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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해외 탈출, 얼마나 심각한가

자본탈출(capital flight)이란 어느 나라 경제에 끼여 돌아가던 국내외 자본이 어느 순간 다가온 손실 위험을 감지하고 단기간에 국외로 이동하는 것. 국내에서 각종 사업과 투자에 쓰이던 거액 자금이 말 그대로 갑자기 해외로 탈출하는 사태다. 최근의 자금유출은 더 높은 수익을 좇아 나서는 성격이 더 두드러져 보이며 해외투자자금의 국내로의 유입 역시 비슷하게 늘어나고 있으므로 최근의 자금유출을 대규모의 일방적 자본탈출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수가 위축되고 국내 자산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자금유출이 계속된다면 자본탈출 위기가 빚어질 수 있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매달 해외로 1조 원 빠져나가
올 들어 7월까지 내국인이 해외관광과 유학, 연수 등에 쓴 돈이 월평균 1조 원이 넘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내국인은 거액을 해외로 빼내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중국 칭다오 등지에서 부동산을 사재고 있다. 간접투자시장에서는 해외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 고수익을 좇는 국내 부동자금을 끌어들이기에 열심이다.
소비와 투자에 걸쳐 해외 씀씀이가 골고루 커지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 소비를 이젠 좀 자제해야 한다거나 정부가 나서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문 사설도 나온다. 이런 류의 우려 가운데서도 얼른 듣기에 내용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자본탈출 위기론’. 가뜩이나 내수가 침체한 마당에 국내에서 쓰여야 할 돈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니 이대로 가다가는 ‘자본탈출’ 위기가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주장이다.

자본탈출 위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지금과 같은 자본유출 기세가 자본탈출 위기를 걱정할 만한 정도인지 가늠해보자.

자본탈출, 아직은 아니다
자본탈출(capital flight)이란 어느 나라 경제에 끼여 돌아가던 국내외 자본이 어느 순간 다가온 손실 위험을 감지하고 단기간에 국외로 이동하는 것. 국내에서 각종 사업과 투자에 쓰이던 거액 자금이 말 그대로 갑자기 해외로 탈출하는 사태다.

보통 자본탈출은 특정국 경제에 쌓여 있던 국내외 자본이 전쟁이나 정권교체 같은 정치사회적 위험이나 해당국 통화가치의 급락,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같은 경제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단기간에 국외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유출되는 자본은 다소 수익성을 희생하더라도 안정성을 제일로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1980년대 초 중남미 각국에서는 자본이 대거 미국 등 선진권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경제위기가 가속됐다. 러시아 경제도 2000년대 초 자본탈출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자본탈출을 직접 겪었던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자본탈출이 나라 경제에 파괴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비교적 익숙하다. 지금 그런 위기가 다시 오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말한다면 사태를 과장하는 것이다. 자본유출 규모가 커진다는 것만 갖고 자본탈출을 논하기는 이르다. 어느 나라에서의 자본유출이 자본탈출이라고 부를 정도가 되려면 그 나라의 국제수지 가운데 자본수지, 자본수지 중에서도 투자수지 부문에서 자금의 유출이 유입에 비해 큰 폭으로 급하게 일어나야 한다.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자본탈출 위기를 만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위기를 만난 것이 아니다. 이런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그 전에 국제수지에 대한 이해부터 필요하다.

자본수지, 투자수지란 무엇인가
자본수지니 투자수지니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우선 ‘수지’ 개념부터 밝혀두자.
‘수지(收支, balance)’란 수입과 지출을 종합한 것이다. 그러니까 수지란 하나의 금전출입계산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흔히 가계나 기업이 장부에 수입과 지출을 적어 한 달 혹은 한 해 사이 돈이 얼마나 들고 났는지 따져보듯, 국가도 국민경제에 돈이 얼마나 들고 났는지 알려면 수지를 집계해봐야 한다.

국민경제의 수지란 그 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경제적 교류 혹은 거래를 하면서 발생하는 수지다. 이렇게 하나의 국가가 외국을 상대로 상거래를 벌여 얻는 수입과 지출 곧 국제거래에 따른 수지는 국제수지라고 부른다. 대외거래수지 혹은 국제거래수지(international balance of payments)라고도 한다. 전에는 종합수지 혹은 전체 국제수지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의 국제수지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집계한다. 한국은행이 한 해 동안의 대외거래를 집계한 결과 국제수지가 흑자로 나오면 우리 국민경제가 국제거래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국제수지가 적자면 반대로 돈을 잃었다는 뜻이다.
가계나 기업의 장부가 여러 가지 세부 항목에 걸친 수입, 지출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국제수지도 여러 가지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다. 자본수지니 투자수지니 하는 것들은 모두 국제수지를 구성하는 세부 항목들이다.

국제수지를 세분하면 크게 경상수지(經常收支 current accounts)와 자본수지(資本收支 capital accounts), 두 토막으로 나뉜다.
경상수지란 어느 나라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외국과 매매한 결과다. 상품수지, 서비스 수지, 소득수지, 경상이전수지 등 크게 네 개의 더 작은 부문 수지로 이루어진다.
상품수지는 외국에 상품을 수출해 번 돈에서 상품 수입 대금을 뺀 결과다. 전에는 ‘무역수지’라고 불렀다. 98년 1월 한국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을 따라 국제수지 편제를 바꾸면서 상품수지가 공식 명칭이 됐지만 아직도 흔히 무역수지라고 부르곤 한다. 상품수지에서는 서비스의 거래 실적은 제외한다. 서비스 수지를 따로 집계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수지는 외국과 서비스를 거래한 결과로 운수와 여행 서비스 수지 등을 합계한 것이다.

운수 서비스 수지는 한국 국적 비행기·배 등이 상품이나 여객을 실어나르고 해외 업자에게서 받은 운임을 모두 더하고, 한국 국적 여행객·화물이 외국 비행기·배 등을 이용한 대가로 외국업자에게 지불한 운임을 뺀 것이다.

여행 서비스 수지는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로 여행 와서 쓴 외화액을 더하고, 한국인 관광객이 외국으로 여행 가서 쓴 외화를 뺀 것이다. 통신·보험 서비스, 특허권, 기술 로열티 등 각종 서비스 사용료, 경영컨설팅 서비스 등 사업 서비스, 정부 서비스 부문의 수지도 모두 서비스 수지에 넣는다.

소득수지에는 국내에 본사를 둔 기업 등이 해외투자를 해서 얻은 이자를 더하고, 외국에 빚을 져 지불한 이자액을 뺀다.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가 국내로 송금한 금액은 더하고, 외국인 근로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일해 번 돈을 자국으로 보낸 금액은 뺀다. 급여나 투자소득의 수지도 계산에 넣는다. 국제수지 편제가 바뀌기 전에는 서비스 수지와 소득수지를 합해 무역외수지라고 불렀다.

경상이전수지란 상거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국제송금의 수지다. 외국인이 국내로
송금한 금액을 더하고,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인에게 보내준 금액을 뺀 것이다. 민간인·종교단체 등의 송금이나 기부금, 정부간 무상원조 등의 수지가 포함된다. 전에는 이전(移轉) 수지라고 불렀다.

자본수지는 자본거래로 생기는 수지다. 자본거래란 국내에 본점을 둔 기업 혹은 금융기관이 다른 나라 기업·금융기관과 서로 자금을 융통하는 거래다. 자본수지는 투자 목적의 자본거래 결과인 투자수지, 그리고 해외이주 등에 따른 자금거래로 발생하는 기타자본수지로 이루어진다.

경상수지는 흑자 행진중
이제 국제수지 개념을 대략 파악했으니 최근 국내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국제수지 가운데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지 짚어볼 수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내국인이 해외관광과 유학, 연수에 쓴 돈이 월평균 1조 원이 넘는다고 했다. 내국인이 쓴 해외여행, 유학, 연수비용은 모두 합해져 여행수지 부문의 대외지급액이 된다. 여행수지는 운수 서비스 수지 등 다른 서비스 부문 수지와 합해져 서비스 수지를 구성한다.

여행수지의 대외지급액은 올 들어 7월까지 누계 65억2071만 달러였다.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약 9억 달러가 늘었다. 연말까지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간 여행수지 대외지급액은 100억 달러를 훌쩍 넘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만 갖고 돈이 너무 많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던가 국민들이 국내에서 써야 할 돈을 해외에서 너무 쓴다고 지적하기는 이르다. 여행수지는 서비스 수지의 일부이고, 서비스 수지는 상품수지, 소득수지, 경상이전수지 등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여러 부문 수지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수지가 적자를 크게 내면 서비스 수지도 적자를 내기 쉽다. 그리고 서비스 수지가 적자를 내면 아무래도 서비스 수지와 상품수지 등을 합산하는 경상수지 역시 나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 실제는 어떨까.

최근 한국은행이 집계한 국제수지 동향을 보자. 올해 들어 7월까지 대외지급액 누계가 65억 달러에 이른 여행수지를 포함한 서비스 수지의 누적 적자가 41억6천만 달러, 상품수지 누적 흑자가 231억 달러이고, 서비스 수지와 상품수지 소득수지 경상이전수지를 모두 합한 경상수지는 164억 달러 정도 누적 흑자를 나타내고 있다. 경상수지는 7월에도 32억 달러 흑자를 보여 15개월 연속 흑자 행진중이다.

여행수지 대외지급액이 서비스 수지 적자를 유발하고, 서비스 수지 적자가 상품수지와 경상수지의 흑자를 갉아먹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나라 국제수지가 여행수지 적자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흔들릴 정도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서비스수지 적자폭은 올해 6월과 7월 사이, 작년 1~7월과 올해 1월~7월 사이 다소 줄었다.

더구나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한 여행수지와 서비스 수지의 적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지금처럼 글로벌 경제 시대에 상품이든 서비스든 흑자만 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자본수지 적자로 돌아
그렇다면 자본유출을 걱정할 만한 구석은 어디인가. 바로 자본수지다. 앞서도 말했듯이 어느 나라에서의 자본유출이 자본탈출이라고 부를 정도가 되려면 그 나라 국제수지 가운데 자본수지, 자본수지 중에서도 투자수지의 자금 유출이 유입에 비해 큰 폭으로 급하게 일어나야 한다. 투자를 목적으로 한 자본이 국내 경제사회적 리스크와 거시경제 건전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가장 빨리 움직이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본수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2001년(33억9000만 달러 적자)을 제하면 줄곧 흑자였다.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가 늘고 직접투자도 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5월부터 심상치 않은 흐름을 나타냈다. 5월에 16억5270만 달러 적자, 6월에 22억1580만 달러 적자, 7월에 11억8천만 달러 적자를 각각 기록한 것이다. 작년 초부터 7월까지는 42억 달러 정도 누적 흑자를 냈는데 올 들어 7월까지는 17억 달러 이상 누적 적자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자본수지 적자 행진에는 내국인의 해외투자 증가가 한몫 한다. 내국인의 해외투자액은 2000년 73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104억 달러로 급증했고 올 상반기에만 171억 달러 수준에 달했다. 이처럼 투자 활동에 관련된 자금의 유출이 전보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는 있지만 선진 각국과 비교해보면 결코 크지 않다. 경제규모(GDP)에 비춘 내국인의 해외투자액 비중은 지난해 1.7%로, 프랑스나 영국, 독일 등 선진 각국에 크게 못 미친다.

더욱이 최근의 자금유출은 ‘탈출하는’ 자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익성을 희생하더라도 안정성을 찾으려 하는 급박한 동기보다는 더 높은 수익을 좇아 나서는 성격이 더 두드러져보인다. 무엇보다 해외투자자금의 국내로의 유입 역시 비슷하게 늘어나고 있어서 최근의 자금유출을 대규모의 일방적 자본탈출로 평가할 수는 없다.

경상수지 흑자 범위 내 자본수지 적자는 환율 관리에 편리
정부도 최근의 자본유출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경상수지에서 흑자가 나는 한 적절한 규모의 자본수지 적자는 환율 관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커지면 국내에 달러가 늘면서 원화가치 상승 압력을 받게 되는데, 원화가치가 오르면 수출에 어려움이 생긴다. 수출과 경상수지 확대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원화가치 상승 압력을 피하기 위해 정부는 외평채 발행이나 한국은행 차입자금으로 달러를 사들이는 방법을 쓰는데 이렇게 하면 외평채 발행의 경우 조달금리보다 운용금리가 낮아 외평기금에 손실을 가져오는 부작용이 따른다. 한은 차입방식도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별도의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자지급 부담이 생겨난다.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데 따르는 비용을 줄이는 유력한 방안의 하나가 적정 규모의 자본수지 적자를 용인해 국제수지 밸런스를 조절하면서 원화가치 상승 압력을 줄이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개방경제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경상수지 흑자와 자본수지 적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다. 중장기적으로는 외환보유고가 충분하고, 투자환경이 개선되며, 거시경제적 안정성이 유지되는 한 해외로의 자본유출, 자산이전을 백안시할 일은 아니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 당장 자본탈출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수가 위축되고 국내 자산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산업 경쟁력이 후발국의 도전을 받고 우리 경제의 미래가 의심받는 상태에서는 마음을 놓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자금유출이 계속된다면 자본수지 적자구조가 굳어지면서 자본탈출 위기가 빚어질 수 있다.

최근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로 국내 금리와 국제금리간의 디커플링(De-coupling, 국내 금리는 낮아지고 해외 금리는 높아지는 쪽으로 방향이 엇갈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도 불리하다. 국내외 금리차가 커질수록 자본유출이 많아져 자본수지를 나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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