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는 유난스럽게도 경쾌하다. 우리 조상 님들께서 오죽했으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말했겠는가. 어느 때는 4교시쯤 되면 급식소에서 풍겨 나오는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시켜 학습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오늘도 배속에서 쪼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청소를 제대로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우리 반 아이들을 앞세우고 발걸음도 가볍게 급식소로 갔다. 먼저 온 저학년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도 이런 때는 다 예뻐 보인다.
급식소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니 영양사에게 주의를 받고 있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보나마나 식판에 음식을 남긴 아이가 영양사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이렇게 남겨서는 안 된다느니, 음식은 고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느니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도무지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다 먹으라고 하니 주의를 받는 아이는 실로 죽을상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전임지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우리 반 여학생 하나가 돼지고기가 나오는 날이면 점심을 굶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 학생은 돼지고기가 나오는 날에는 아예 급식소에 가지 않는다. 이유는 돼지고기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고 온몸이 가려워서 못산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배식구에서는 조리원 아줌마들이 학생들의 연령이나 체격 또는 음식에 대한 기호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거의 비슷한 양을 일률적으로 배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양사는 영양사대로 모든 학생들에게 음식은 절대 남겨서는 인된다고 강조한다. 그 여학생뿐만이 아니다. 다른 아이는 계란 부침이나 닭고기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하지 않고 식판에 퍼 준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묻고싶다.
음식의 양도 문제이다. 아이들마다 섭취량이 다른 게 사실인데 거의 같은 양으로 주면서 모든 아이들에게 음식을 다 먹어야한다고 강요한다면 이 또한 죄악이 아닐지? 일률적으로 주는 음식이 어떤 아이에게는 많아서 걱정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적어서 불만이다. 음식 맛도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게 현실이다. 조리원이 짜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가 만든 음식은 대체로 짜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조리원이라면 그가 만든 음식은 대체로 매운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싱겁게 먹는 습관을 갖은 아이는 짠 음식이 싫고, 짜게 먹는 습관을 갖은 아이는 싱거운 음식이 싫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헤쳐나갈 방법은 무엇인가? 필자의 의견을 제시한다.
첫째, 음식을 뷔페식으로 나열하고 배식은 셀프로 한다. 이 말이 거창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음식을 뷔폐식으로 진열해 놓고 스스로 음식을 원하는 만큼 가져가게 하는 것이다. 혹자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음식 종류마다 고학년 도우미를 세워서 도와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둘째, 음식을 싱겁게 만들어 놓고 간을 맞출 수 있도록 소금, 간장, 고춧가루 등 조미료와 향신료를 준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짜게 먹는 사람은 짜게, 맵게 먹는 사람은 맵게, 싱겁게 먹는 사람은 싱겁게 자기의 입맛에 맞게 먹도록 배려한다.
셋째, 식사지도는 이해와 설득으로 한다. 뷔폐식 식사는 시행 초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면 자기의 양만큼 자기가 좋아하는 종류를 가져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너무 짜게 먹거나 너무 맵게 먹는 아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가져가는 아이는 결국 건강을 헤치거나 편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인데 이 때 지도교사나 영양사가 역량을 발휘해서 편식을 하지 않도록 식사 지도를 해야 한다.
즉 너무 짜게 먹거나 맵게 먹으면 왜 건강에 해로운지, 편식은 왜 몸에 좋지 않은지,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어떤 점이 좋은지를 아이에게 이해시키고 설득 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지도를 했음에도 어떤 음식에 대해서 끝까지 거부 반응을 나타내거나 신체적으로 이상이 올 때는 의사와 상담을 하여 심리적 치료나 의과적인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 식사지도 역시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식사지도가 어려운 것이고 이 어려운 일들을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할 때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가서 억지로 물을 먹인다면 그 말이 고분고분하게 물을 먹겠는가. 우리 아이들의 식사지도 역시 강요나 지시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도할 때 지겨운 식사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기다려지는 식사시간이 될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식사시간을 잘 활용하면 생활지도까지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즐거운 식사는 아이들의 몸을 튼튼히 하고 그 튼튼한 몸 속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