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맑은 가을, 학생들은 부푼 기쁨과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학급마다 학생들이 서로 의논하여 ‘주제가 있는 소풍지’를 정하여 확트인 바다를 보고 싶은 학급은 바다가 갈라지는 무창포로, 변산반도로, 채석강으로, 몽산포로 떠났다. 산을 좋아하는 학급은 산으로, 문화와 역사를 알고 싶은 학급은 이배재 문화센터, 국립서울과학관, 경기도민속박물관 등으로 떠났고, 봉사를 하고 싶은 학급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떠났다.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에게 다 소중한 일이지만 놀이동산이 아닌‘나눔의 집’을 찾은 1학년 학생들의 결정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나눔의 집’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에 의해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생존하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이곳으로 간 학생들은 봉사와 함께 생생한 역사의 이야기를 할머니들에게 직접 듣고, 역사관까지 보았으니 이 소풍이야말로 매우 훌륭한 산 공부가 되었으리라.
산 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나라를 사랑하자”는 백마디 말보다 뮤지컬 ‘명성황후’ 한 편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에게 최소한 1년에 4편의 공연은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환경교육을 위해서도 백 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직접 체험토록 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 장안고의 동아리 중 환경동아리 ‘장안패트롤’ 회원들은 ‘대부도 갯벌탐사’, ‘영화천 정화 및 감시활동’을 담당하고 교내 분리수거를 확실히 책임진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환경신문 <초록빛 소식>도 만들어 계몽활동까지 하고 있다.
도서관은 학교의 센터 역할을 한다. 매달 30종이 넘는 월간잡지가 진열된 도서관에서 정과수업이 이루어진다. 짧은 시간에 단 10페이지라도 읽으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그러다보니 도서관이 항상 붐비는 편이다. 그 결과 ‘도서부’ 동아리는 각종 상을 수상하고 있다.
그 외 심성수련, 다도, 진로탐색 프로그램, 성교육 프로그램, 1박 2일 등산 등으로 심신을 단련시키는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짬짬이 다 시도하고 있다.
네 활개를 펴고 활짝 웃으며 소풍을 떠나는 우리 학생들이 잠시나마 공부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노라니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매일 아침 8시에서 밤 10시까지 네모교실 속에서 외우기만 시키고 있다니… 가련한 학생들, 가슴 아프다. 작금의 이 교육풍토, 입시제도가 세계 속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인가?
세계는 요동치는 소리를 내면서 변화하고 있다. 현재도 인터넷 등으로 인해 많은 직업이 사라져 청년실업이 급증하고 있고, 2015년경에는 현재의 직업 중 90%가 없어진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대형 할인매장도 하나둘씩 문을 닫는다니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20% 대 80%의 사회가 급기야는 부유한 5%의 집단과 95%가 가난하게 사는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이 험난한 21세기에 적응할 경쟁력 있는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때다.
<한국일보> 2월 19일자 ‘무역흑자 - 4분의 1을 유학비로 쓴다’는 자료 분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교육에 기대를 걸지 못하고 너도나도 조기 유학을 보내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의 교육정책에 문제는 없는가? 우리의 교육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뒷걸음을 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 우리의 교육을 보고 책상 위에서 외우기만 시킨다고 ‘책상 위의 종이호랑이’라고 하였다.
처음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공부 외에 이런저런 활동을 넣으니 교사들은 많은 반대를 하였다. 물론 제자를 잘 키워내겠다는 의지이고, 학부모의 요구 또한 그럴진대 교사의 입장에서 무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문계 고교 역시 학과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입시공부도 시켜야 하고, 사고 작용을 자극하여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여는 활동도 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면 머리의 회전이 잘 되어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부에 임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 오랜 시간 앉아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 속에 공부를 해야 하는 분명한 목표, 즉 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이 학생들의 가슴에 가득차서 그것이 열정으로 나올 때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다. 공부하라고 반복해서 잔소리 하는 것보다 정신을 깨우는 교육이 더 먼저인 것이다.
자신이 간절히 생각하는 구체적인 미래상으로서의 비전, 자신이 가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슴 속에 심어 준다면, 그리고 그것을 향한 행동목표까지 일깨워 준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심취할 것이다.
자신을 경영하고 자신의 가치를 알고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여는 사람이 되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을 하는 것이 우리 교육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