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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석호의 겨울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옛 시인 김동명은 강릉이 고향이다. 강릉은 호수를 3개씩이나 갖고 있는 호반의 도시이다. 강릉에서 고성까지 7번 국도를 타고 가노라면 곳곳에서 크고 작은 호수들을 만난다. 강릉 남쪽에서부터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풍호, 경포호, 향호, 매호, 청초호, 영랑호, 광포호, 송지호, 화진호 등 무려 9개나 남아있다. 이 호수들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석호(潟湖·Lagoon)로 세계적으로 그 예가 많지 않아서 자연사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매우 가치가 높다.

김재일 두레생태기행 회장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와 생긴 호수

 석호란 빙하기가 끝난 후 불어난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들어와 생긴 호수를 말한다. 석호가 상당한 소금기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석호가 산에서 내려온 민물로만 채워진 호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개의 석호는 하구에 모래언덕을 갖고 있다. 이 모래들은 상류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세찬 바닷바람과 거친 파도에 의해 더 이상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고 호수와 바다 사이에 쌓인 것이다. 쌓인 모래언덕은 자연스레 석호의 제방 둑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기행은 동해안의 겨울 석호를 찾아 떠난다.
 강릉 경포호는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물결이 잔잔하여 모래를 헤아리로다"라고 예찬한 호수이다. 경포대 해수욕장에 이어져 있는 경포호는 오대산 동쪽 기슭의 실핏줄 같은 개울물과 바닷물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호수다. 거울같이 맑고 깨끗해서 옛 사람들은 경호(鏡湖)라고 불렀지만 그 사이에 많이도 변했다. 1960년대의 호안공사와 1970년대의 유원지 개발로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26만여평만 남아있다. 관광지 개발로 주위의 경관도 크게 망가졌다. 한때는 생태계 원리를 무시한 채 호수 밑바닥을 대대적으로 준설하는 바람에 엄청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해마다 겨울이면 철새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어서 눈물겹도록 고맙다.
 경포호 바깥은 모래 해수욕장이다. 모래 해변을 지질학상으로 사빈(砂濱·sandy beach)이라고 한다. 동해안의 지질구조는 강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크게 다르다. 정동진-동해-삼척-울진을 잇는 남쪽 해안에는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진 해안단구(海岸段丘)의 기암절벽들이 많고 양양-속초-고성을 잇는 북쪽 해안은 화강암이 발달해서 사빈이 상대적으로 많다. 석호가 강릉 북쪽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도 바로 그러한 사빈이 해안에 넓게 형성되어 있어서 그것이 석호의 제방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경포호의 북변은 금강송 숲이 에워싸고 동쪽 바닷가는 해송 숲이 에워싸고 있다. 금강송 숲은 경관·정서적 가치가 높고 해송 숲은 생태적 가치가 높다. 생태기행이라 해도 경포에 와서 꼭 보고가야 하는 문화유산이 있다. 호수 옆 강문마을의 솟대가 바로 그것이다. 진또배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 솟대는 자연을 신앙으로 섬긴 우리 조상들의 삶의 한 흔적이다.

봄이면 연곡천으로 황어 떼 몰려와

 강릉을 지나 주문진을 저만큼 앞두면 오대산 송천계곡에서 발원한 연곡천을 만난다. 연곡천 민물에는 버들개, 꾹저구, 붕어, 메기, 민물새우, 다슬기 등이 살고 있다. 연곡천과 바다를 오르내리는 강오름 물고기들로는 황어, 칠성장어, 은어, 가시고기, 참게, 송어 등이 있다. 특히 연곡천은 황어들의 고향이다. 봄이면 황어들이 바다로부터 시커멓게 떼지어 올라와 알을 낳고는 바다로 돌아간다. 황어는 어른들 팔뚝보다 조금 작지만 민물고기로서는 대형에 속한다. 황어는 보릿고개가 힘겨웠던 이곳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은혜로운 고기였다. 옛 사람들이 그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지어놓은 '황어말' '황어대'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주문진을 지나면 곧바로 향호를 만난다. 해발 1012미터의 철갑산 기슭에서 내려온 골짝물이 바닷물과 합방하는 석호이다. 향호는 50만 평방미터로 경포호의 2배나 된다. 지금은 중장비 소리가 멈추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질 좋은 규사를 긁느라고 호수 바닥을 뒤집어놓았다. 그 바람에 호수의 수질이 크게 오염되어 폐호(廢湖) 직전까지 갔다. 그래서 지금 향호에는 2급수 어종인 빙어가 3급수 어종인 잉어, 붕어, 가물치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청둥오리를 비롯한 잡식성 오리들이 물위에 한가로이 떠 있고 갈대밭 쪽에는 중백로 몇 마리가 죽은 듯이 서서 논병아리의 잠수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향호를 지나면 강원도 양양 땅이다.
 매호는 양양에서 처음 만나는 석호이다. 동해안 석호의 평균 염도는 19 PPT 안팎이다. 35 PPT인 바닷물 염도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일반 담수호에 비하면 소금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석호를 일명 '소금호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매호는 염도가 낮아서 습지식물대가 비교적 넓게 퍼져 있다. 숭어, 은어, 가시고기와 같은 회유성 물고기들이 봄이면 바다에서 올라온다. 그밖에 붕어, 빙어, 검정망둥어를 비롯한 민물어종과 재첩, 빗조개, 중새우, 갯지렁이도 이곳의 가족들이다. 철새들은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는 상류쪽 습지에도 철새들이 많이 내려앉는다. 한때 호수 위를 하얗게 덮었던 고니는 사라지고 지금은 주로 오리류들이 터주대감 자리를 지키고 있다.[PAGE BREAK]오염으로 호수 생태계 크게 망가져

 속초시내로 들어가면 청초호와 영랑호를 만난다. 청초호는 항만으로 활용되고 있는 유일한 석호로 500톤급 선박이 외해를 드나드는 속초항의 내항이다. 청초호는 바닷물 유입량이 많아 염분농도도 동해안 석호 가운데 가장 높다. 항만 주위의 각종 산업시설과 상가로 해서 수질이 오염되어 호수로서의 생태적 기능이 일찍이 포기된 호수이다. 36만평이나 되는 영랑호는 아파트, 빌딩, 콘도 등으로 목이 죄여 있다. 영랑호는 수질 오염으로 낚시꾼들의 발걸음마저 끊긴지 오래다. 영랑호를 지나면 고성땅에서 봉포호를 만난다. 석호는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기수호이기 때문에 담수호에 비해 수생식물은 적지만 플랑크톤이 많아서 조류와 어류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석호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하천의 퇴적물이 쌓이면서 깊이도 얕아지고 넓이도 점차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이곳 봉포호는 위쪽에 자리한 축사에서 흘러드는 폐수로 수질이 떨어지고 최근 호숫가에 대학 캠퍼스가 들어서면서 환경이 크게 변화하여 호수 생태계가 말이 아니다. 아마 동해안 석호 가운데 생태계가 가장 크게 망가진 호수일 것이다.
 7번 국도와 줄곧 함께 달려온 바닷가의 모래밭은 청간정을 지나서도 이어진다. 동해안의 사빈은 거의가 해수욕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속초에서 송지호에 이르는 구간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군사보호지역이 바닷가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군사보호지역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인적이 끊어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 수달이 해안습지에서 목격되고 올해는 독수리 떼까지 내려앉았다. 독수리는 우리 나라에서도 임진강과 낙동강 하구에서나 어쩌다 눈에 희귀종이다. 초겨울이면 해안선을 따라 독수리가 남하한다는 조사보고서가 있긴 하지만 흔한 일은 분명 아니다. 송지호는 간성읍을 10여 킬로미터 앞둔 바닷가에 자리한 석호다. 둘레 4킬로미터에 면적이 20만평이라면 다른 석호에 비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생태계는 비교적 튼실하다. 주변에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없고 울창한 송림과 습지식물이 양호한 수질을 유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닥의 모래는 재첩이 서식할 정도로 깨끗하고 수심도 비교적 일정해서 순담과 같은 희귀한 수초도 관찰되고 있다. 재첩과 순담은 이웃한 왕곡마을 사람들의 삶을 기름지게 해주고 있다. 바닷물을 타고 숭어, 황어, 뱅어, 은어, 살감생이, 망둥어, 학공치와 같은 다양한 기수어종들이 들어와서 붕어, 메기, 가물치와 같은 민물어종들과 궁합을 잘 맞추고 있다.

염도가 높은 화진호는 '백조의 호수'

 고성 산불 이후 송지호도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바다와 호수를 이어주는 물길을 인공적으로 파서 송지호를 간신히 살려냈다. 생태계의 숨통과도 같은 물길은 시들어가던 호안의 갈대밭을 살리고 사막으로 변해가던 해안습지대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다양한 바닷고기들을 호수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디 그 뿐인가, 난데없는 독수리가 날아드는가 하면 물길의 물고기들을 쫓아 수달이 바닷가로 내려와 설치고 다닌다. 특히 내륙의 깊고 맑은 하천에서만 볼 수 있는 수달이 해안습지와 모래밭에까지 나돌아다니는 것은 이만저만 반갑고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화진호는 거진읍에서 북쪽으로 불과 4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둘레 16킬로미터에 72만평에 이르는 화진호는 동해안 석호 가운데 가장 넓다. 드넓은 호수 주위로 울창한 해송과 육송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생태와 풍광이 그만이다. 물억새와 갈대가 숲을 이루는 여름날 호안 주변에는 부들, 좀보리사초, 털질경이, 눈양지꽃, 갯완두 등이 습지식물대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화진호의 수질을 정화시켜주는 필터 역할뿐만 아니라 여름철새들에게 번식지를, 겨울철새들에게 거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보기 드문 참게도 그 갈대 숲 주위에 서식하고 있다.
 화진호는 다른 석호에서는 흔하지 않은 전어와 돔 종류까지 들어와 머물 정도로 염도가 높다. 높은 염도로 해서 웬만한 추위에도 호수가 잘 얼지 않아서 고니를 선두로 다양한 겨울철새들이 내려앉는다. 게중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새, 장다리물떼새, 저어새, 제비갈매기 등이 함께 하고 있다. 특히 화진호는 동해안에서 가장 많은 고니가 도래하는 곳이다. 때로는 200여 마리까지 내려앉아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 개체수로는 큰고니가 가장 많지만 고니와 혹고니도 가끔 눈에 띈다.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는 몸이 희다고 해서 일찍이 '백조'라고 불린 새이다. 화진호 바깥은 사빈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다. 사빈은 휴전선을 넘어 고성의 감호, 통천 동포호와 천아호와 같은 아름다운 석호들을 연이어 만들어 놓았다.

▣ 참고
강릉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강릉에서 10분마다 뜨는 주문진-양양-속초-간성-거진행 버스노선을 이용하면 굳이 승용차를 끌고 가지 않아도 된다. 숙소와 식당은 강릉-속초를 잇는 관광벨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연말연시 며칠을 제외하면 겨울은 온통 비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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