 인한 내부자 유출(23.2%)’ ‘본인의 ID 및 비밀번호 도용으로 인한 피해(20.7%)’ ‘수사기관이나 공공기관 등에 대한 사업자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제공(13.9%)’ ‘사업자간 고객 정보의 공동이용(12%)’ 등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회사들은 판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소비자들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소비자에 관한 정보가 소비자의 동의 없이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이동함에 따라서 소비자 정보가 비양심적인 업자에게 판매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개인 정보의 유출은 무단 광고성 전자우편, 인터넷 사기, 사이버 스토킹과 같은 역기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정보의 수집·처리에 있어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커다란 문제이다. 일단 어느 개인에 대한 그릇된 정보가 확산되고 나면 부정확한 정보를 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보사회에서 사생활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윤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정보에 대한 타인의 접근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을 자율적인 존재로서 대우한다는 것은 그 개인으로 하여금 그가 선택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그가 누구와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가지는 사람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는 상당한 자율성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다면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통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AGE BREAK]지적 재산권 침해와 정보의 조작
전세계의 네트워크화가 이루어짐에 따라서 정보사회에서의 지적 재산권 문제는 단순히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소프트웨어·멀티미디어 컨텐츠 불법 복제, PC 통신·인터넷상의 정보 무단 사용, 멀티미디어 편집 제작물에 의한 지적 재산권 침해 등이 정보사회의 대표적인 윤리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정보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정보의 가치가 커지고 지식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이 증대하는 경향이 있으나, 불법 복제 등의 지적 재산권 침해 수단으로 정보 기술 활용이 증가하고 이에 활용되는 기술 또한 발달함에 따라 지적 재산권 침해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한편 정보사회에서는 거짓과 참의 구분, 원본과 복제본의 구별이 어려워진다. 정보사회에서는 정보의 조작과 날조를 통해 사람들의 건전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경우나 사회 질서를 교란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정보통신망을 통한 유언비어 유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지역간·계층간 불신과 위화감을 조장하는 내용의 유언비어 유포, 선거 기간중 상대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흑색 선전, 중상 모략 및 인신 공격 등 선거 부정 행위, 기업 또는 국가 경제와 관련한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경제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 허위 사실의 유포로 정치인·연예인·종교인 등 공인에 대한 비방·명예 훼손·인권 침해 등이 그러한 사회 문제에 해당된다.
윤리의식 결여된 불법 정보 유통
정보사회에서 정보가 상업화되면 당장 경제성이 없어 보이는 것(예: 문화 유산)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렇듯 상업적인 측면에서 효용성이 없는 정보들은 사장되거나 소멸되기 쉽다. 그 결과 정보는 편향성을 띠게 되고, 문화는 균형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정보의 상업화에 따라 정보의 독점이나 전매 현상이 생김으로써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을 수도 있다. 한편 정보사회에서는 정보로 만들어지거나 전달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 목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얼마든지 확산될 소지가 있다. 음란물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이러한 불건전 정보는 건전한 사회문화 발전을 저해하고 성 풍속의 타락 및 문화의 변질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청소년의 건전한 성윤리 의식의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이렇듯 정보사회에서는 산업사회에 비해 더 다양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정보사회는 정보를 올바르게 생산·분배·유통·이용할 수 있는 인간의 윤리의식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정보사회의 구성원들은 정보통신윤리에 입각하여 사고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윤리란 정보사회에서 야기되고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규범 체계이다. 정보통신윤리는 단순히 정보통신기술을 다루는 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윤리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것을 올바르게 판단하여 행동하는 데 필요한 규범적인 기준 체계이다.
정보사회의 도래를 촉진한 정보통신기술은 일정한 논리에 따라서 작동하지만 우리 인간은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을 구별하는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이다. 정보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이 고양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의 논리’가 아닌 ‘정보통신윤리’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보사회에서의 인간 완성에 기여할 수 있는 네 가지의 윤리적 원리는 존중(respect), 책임(responsibility), 정의(justice), 해악 금지(non-maleficence)이다. 우리는 이 네 가지 원리에 입각하여 행동함으로써 정보사회의 윤리적 역기능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