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공교육화를 향한 국민 염원의 산물인 유아교육법이 7년여를 표류하다가 2004년 1월 8일에 통과되었다. 그런데 유아교육법이 통과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발표되지 못하고 있어 유감이다. 그 이유는 거대한 공룡 같은 이익집단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국회에서, 더욱이 매서운 겨울 추위를 온몸으로 막아가며 여의도에서 토해냈던 우리의 함성은, 결국 우리나라 유아들의 교육과 국가인적자원 개발이라는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어렵게 이뤄낸 유아교육법을 가로 막고 있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우려와 분노를 금치 못한다.
유아들을 위한 진정한 공교육과 보육은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우리의 임무이다. “만 5세아 무상교육비를 학원에도 지원하라”는 주장은 일반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시간을 끌어 유아교육계를 흔들어 놓고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며,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기본은 유아교육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이유를 열거해 본다.
첫째, 교육은 이익을 남기는 장사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이익집단이 돈벌이에 눈이 먼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때이다.
둘째, 저소득층 유아일수록 유치원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원측에서 말하는 바와는 달리 저소득층의 유아들은 비싼 학원비를 내며 기능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저렴하면서도 환경이 우수하고 질적 수준이 높은 국공립유치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만 5세아 73% 이상이 유치원과 보육시설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실태 조사에서 나온 사실이다.
셋째, 원칙을 지켜야 한다. 원칙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 교육부, 정부가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 법 체계상 유치원은 학교이며 유아교육법에 의해 운영되는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모법에도 없는 학원 지원 관련 조항을 넣고 싶어 안달하는 일부 국회의원들, 눈치만 보는 교육부 관계자들, 사교육비 경감을 부르짖던 정부 관료들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넷째, 학부모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자식들을 더 이상 학원으로, 과외로, 학습지로 내몰아 기계적인 아이들로, 똑같은 물건처럼 계속 찍어 낼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국민의 혈세로 사설학원의 배를 채워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답지 않은 교육은 설 자리가 없도록 감시하고, 지적하고, 건의해서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할 때이다.
다섯째, 제대로 된 교육시설을 늘려야 한다. 만 5세아 23%에 해당하는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우리가 찾아주어야 한다. 왜 정부는 이처럼 유치원교육을 방치해 왔는가. 학원들이 몇 십만 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단 말인가.
지방의 어려운 공립유치원은 지역별로 한 곳에 모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 체제를 마련하고, 대도시에는 학부모들이 그토록 원하는 공립유치원을 지금이라도 계획적으로 세워나가는 방법을 연구한다면, 사교육비는 유치원에서부터 바로 잡혀 몇 년 안에 유아교육은 물론 대학교육까지도 정상화될 것이다.
여섯째, 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 평가인정제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교육의 질이 높은 유치원은 살아남고, 그런 유치원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길만이 우리 아이들이 세계에 나가 뒤지지 않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일곱째, 종일반 교사를 반드시 배치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들의 증가 추세로 가정에서 담당하던 교육과 보육은 이미 유치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공립유치원에서는 ‘Edu-Care’라는 이름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종일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기대로 잘 운영되고 전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다수 지방의 공립유치원 교사들은 종일반을 혼자 담당하고 있다. 이는 유아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다.
종일반 교사를 반드시 배치하여 부모에 버금가는 사랑으로 질 높은 교육과 보호를 제공토록 해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여성부는 유치원 교사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짓밟으려는 의도를 밝히기 바란다.
학부모는 안심하고 유아들을 유치원에 맡기고 사회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고, 유아들은 제대로 된 교육과 보호를 받으며, 유치원 교사는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종일반 배치기준은 반드시 원안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는 참여정부답게 전임 교육부장관이 잘못된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정정당당하게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정책의 기본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땅의 아이들을 위해서, 학부모들을 위해서, 제대로 교육하기를 열망하는 교원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당당하게 나서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