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텔의 화살 앞에 선 아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아버지를 믿었을까? 아버지의 ‘실력’을 믿었을까? 합스부르그 왕가의 게슬러 제독의 강압 때문만이 아니라 아버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아들은 아버지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자신 있게 아버지의 화살 앞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준다.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이 사회는 전문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은 물론 ‘자본’이다. 즉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와 마이너리고 선수의 대우는 극과 극이다. 이것은 바로 실력의 차이 곧 돈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돈의 차이가 우리 사회생활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전문가, 즉 ‘최고’가 되라고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최고에는 최고의 대가 따른다 그는 뉴스를 잘하고 싶어 선배들의 뉴스 원고를 죄다 모아 집에서 밤마다, 새벽마다 큰 소리로 연습했다. 3시간 정도 연습하다보면 머리가 어찔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1년만에 아나운서실 차장 정도 되어야 맡는 오후 1시 뉴스를 맡기더군요.’(조선일보 2003년 9월 8일). 아나운서 김동건의 인터뷰 기사이다.
‘석봉 토스트, 연봉 1억 신화’를 펴낸 김석봉은 ‘로드 비즈니스’의 생명은 청결이라는 점에 착안해 흰 가운을 입기 시작했고, 토스트 만드는 손으로 돈을 건네받는 방식 대신 손님들이 직접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철제 그릴 판을 스테인레스로 바꿨으며 두루마리 휴지 대신 최고급 티슈 화장지로 손님이 손을 닦을 수 있게 했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넸으며, 재료는 저칼로리 위주의 최고급으로만 선택했고 조미료와 설탕은 전혀 쓰지 않았다.(경향신문 2004년 7월 19일). 이렇게 해서 연봉 1억, 15개 체인점의 창업주가 된 것이다.
그냥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남다른 노력이 있는 법이다. 최고에는 최고의 대가가 따르는 법. 그 기쁨을 맛보기 위해 최선의 노력들이 이어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논리인 것 같다.
그런데 교사들은 어떤가? 다른 직종에서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정신적·물질적 보상이 뒤따르지만, 교사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 아쉽기는 하다.
‘교직’은 ‘성직’이라고 한다. 성직자가 주어지는 보수와 상관 없이 신앙에 헌신해야 하는 것처럼 교사도 보수와 상관 없이 교육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교계에서 목회자를 비판할 때 ‘삯군 목자’라는 말을 쓰는데 어떤 목사는 ‘삯군목자라도 되자’고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이다. 교사도 월급이 적다고 하지만 가끔 내가 받은 월급만큼 일을 하고 있는가를 반성해 본다. 가령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자신의 책임보다는 학생들의 수업 의욕이 없음만을 탓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기업체 연수를 맡고 있는 강사는 연수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강의 기법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내용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난 학생들이 졸아도 월급은 나오니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최고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 나중에 졸업생들로부터 ‘우리 선생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셨어’라는 소리를 최고의 보상으로 생각하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존경받는 교사가 되는 길 학생들은 어떤 교사를 존경하는 교사로 생각할까? 수업 잘하는 교사, 상담 많이 해주는 교사를 꼽을 수 있다. 당연히 우리는 수업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과의 대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최소한 이것만으로도 출근 때부터 퇴근 때까지 잠시라도 한눈 팔 시간이 없을 테지만 수업과 상담 외에 하나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전공 외에 특기 이상의 취미를 하나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근무 시간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 어려움을 수행해야 하기에 교사는 퇴근 후에도 ‘선생님!’으로 불리는가 보다.
잠시 자본주의 논리에 맞추어 교사의 길을 생각해 보았다. 즉 최소한 월급값이라도 하자는 논리로 축소시켰지만 한번 반성해 볼 일이다. 보상이 꼭 돈으로만 주어지는 것인가?
앞에서 예로 들었던 김동건 아나운서나 김석봉 사장에게 주어진 돈 외에 보상받은 것이 없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들은 주어진 돈 이상의 정신적 보상과 만족감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 탁구에서 금메달을 딴 유승민의 경기를 보면서 점수를 올릴 때마다 선수보다 더 좋아하는 김택수 코치의 모습을 보았다. 제자가 잘 되는 것 이상 큰 보상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