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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구조조정의 지향점과 과제

지금의 구조조정 노력들은 지나치게 재정적 관점, 경영 효율성 관점에 경사(傾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나아가 대학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적·생산적 구조조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홍덕률 | 대구대 교수·사회학



1. 바빠지는 대학구조조정 발걸음

대학가에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구조조정은 부실 기업이나 부실 은행, 부실 공기업 등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대학들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말에는 경남의 두 국립대학인 경상대와 창원대가 통합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전에도 광주·전남, 대구·경북, 충청, 강원권별로 국립대학간 연합대학 체제 구축 계획이 발표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과거에 발표된 계획들이 대부분 교육부 눈치를 본 원론적인 선언이었지만, 창원대와 경상대간 통합 계획에는 진정성이 엿보인다. 과거의 예들이 대부분 흐지부지됐지만 이번에 발표된 경남의 두 국립대 통합계획안은 실제로 추진될 것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최근에는 신입생 정원을 확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 서울대까지 2005학년도 학부생 입학 정원을 14.6% 감축한다고 발표하였다. 신입생 정원 감축을 놓고 고민해 오던 많은 대학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학벌구조 타파’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불거진 서울대학교 학부 폐지론도 대학가의 구조조정을 부추기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구조조정은 국립대학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구조조정은 사립대학들에서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몇 년째 정원 미달을 겪고 있는 지방 사립대학들에게 구조조정은 사실상 발등의 불이다. 이미 대학간 통폐합이라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사례도 있다. 같은 재단의 대학이긴 하지만 4년제인 영산대와 2년제인 부산의 성심외국어대 2003년에 통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외에도 조선대를 비롯한 광주·전남의 16개 사립대학들은 ‘학과 등의 구조조정 협약’을 체결한 상태며, 대구대를 비롯한 대구권의 3개 사립대학은 연합컨소시엄 형성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간의 거대 프로젝트는 사실 성사되기가 쉽지가 않다. 이미 중도에 포기된 사례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크고 작은 구조조정 노력들은 많은 대학에서 시도되고 있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소위 비인기 학과들을 아예 폐지하고 학생이 몰리는 학과 중심으로 통폐합하는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교수에 대한 업적 평가는 대부분 대학들에서 사실상 정착되었다. 평가 결과는 당연히 승진 심사와 성과급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수직은 더 이상 철밥통이 아니게 변했다. 강의 노트 한 권으로 10년을 우려먹는 지적 태만도 발붙일 수 없게 되었다. 교수 봉급을 줄이거나 명예퇴직을 확대하는 대학들도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학생수가 적다고 집단으로 권고사직 시키는 대학도 있다. 교수를 1년 계약직으로 돌리고 매학기 줄여 가는 대학들도 있다. 봉급도 깎여 생계의 위협에 허덕이는 교수들도 많다.[PAGE BREAK]교수들은 지금 심한 자괴감과 신분 불안의 공포에 떨고 있을 정도다. 이것이 과연 대학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대학은 지금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2. 대학 구조조정의 배경

그와 같은 구조조정이 대학가에 몰아치게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신입생 충원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전국의 대학들이 일렬로 순위가 매겨져 있는 상황에서 고등학교 졸업생 수의 급감은 하순위 대학들부터 차례로 입학정원 미달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았다. 정원 미달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만 열어 놓으면 학생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던 것이 우리 나라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을 설립하고 학생 정원을 늘려서 인가받는 것이 모든 대학들의 거의 최고 경영목표일 정도였다. 정원을 늘려 인가받는 대학이 능력있는 대학으로 치부되었다. 교육부는 대학설립 인가권과 대학정원 조정권만으로도 모든 대학의 흥망을 틀어쥔 하늘같은 상전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다. 대학 서열의 끄트머리에 있는 지방의 전문대학들은 이미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지방마다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전문대학 리스트가 떠돈다. 지방의 4년제 사립대학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대학들이 존폐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비밀리에 매각하겠다고 내놓은 학교들도 있다. 지방의 명문 사립대학과 국립대학들도 몇몇 비인기 학과의 경우는 존폐를 고민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대입에서 4년제 지방대학의 신입생 미충원률은 18.3%에 달했으며, 지방 전문대는 무려 26.3%에 달했다.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곳이 4년제 대학은 7%인 13개대, 전문대는 10%인 16개 대에 달했다. 이와 같은 신입생 충원의 어려움은 앞으로도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는 한 고교 졸업생 수는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원 미달은 곧바로 대학의 재정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사립대학들은 재정의 절대 비중을 학생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의 구조조정을 촉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정원 미달에서 비롯된 재정위기인 것이다.

3.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점

사실 대학의 구조조정은 비단 재정 위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학교육의 정상화와 그를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였다. 대학들마다 조직이 방만한 데다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대 모델을 쫓아 전국의 대부분 대학들이 백화점식 학과 편제를 갖춘 것은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다. 지역사회의 요구나 사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대학의 재정 확보수단으로 학과가 만들어지고 교수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이 짜여졌던 것도 문제였다. 워낙 대학이란 것이 별다른 고민이나 혁신 노력 없이도 장사가 잘됐던 업종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과 교수들조차도 도덕적 해이와 지적 태만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PAGE BREAK]그런 식으로 수십 년을 지내온 결과 우리 나라 대학은 부실과 낮은 경쟁력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2004년 IMD 세계경쟁력연감>에서도 조사 대상 60여 개 국가 중 우리 나라의 대학 경쟁력이 거의 꼴찌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도 기업들은 대학 졸업생들이 대부분 불량품이라고 불만이다. 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의 발전이나 대학의 학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대학의 특성화와 구조조정은 꼭 필요한 조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추진되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에는 그러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지 않다. 오로지 사상 초유의 학생 미달 사태에 쫓겨 허겁지겁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경비 절감’의 관점, ‘재정 효율성’에 대한 고려가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과 방법과 절차를 지배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 그리고 일선에서 대학 구조조정의 칼을 쥐고 흔들어 대는 사학 재단과 대학 본부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서 ‘대학교육의 질’과 ‘지역 혁신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 성장 과정도 지극히 천민적이었지만 지금 와서 학생이 부족하다고 허둥지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모습 또한 천박하기가 이를 데 없다.
당연히 이렇게 교수 신분이 불안해서는 양질의 연구가 불가능하다. 교수들을 엉뚱한 학과에 배치시켜 전공하지도 않은 과목을 강의하게 해서는 양질의 교육도 이루어질 수 없다. 대졸 신규 취업자의 초임 연봉에도 못 미치는 봉급을 받는 교수들이 질높은 연구와 강의에 매진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넌센스다. 대학 교육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연구 여건은 고사하고 최저생계비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그대로 두고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대학, 신분불안과 생계위협에 시달리는 교수들, 2∼3년이 멀다 하고 자기가 속한 학과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학생들, 이래서야 연구든 교육이든 제대로 될까 걱정이 크다.
정원 미달 사태를 재정 위기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대학교육 초미의 과제였던 대학교육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정원 미달 사태를, 학생 대 교수 비율의 축소를 통해 대학교육의 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로 사고하지 않는 상상력의 결여와 교육철학의 부재야말로 대학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팔짱끼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금의 대학 재정위기는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에 지금의 결과를 내다보지 못하고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해 결과적으로 대학의 난립을 초래한 것, 대학에 대한 예산 투입을 늘리지 않은 채 대학에 대한 통제만 유지해 온 것, 부도덕한 사학 재단의 부실경영을 눈감아 주거나 심지어는 그들과 유착해 대학의 경쟁력 추락을 초래한 것 등 모두가 교육인적자원부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작금의 대학 환경 변화에 따른 구조조정의 책임을 대학에, 대학은 다시 교수들에게 책임과 고통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PAGE BREAK]대학의 경쟁력이 지역의 경쟁력이고 국가경쟁력이라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을 늘리고 관심을 높여 가는 것이 먼저이기도 하다. 아울러 경비 절감을 위해서라면 재단 전입금을 늘리거나 행정의 낭비 요인을 줄이는 시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노력들 없이 시장의 요구에 따라 대학의 조직과 학문 편제를 그때그때 뜯어고치는 것은 사실 학문과 고등교육이 갖는 공적 역할과 국가백년대계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4. 대학 구조조정의 바람직한 방향

바람직하기는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 재단과 교수와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자기 책임을 다하면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논의의 초점은 마땅히 재정 위기의 타개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의 질을 제고하는 것과 지역사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것에 모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학 교육의 질을 제고하는데 기여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인적자원과 기술을 개발해 지역혁신과 지역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방식으로의 구조조정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먼저 교육인적자원부는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대학교육의 최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관료적 판단에 의해 주도되어서는 곤란하다. 사학 재단과 전국의 교수단체들도 대학교육의 최저 기준을 마련하는데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최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들은 퇴출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열악한 연구 여건과 부실한 교육 환경을 유지한 채 학생을 모집하는 것은 학생은 물론 지역사회나 국가를 위해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퇴출되는 대학의 공적 자산이 사장(死藏)되지 않도록 인근 대학과의 인수합병을 유도하고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물론 교육의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교육의 질 제고에 힘쓰는 대학들에 대해서는 특단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교육인적자원부는 지금의 대학 위기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위기극복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을 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가 “대학이 자체적인 통·폐합 등을 할 경우 재정 감축액의 2∼3배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약속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교수들의 신분 불안을 최소화하고 대학이 재정 감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어야 대학 통폐합 시도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대학들 역시 스스로를 혁신하고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지역혁신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단지 경영 효율과 재정 절감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기획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로지 경영과 재정 수입을 위해 학과를 만들고 정원을 늘리는데 몰두해 온 재단들이야말로 지금의 대학위기를 초래한 책임자임을 인정하고 솔선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대학경영의 낭비 요인을 줄이고 재단 전입금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대학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부패 요인도 척결해 가야 한다. 밖으로는 재정 위기를 이유로 교육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각종 부도덕한 방법으로 교비를 빼돌려 사욕을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PAGE BREAK]
사립대학 재단과 행정본부가 대학 구조조정의 배타적 주체여서도 곤란하다. 학문의 경쟁력을 높이고 대학 교육이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재편하기 위한 고민이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수와 교수단체가 구조조정의 중요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나 교수단체도 반성하고 혁신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교수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기주의를 척결해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의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학과 이기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학문과 대학과 지역사회와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공적 문제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밥그릇 챙기기와 영역 다툼으로 일관해서는 대학 구조조정의 주체로 설 수 없으며, 그래서는 대학 구조조정이 제대로 방향을 잡아갈 수 없다. 그것은 교수 자신을 위해서도 비극이지만 우리 나라의 학문발전과 지역혁신 그리고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비극일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도 지역혁신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대학의 조직과 편제를 구조조정하려는 대학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역의 대학들끼리 역할 분담을 모색하고 인력과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면서 상생의 틀을 구축해 갈 수 있도록 측면 지원도 해야 한다. 지역의 NGO나 기업계도 지역 대학의 구조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의거해 광역자치단체별로 지역의 NGO와 기업계를 포함해 각계 혁신 주체들이 참여하는 지역혁신협의회가 출범했는데, 그곳에서 그와 같은 논의와 대학간 연계 노력의 틀을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대학 구조조정은 재정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학문의 발전과 지역혁신, 그리고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매우 절박한 과제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조정 노력들은 지나치게 재정적 관점, 경영 효율성 관점에 경사(傾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나아가 대학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적·생산적 구조조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교육인적자원부와 지방정부, 대학 재단과 교수 그리고 지역사회 혁신주체들 모두의 지혜를 모아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구조조정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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