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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여가문화 : 이해와 전망

주 5일수업제는 개개인의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 그러나 막연히 주말시간을 제공하는 선에서 국가의 책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보다 필요한 부분은 장기적으로 개개인의 여가 레퍼토리를 넓혀주기 위한 아동기의 여가 교육이다.

고동우(경주대 관광학부 교수, 여가심리학 박사)


이제 곧 시행될 주5일 근무제는 학교의 주5일 수업제로 발전할 것이다. 주5일 수업의 시행은 청소년 여가 교육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청소년의 여가 행동을 이해하는 작업이 우선 요구된다.
청소년을 자녀로 두거나 가르쳐 본 사람이라면, 혹은 청소년기를 거쳤던 성인이라면 누구나 느낀다. 청소년기의 여가 혹은 놀이는 거의 모두가 일탈적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하지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골치 덩어리이다. 청소년과 그들의 여가에 대하여 이러한 평가를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일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당시에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거의 언제나 막연하지만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자’고 말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것인가? 모든 젊은이들이 유사하게 가지고 있는 동기적 성향을 이해한다면, 왜 그들이 이 사회가 요구하거나 제시한 여가 행동보다는 그들만의 기상천외한 일탈 행동으로 여가 생활을 추구하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가 행동의 두 가지 기제

학문적으로 정의하면 여가란 비교적 자유로운 선택으로서 경험 자체를 목표로 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가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결정하는 공통적인 심리적 기제는 두 가지 동기성향의 함수이다. 하나는 최적의 각성을 추구하는 것이고(optimal arousal seeking) 다른 하나는 이완을 추구하는 것이다(relaxation seeking). 이 두 가지는 언뜻 보면 일직선상의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인생 전반에 걸쳐 이 두 가지 동기의 평균적인 성향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인생 단계마다 그 강도는 다르다. 개인이 지니는 심리적 에너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이르렀을 때 혈기왕성한 에너지의 분출 때문에 최적 각성을 추구하는 성향은 매우 강해지지만 반면 이완(즉, 편안함)을 추구하는 성향은 최소가 된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여가는 대개 긴장과 각성을 주는 행동으로 이루어지며 여가 행동의 범위 역시 매우 넓어진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각성을 느끼고, 또 이완을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화려한 색상이나 스릴러 물, 속도, 약물 등과 같은 물리적 자극은 대개 각성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것만이 아니다. 변화하는 것, 기존의 규범을 깨는 것, 다른 사람을 정복하는 것, 성취하는 것, 폭력을 행사하는 것 등과 같은 사회적 요소들도 각성을 유발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반사회적인 것으로서 나쁜 것 혹은 악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므로 최적 각성을 가져다주는 행동은 공통체의 입장에서 보면 ‘악의 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반면, 조용히 있는 것, 규범을 따른 것, 다른 사람과 타협하는 것, 양보하는 것 등은 모두 편안함을 가져온다. 이러한 이완의 기제는 모범 행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선의 축’으로 인식될 수 있다. 결국 여가 행동은 선과 악의 기제로부터 지배받은 것이다. 거의 모든 청소년은 이 두 가지 기제가 작용하는 여가 행동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청소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PAGE BREAK]
두 종류의 우상

이제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우상이 되거나 모델링의 대상이 되는 학생은 대개 두 부류에 국한된다. 하나는 학교에서 이미 낙인찍힌 불량 청소년이며, 다른 하나는 원칙과 규범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매우 모범적인 학생이다. 여기서 모범적이라는 말은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를 말한다. 아무리 왕따가 판을 친다고 해도 매우 모범적인 학생은 그 대상에서 벗어난다. 주의할 점은 그 기준이 교사나 부모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 즉 학생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류는 중간 범위에 있는 청소년들인데 이들은 대개 나쁜 짓과 착한 행동을 늘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나쁜 짓을 통해서 짜릿함을 느끼고자 하고, 착한 행동을 통해서 안정감을 추구한다.
나쁜 짓의 첨병은 선봉에 서서 독특하고 신기하며 사회적으로 일탈적인 것을 실험하는 불량 학생들이다. 이들은 대개 공부와 같은 기성 규범을 깨면서 사회적으로 일탈적인 행동을 도입하여 그들만의 새로운 규범을 구축하는 탐험가이며 정복자이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복장을 도입하고 일탈 행동의 방법을 강구하고, 새로운 폭력 방법을 실험한다. 이러한 실험 행동이 긴장을 가져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 역시 안정 추구와도 관련이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행동규범을 만들어냄으로써 학교 혹은 전체 사회의 규범을 깨는 동시에 그들만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보통의 학생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행동은 기존의 규범을 깨는 용기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실 보통 학생들에게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에 이제 용감한(?) 불량 학생은 우상이 된다. 우상화가 이루어질수록 불량 학생들의 성취감은 증가하며 그들의 권력은 교사의 권력을 능가하게 된다. 만약 보통 학생들의 우상이 될만한 다른 대상(즉, 여가 활동)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학교 내 불량 학생의 우상화는 줄어들 것이다.
우상화의 다른 축은 바로 모범생인데, 규범에 순종하면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거의 초인적인 수준으로 인식된다.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규범을 깨지 않으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모범생의 생활은 보통 학생들의 그것과 다르다. 보통 학생들에게 있어서 극단적인 모범생은 자신들의 능력 이상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부러운 존재일 뿐이다. 보통의 학생들을 제대로 관찰하면, 그들이 앞에서 말한 불량 학생의 행동거지를 모방할 뿐 아니라 최고의 모범생을 모방하는 행동도 볼 수 있다. 공부하는 방법을 따르기도 하고 그들이 가는 학원에 등록하기도 하고, 그들의 노트를 훔쳐보기도 한다. 이것은 곧 선의 축의 발동이다. 모호한 수준의 학생들은 여전히 선과 악의 두 축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왕따

왕따를 하거나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은 대개 반규범 행동의 일선에 서 있지도 못하고 완벽하게 모범적이지도 못한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다. 사실 왕따 행동은 사회적인 수준에서 보면 반사회적인 범죄로 인식되지만 행위 당사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놀이에 불과하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상처를 입지만 왕따를 하는 학생은 그것을 통해 정복과 성취감을 느끼고, ‘동료를 괴롭혀선 안 된다’는 기성 세대의 규범을 깨는 일탈의 즐거움을 얻는다.
[PAGE BREAK]이것은 앞에서 말한 악의 축이다. 사실 유심히 보면, 왕따 행동 같은 반규범 행동에도 그들만의 일정한 규칙이 있다. 괴롭히더라도 특정한 부위를 때려선 안 된다거나 특정한 시간에만 괴롭힌다거나 일정한 범주 속의 아이들만 괴롭힌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부 규칙을 따르는 것은 곧 한정된 안정추구의 결과이다. 왕따 현상에서 안정추구 기제가 작용하는 과정은 스스로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동료를 왕따시키는 데 동참하는 행동이다. 많은 왕따 행동은 바로 불안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로부터 출발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준거 집단의 규범을 따름으로써 행위자 나름의 선(善)의 축을 구축하는 것이다.  
만약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여가 기회, 즉 운동과 여행 같은 일상 탈출의 기회가 충분하다면 최적 각성을 경험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에 왕따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악의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여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여름 월드컵 기간에 왕따 사고가 줄어든 것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거리 응원을 통하여 일상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도로 점거를 하였고, 소리를 질렀고, 빨간 옷으로 치장하였다. 수업에 충실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허용이 되었고, 입시 때문에 참고 있었던 축구를 해도 받아줄 수 있었다.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변화가 있는 일탈 생활이 가능했다. 결국, 왕따라는 반규범 행동은 이 사회의 학교 제도와 가족 문화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여가 범주일 뿐인 것이다.

경쟁의 원리  

사실, 왕따 현상을 행위자 나름의 여가 행동으로 이해한다면 왕따를 통해 실현하는 이중적 가치(dual values)와 지각하는 심리적 체험은 학생들의 다른 여가 행동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탈규범, 정복, 성취, 파괴 등과 더불어 아이들의 여가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가 특징은 그것이 게임 지향적(game oriented)이라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왕따 행동에서도 누가 더 지능적으로 많이 괴롭히는가 하는 것이 경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만큼 행위자에게 그 행동은 놀이적이다. 이러한 요소는 곧 경쟁의 욕구 혹은 원리로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경쟁은 운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여가 행동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경쟁을 한다. 누구의 머리카락이 더 센가를 가지고 비교놀이를 하기도 하고, 누구 가슴이 더 넓은가를 가지고 싸우기도 한다. 심지어는 누구 책에 더 많은 밑줄이 그어졌는가를 내기하고, 누구 주먹이 더 센가를 가지고 비교를 한다. 어쩌면 경쟁의 원리를 모든 동물이 지니고 있는 욕구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여가 활동을 사례로 들어보자. 인터넷의 주요 통신 수단이 되면서 머드 게임은 이제 청소년을 지배하는 여가 활동이라고 해도 무난하다. 머드 게임은 경쟁의 원리가 가장 세련되게 실현되는 장이다. 상상 속의 무기를 사용하여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러한 능력을 통하여 일상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가상의 성취 경험을 이루어낼 수 있다. 실제에서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가상세계에서는 강한 존재로 인식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게임 상에서는 상대를 잔혹하게 죽일 수도, 무기를 탈취할 수도 있고, 그래서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 경쟁의 세계에서 우뚝 선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의 욕구가 청소년의 다른 여가 행동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여가 행동을 보면, 혼자서 하는 여가는 거의 없다. 혼자서 수영을 하거나, 혼자서 등산을 하는 아이들도 없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지 혼자서 조깅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사색을 즐기는 아이들도 거의 없다. 설사 혼자서 바둑 책을 보더라도 그것 역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준비일 뿐이다. 아이들의 모든 여가에서 경쟁은 거의 핵심적이며 공통적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지면 다른 종목이나 방법 혹은 대상을 찾아서 경쟁 우위에 서고 싶어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여가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경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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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집

학교에서는 불량한 학생이라고 해도 집에서는 착한 아이들이 많다. 부모들의 눈에는 예의바르고 효성이 있으며 형제간 우애를 지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반대로 집에서는 늘 반항적이고 예의 없는 아이들도 학교에서는 똑똑하며 모범적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많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두 범주에 속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각기 다른 심리적 기제를 작용시키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학교에서나 집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언제나 모범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성인들 역시 그러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인생의 한 축, 어느 부분에서는 (그것이 상상의 세계일지라도) 일탈적이다.
가령, 누구누구는 집안환경이 불우해서 불량 청소년이 되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또한 누구누구는 유복한 집안인데도 불량한 학생이 되었다는 말도 한다. 어느 말이 맞는 것일까? 최적 각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변화 추구라는 심리적 기제로 이해하면 둘 다 맞는 말이다. 만약 집안에서 청소년의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 줄 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면 경제적 환경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들여다 보라. 그런 학생들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심성이 착한 아이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줄 집안 환경이라면, 만약 아이들의 변화 욕구를 수용하는 여가 문화가 형성되었다면, 이 시대의 불량 학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가 레퍼토리

앞에서 두 가지 기제의 작용을 통하여 우상화나 왕따가 여가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넘치는 변화 욕구를 담아내는 여가 문화가 존재한다면 불량한 여가 행동은 줄어들 수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여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첩경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어느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의 범위를 ‘여가 레퍼토리’라고 한다. 여가 레퍼토리는 아동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청소년기에 급격하게 늘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미 말한 변화욕구가 가장 강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가 지나면 대개의 여가 범위는 한정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가 레퍼토리는 줄어들고 여가 종류 역시 제한된다. 그러므로 청소년기에 다양한 종류 여가 기회에 노출되는 것은 개인의 즐거운 인생을 위해 중요하다. 그래서 청소년에게 특히 여가 교육이 필요하며 개인의 심신을 증진시켜주는 여가 활동에 노출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넘치는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향후 성인이 되었을 때 보다 즐거운 여가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부만을 강조하지 않고 운동이나 음악, 토론과 같은 각종 ‘특활’의 기회가 보다 많아진다면 교내외에서 이루어지는 불량의 분위기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특활이 여가 행동으로서 곧 일탈 경험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PAGE BREAK]
소외와 여가

여가 레퍼토리가 한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은 바로 소외이다. 여가 레퍼토리가 확장되는 시기인 청소년 시절, 사회에서 여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청소년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스스로 새로운 여가 활동을 탐색한다. 이 때 여가 탐색은 대개 사회에서 허용하지 않은 형식의 반사회적인 것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사회에서 소외당한 느낌을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보는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 일탈은 거의 소외를 탈출하기 위한 여가 탐색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새로운 여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집단혼숙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PC방에서 살다시피 하기도 하고, 무작정 가출을 하기도 하며, 툭하면 패거리를 흉내내기도 한다. 사회 수준에서 보면 이러한 행동은 일탈행동이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여가 행동일 뿐이다. 소외로부터 시작하는 여가 활동은 곧 사회화의 문제를 야기한다.

여가 사회화

사실 여가의 기능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대두되는 주제는 바로 사회화이다. 여가 사회화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하나는 여가를 통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태도, 지식을 배운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해당 여가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을 배운다는 것이다. 전자는 여가를 통한 사회화(socialization through leisure)라고 하고 후자를 여가 수행 사회화(socialization into leisure)라고 한다. 여가를 통한 사회화는 공통체 구성원의 규범의식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고 후자는 개인의 충만한 삶을 위한 전제 조건(즉, 여가 레퍼토리)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청소년기에 여가를 통한 사회화의 가능성은 팀으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여가 활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이지만, 어린이 야구 클럽(little baseball league)이 오늘날 많은 미국인의 규범이식을 배양하는데 공헌했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어떤 사회심리학자는 미국 전역에서 중산층 가정의 서로 모르는 13세 전후 아이들을 캠프에 참여시킨 상태에서 재미있는 현장실험을 수행하였는데, 공통체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자발적인 규범을 만들어내고 리더를 정하고 최상의 결과물이 나오도록 협동한다는 결과를 발견하였다. 사실 모든 놀이 형태의 여가는 한 가지 이상의 규칙을 지닌다. 그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놀이는 성사될 수가 없다. 물론 더 나은 공정성을 위해 새로운 규칙을 집단 동의에 의해 발전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놀이 경험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규범의식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여가수행 사회화’ 역시 매우 본능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사회에서 여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여가 생활을 만들어 간다. 그들의 각종 일탈 행동은 여가수행 사회화의 일부일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하나의 여가 수행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곧 안정추구 욕구의 발현이다. 새로운 여가를 시작하는 것은, 그것이 일탈 행동일지라도, 변화에 대한 욕구의 발현이며, 그 여가 활동에 완전히 적응하면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곧 그들만의 새로운 여가를 탐색한다. 다시 말해 인지발단 심리학자인 피아제(J. Piaget)가 말하는 변화와 안정의 변증법적 발전이 개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여러 종류의 청소년 일탈 여가는 이러한 심리적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실현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바람직한 여가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여가 활동을 말하기 위해서는 여가를 통하여 개인이 느끼는 재미의 본질을 고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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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가 vs 나쁜 여가 : 재미의 두 가지

사실 모든 여가는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설사 우리가 낮잠을 잔다고 해도 편안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준다. 넓은 의미에서 재미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심리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즐거움으로서 ‘pleasure’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에너지를 구축하는 즐거움으로서 ‘enjoyment’라고 한다. ‘pleasure’를 가져오는 여가는 TV 시청, 섹스, 수다, 수면, 도박, 술, 약물과 같은 것들이고, ‘enjoyment’를 제공하는 여가는 독서, 등산, 운동, 토론 등등이다. 가령, TV 시청을 할 때 우리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많이 한다고 해서 TV에 대한 지식이 생기거나 능력이 증진되는 것은 아니다. 술이나 약물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심신이 황폐해지기도 한다. 장기적으로 보아서 결코 개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여가  활동인 셈이다. 반면에, 등산이나 수영 같은 운동, 토론, 독서와 같은 여가 활동들은 개인의 정서적, 인지적, 신체적 능력의 증진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것들은 하면 할수록 수행능력이 좋아지는 것들이며 동시에 재미를 동반한다. 만약 우리가 어린 시절에 독서의 즐거움을 경험하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독서는 주요 여가 활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독서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기초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곧 어린 시절 여가 레퍼토리를 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알려준다. 나아가 주5일 수업을 시행할 때 학교의 과외 교육을 통하여 청소년에게 ‘enjoyment’를 동반하는 여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주5일 수업과 여가 교육

청소년기에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전인교육을 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의 부모와 교육 담당자는 동의한다. 그리고 교과 수업을 통하여 전인교육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여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인생의 행복을 구하는 길이 좋은 학력, 많은 돈, 그리고 전문직업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면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국가 혹은 정부의 이념이 복지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라면 국민 개개인의 여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보았던 것처럼 장기적인 준비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주5일 수업 제도는 개개인의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 막연히 주말 시간을 제공하는 선에서 국가의 책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보다 필요한 부분은 장기적으로 개개인의 여가 레퍼토리를 넓혀주기 위한 아동기의 여가 교육이 필요하고, 경쟁의 욕구를 실현시켜줄 수 있고, ‘pleasure’ 대신에 ‘enjoyment’를 느낄 수 있는 여가 목록을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 과정은 국가, 학교, 부모, 그리고 청소년 자신 모두의 책임이다. 예컨대 매주 토요일은 여가 교육의 날로 정하고, ‘초한지’나 ‘삼국지’를 읽고 토론에 참여하게 하는 방식의 여가 교육도 가능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여가 정책을 펴고 여가 교육을 하자’라는 구호만으로는 실현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서울대’만을 바라보고 대학 입시에 매달려 있는 중등 교육의 학교 현실을 고려할 때, 여가 교육을 적용할 수 있는 학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가 교육이니 삶의 질이니 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서울대 해체와 같은 획기적인 대학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 나라 청소년의 여가 교육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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