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의 교육은 당혹스런 사회적 질정(叱正)에 대면해 있다. 그것의 요체는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교육을 담당한 사람들은 모두 열악한 교육자로 살아온 가쁜 숨을 잠시 몰아쉬고,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란 말인가.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에 맞게 교수 방법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지식을 전수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써먹을 창의적인 살아있는 내용을 가르치란 것이다. 그리고 구태 의연한 교수 방법을 버리고 교육 수요자의 취향에 맞게, 세상의 문화 코드에 걸맞게 교수법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지금 모든 교육자들이 함께 하는 생생한 경험은 이러한 변화에의 강요이다. 그리고 이들은 무경쟁과 비효율의 지대에 안주해 있다는, 그리하여 세상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낙후되어 있다는 질시와 의혹의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교육자가 시대적 존모와 격려의 대상이 아닌 개혁의 대상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우울한 풍정이 변화에 강박된 시대의 그림자라고 항변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진정 그렇게 우리의 교육과 그것을 담당한 계층들은 변화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어야 하는 것인가.
파괴에의 열정, 저개발의 열등감, 그리고 속도에의 압박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사적 환경을 특징짓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것들을 낡은 것이라 하여 파괴해야 한다. 파괴되지 않는 과거의 유제는 문명 주변에 방치된 것으로 저개발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파괴에의 경쟁에서 자유로운 지역과 사람은 적어도 세계사적 문명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결코 일탈할 수 없는 이 경쟁의 대오에 선 사람들은 보다 더 빠르게 자신에 속한 것들을 스스로 파괴해야만 하는 고약한 속도에 휩쓸려버린다. 사람들은 탄타로스의 갈증에 사로잡혀 무한 질주의 궤도를 살아간다. 간혹 누군가는 느리게 살 것과 욕망을 비울 것을 말하지만, 그것이 피로한 영혼을 치유할 실존의 삶으로 파고들지는 못한다.
시대의 이념이 교육의 목적론적 원천일 터인즉, 이런 시대의 조류를 외면하면 교육계는 존립할 수 없다. 그러니 교육도 변화의 속도를 강요하는 시대의 흐름을 주시해야 한다. 교육 담당자에게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자기 변신에의 요구는 교수 방법이다. 멀티미디어 체제를 이용한 수업 방식은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가장 광범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이미 우리의 교육 영역에 깊고도 광범위하게 산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 활용 교육은 학습 양식, 인지 양식, 집중력, 읽기속도 등의 개인차를 고려한 개별화 학습에 적당할 뿐만 아니라 학습자의 이해도 측정에 용이하다는 적극적 의의가 부여되고 있다.
매체 환경의 변화가 교육 수요자의 지적 수용과 의사소통 방식을 바꾸어 놓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는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교수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교육 영역에 이러한 방식이 적용될 수는 없다. 매체에 의존하는 교육은 오히려 선생과 학생의 소통을 획일화시키고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기능 전수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가령 전자칠판에 의한 수업을 보면, 선생과 학생은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일이 없이 삭막하게 지식을 교환한다. 이러한 매체교육은 무엇보다도 교육의 아우라(Aura)적 권위를 소거해 버린다. 교육은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는 장이라 할지라도 선생과 학생의 교감에 의해 무수하게 다른 상황을 연출하면서 이루어진다. 선생과 학생은 서로의 눈과 몸을 보면서 자신의 가장 깊은 마음을 열어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PAGE BREAK]교육에 있어, 교수 방법에 있어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육성언어의 열정적 원리이다. 육성 언어는 생생한 개념과 강력한 신념으로 독립된 개인적 가치를 지니고 전달된다. 이는 어떤 위대한 책이나 암기된 지식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정신력을 지닌다. 말에 의한, 인격에 의한 만남만이 가르침과 배움의 분출하는 정열을 느낄 수 있다. 매체는 육성 언어를 간접화하든지 소통 자체를 차단시킨다. 그것은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는 수업의 상황적 조건을 유연하게 성찰하지 못한다. 그것은 규격화된 내용과 선조적 시간에 선생과 학생을 가두어버린다. 인격이 배제된 이러한 교육은 특수 영역이나 보조적 기능으로 국한되어야지 그것이 교수 방법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변해야 할 것은 육성 언어의 열정적 원리가 제대로 작용할 양질의 교육 환경이다.
말이 있어 교육이 비롯되었다. 말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교감을 불러오고 돌발적인 교실 상황을 자연스럽게 조율한다. 사이버 교육이나 방송교육은 사회교육이나 직업교육 같은 비제도적 교육이나 정규 수업의 보조 수단이어야지, 그것이 학교교육의 주도적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교육은 인격과 인격이 만나, 알려주려는 열정과 알려는 열정이 만나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육성언어의 교육적 힘은 세상에 무수하게 많은 선생님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일깨운다. 그러니 진정으로 교육 담당자가 변해야 할 것은 가르치려는 열정에 몰입하는 것이며, 가르칠 전문 지식을 확충하는 것이며, 그리고 도덕적 인격을 가다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