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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철학 갖춘 시설 필요

일제 식민지 시대와 군사 권위주의 시대, 냉전 시대를 살아왔던 교사와 학부모들은 지금의 획일적이고 을씨년스러운 학교 환경에 잘 적응하여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동안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학교 밖으로 새어나간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1. 들어가는 글

사물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고 마음에 영향을 준다.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교사(校舍), 연병장 같은 운동장, 높은 학교 담장은 이것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이 생각은 다시 그곳에 머물 교사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체의 특성을 만들어낸다. 일제 식민지 시대와 군사 권위주의 시대, 냉전 시대를 살아왔던 교사와 학부모들이 지금의 획일적이고 을씨년스러운 학교 환경에 잘 적응하여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학교 밖으로 새어나간다. 물론 거기에 교사와 학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살아있을 턱이 없다.
일부 어른들은 이런 사태를 놓고 돈이 없어 그렇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정직한 답이 아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빈곤한 것이다. 최근 학교에 돈을 들여서 만든 학교들이라 하여 학생들이 그 속에서 아름다움의 교육적 경험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겨지지 않는다.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재산과 권력을 움켜지어 이렇게 훌륭한 공간을 만들기를 원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만약 학교가 진정한 교육철학으로 무장된 시설을 갖고 싶다면 어떤 모양일까?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사와 학부모가 행복하고, 미래가 행복해질 시설이 있을 수 있다면 과연 학교는 어떻게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이를 한 가지로 답할 수 없으며 답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학교 주민들은 제각기 취향이 있으며 이러한 취향에 따라 학교도 제각기 다른 향기를 가질 것이라는 점이다. 학교가 제각기 다른 향기를 뽐낼 때, 우주의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학교에도 투영될 수 있으리라.
두 번째 말하고 싶은 점은,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우선 행복하게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기본적 심성이 자연과 닮아 있다면 가능한 한 학교도 자연을 닮아야 하며 아이들이 풍요로운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어한다면 학교는 풍부한 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 양자의 요구가 모순적이라고 비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만약 이론적인 논쟁보다는 실천적인 논쟁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양자의 모순은 실제에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니다.
세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학교가 교회당처럼, 절간처럼, 슈퍼마켓처럼 마을 속에 포근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격리시켜서 학교가 아이들에게 더욱 신성한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 오만으로부터 해방될 때, 학교는 가정처럼 따뜻한 삶의 공간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사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재정의 문제이다. 그러나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아름다운학교 모형을 발굴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실시한 ‘아름다운학교를 찾습니다’ 공모전을 실시한 결과 교육환경 부문에서 우수학교로 선정된 천안봉서초등학교, 고양능곡초등학교 등의 학교 전경은 학교 시설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학교장이, 교사가, 혹은 학부모가 내 마음 속에 아름다움을 학교 환경으로 나타내고자 지극한 정성을 기울인다면 뜻이 전달되고 뜻이 모아지고 뜻이 현실화된다. 그렇게 뜻이 모아지는 자체가 아름다워지고 이러한 과정들은 학교의 곳곳에 아름다운 사람들의 희망을 채우는 좋은 컨텐츠로 남게 된다.
그렇다면 도시형 대안학교의 시설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에서 권하는 것은 역시 시설 속에 투영된 대안적 철학이다. 시설을 통해 내 삶이 귀중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 또한 중요함을 스스로 배우고, 시설을 통해 내 삶이 자연과 연결되고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시설을 통해 창의적 사고가 삶을 풍요롭게 함을 체험적으로 깨달을 수 있으면 이는 도시형 대안학교로 손색이 없다.

2. 아름다운 옥외 환경

아름다운 학교는 환경·생태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이 모두 포괄되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우선 학교와 학교 주변의 자연환경요소(물, 동·식물, 소생물권 등) 및 주변 환경과 친밀하게 접촉하며 자연과 동화되어 체험하고 학습하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학교를 의미한다. 아름다운 옥내외환경은 안정감, 평온감, 스트레스 해소라는 심리적 효과뿐만 아니라 교실 대기의 정화, 온도조절, 습도조절 등의 효과가 있다.

[PAGE BREAK]대안학교들이 대부분 농촌이나 산골에 위치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생태적 환경 조성의 필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라고 해서 생태적 환경 구성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도시형 대안학교 형태에서 추천할만한 아이템으로 비오토프, 환경친화형 방음벽, 생울타리, 노동체험장, 소공원, 잔디포운동장 등이 있다. 비오토프란 bio(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의미)와 top(영역, 지역의 의미)이 결합된 독일에서 유래한 용어로 생물의 서식공간을 각각의 특성에 따라 유형화한 생물서식의 기본단위를 나타내는 생태학 용어이다.
학교옥외환경에서는 작은 연못과 다양한 수종을 식재한 자연형의 비오토프를 조성하여 소동물이나 곤충들이 생태적으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학교옥외환경 내에 조성 가능한 비오토프에는 잠자리 연못, 소규모 습지, 작은 숲, 실개천 등이 있다. 일산능곡초등학교에는 비오토프를 정화조 위에 구축하였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도 살릴 만하다.
환경친화형 방음벽은 기존의 금속재나 플라스틱재가 갖는 부자연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재료를 사용한 방음벽이나 혹은 덩굴식물로 녹화한 방음벽, 구조체를 말하며 기존 방음벽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고 도시 내 환경친화적 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방음벽을 말한다.
학교 담장을 생울타리로 조성하는 것은 미관적 측면, 생태적 측면, 지역사회에 대한 이미지 향상 측면 등에서 바람직하다. 생울타리는 학생들에게 안전성을 제공하며 많은 동식물 유입으로 인한 학생들의 체험을 풍부하게 한다. 특히 환경친화적인 학교분위기를 창출하는데 학교의 생울타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학교가 지역사회에게 열린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서울고등학교는 담을 허물어 그 공간에 숲과 오솔길, 돌담으로 채웠다.
잔디포 운동장은 모래바람 날리는 운동장을 대신한 환경친화형 모형이다. 다만 잔디 관리가 쉽지 않아 아직 남부 지역의 학교에 잘 어울리는 형태이다. 남해군청은 관내 12개 학교에 잔디포 운동장을 조성하였으며 안면도의 혜미초등학교는 군부대의 지원으로 멋진 잔디 운동장을 조성하였다. 제천입석초등학교는 잔디포가 아닌 야생 그대로 운동장을 내버려둠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벌이기도 하였다.
학교 텃밭은 생태환경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노동체험의 중요한 장을 제공한다. 학교 화단이나 운동장 구석 등을 이용하여 학교 텃밭을 가꾸게 하면 여기서 훌륭한 인성교육 체험을 할 수 있다.
 
3. 아름다운 실내 공간

국가의 부가 먼저 어른들에게 쓰여져야 하는지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먼저 쓰여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가정에서 실제 배분 비율이 어떠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나온다. 가정에서는 재정이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우선 배정되지만 가정 밖으로만 나가면 어른부터 우선 배정된다. 도시 속의 학교들을 일반 관공서의 건물과 비교해 보면 심하게 낙후되어 있고 지저분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역 문화 축제를 열어 고장의 전통 문화를 창달하는 데 이바지한 공로로 공동체 부문 아름다운학교로 선정된 전북고창여자고등학교의 내부는 빈곤한 학교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대신 학교장과 교사들의 헌신들이 사랑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1억5000만을 들여 회사가 만들어준 멀티미디어실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단돈 1500만원으로 직접 만든 멀티미디어실이 훨씬 풍요로운 교육적 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었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널리 추천하는 실내 건축의 아이디어로는 인터넷카페 공간, 다목적 체육관, 이동 교실 등이다.
인터넷카페 공간은 청소년 문화 시설의 주요 컨셉이다. 멀티미디어실, 도서관, 시청각실, 휴게실, 방과후 PC방이 통합된 이 컨셉이 학교에 적용되면 교사(校舍)들이 효율적이고 편리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운영도 가능한 교사(敎師)가 아니라 외부 인사에 위탁함으로써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공부만 하는 학교가 만남을 제공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재배치되는 것 자체가 대안교육의 철학을 충분히 반영한다. 이러한 카페 공간에서 강의에만 매달릴 교사가 어디 있을 것이며 오직 공부뿐이라고 훈계하는 교사가 어디 있을까?
[PAGE BREAK]다목적 체육관은 실내체육관, 샤워실, 공연 시설 및 연습장, 식당 등이 합쳐진 복합 공간이다. 인터넷카페 공간이 조용한 활동의 공간이라면 다목적 체육관은 소음이 있을 수 있는 활동의 공간이다. 다목적 체육관은 단지 학생들만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청보다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다목적 체육관 건립을 가장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는 도시는 부천시이다. 이동형 교실은 바로 스쿨버스를 말한다. 단지 통학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스쿨버스를 이동형 교실이라는 컨셉으로 다시 보면 유용할 데 그지없다. 다양한 체험학습을 지원하기 위하여 1명의 교사와 1명의 운전기사가 한 조로 운영하게 하면 된다. 그 안에 멀티비전과 노트북, 음향 장치, VTR, 화이트보드 등의 부속 시설을 장착하게 하면 좋다.

4. 대안적 교실 운영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도시형 대안학교에 대해 관여한 것은 경기도의 수원에서 안산으로 이르는 산업도로 상에 있는 학교이다. 아파트 주변에 초등학교가 세워지면서 쓸모 없게 된 이 학교를 경기도 교육청이 공립형 대안고등학교로 바꾸기로 하면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이 곳에 아름다운학교의 모형을 세워보았다. 이러한 모형은 주위에 야산과 논, 아파트가 어우러진 도시 외곽의 어떤 학교를 리모델링 하겠다는 제안이기 때문에 모든 도시형 대안학교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곳에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값진 것이어서 다른 학교로 전파하여도 쓸모가 크리라 여겨진다.
이 곳에서 학사운영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로 권장하였다. 기존의 학사 시간이 너무 짧아 공간이 비효율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작년 7·20 교육여건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 마구잡이 학교 증축이 실시되고 있는데 차라리 학사 이용 시간을 늘려 다인수 학급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했더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학사 이용 시간을 늘리면 고등학교의 경우 대학식 운영이 가능해진다. 교과연구실을 중심으로 이동형 수업, 혹은 수준별 수업이 배치될 수 있으며 수업 사이에 빈 시간이 생기게 되고 학생들은 인터넷 카페 공간과 다목적 체육관, 잔디포 운동장, 소공원 등에서 여유 있는 삶을 보내게 된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에서 추천하는 학교 개념은 시설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 개념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교회를 시설이 아닌 공동체로서 바라보고 실천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공동체로서 학교는 지금의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로 그대로 연결된다. 공설운동장이 학교운동장이 되고, PC방이 멀티미디어실이 되며, 미용실이 특기적성 교실이 되며, 교회와 절이 인성교실이 된다.
이때 각 교실을 넘나들며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다기능 학생증이다. 기존의 플라스틱 학생증에 RF Chip을 탑재하여 도서관 대출이나 식당 출입에 사용하고 학교밖 프로그램 이수여부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물론 버스와 지하철을 탑승할 수 있다. 여기에 직불카드를 얹어 용돈 기능이나 할인 기능을 넣을 수 있으면 너무 좋다. 만약 IC Chip을 탑재하게 되면 학생의 교육·문화활동 기록을 보존할 수 있으며 철저한 하드웨어적 보안 하에서 학부모와 교사·학생이 인터넷상에서 손쉽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일부 학교에서 시행되는 이 카드를 지금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에서는 전국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5. 결론 및 제언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설은 돈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돈으로만 해결하면 역시 아이들은 세상은 만사 돈으로 해결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최근 학교평가를 다녀온 교수 한 분이 훌륭한 학교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흉악한 경쟁 교육을 소리 높여 비난한 것을 들었다. 교장 선생님의 개혁적 열정 속에 비어있는 아름다움의 철학이 결국 그렇게 만들었구나 탄식하였다. 만약 아름다운 공간을 제공하려는 마음이 뭉쳐 시설이 제공되면 학생들은 ‘아! 세상은 마음이 모여지면 아름다워지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강조하려는 것은 시설 속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마음의 기운(氣運)이다.
일부 대안학교가 자꾸 시골로 가는 이유로 시골이 주는 넉넉한 생태 환경 탓이기도 하지만 땅값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제도 대안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 복합 주거 시설 속에 학교를 안치시키면 손쉽게 해결된다. 단지 온갖 규제만 풀어주면 될 것을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것이 아쉽다. 어려운 문제를 창의적 아이디어로 해결하였을 때, 아이들이 이 곳에서 얻을 교육적 효과를 상상한다면 창의적 발상과 규제 철폐가 얼마나 중요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학교 시설은 교육청 시설과정의 몫이 아니다. 이는 수요자인 학생과 교사의 몫이다. 단지 전문적이라는 이유로 지어준 대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수요자에 맞는 시설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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