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울산 지역의 암각화 두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반구대암각화는 각종 동물상을 중심으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고, 천전리암각화는 추상적인 기하하적문양이 돋보인다고 말씀드렸지요. 이번 호에서는 우리나라 암각화의 대세랄 수 있는 방형기하문 암각화를 찾아갑니다.
‘방형기하문’이란 네모모양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말합니다. 그 형태는 지역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상하는 직선, 좌우는 안쪽으로 휘어진 곡선형이며 전반적으로 사다리꼴 형태입니다. 내부에는 가로 혹은 세로로 선이 몇 줄 그어지고 둥근 구멍을 파 놓기도 합니다. 이 바위구멍은 성혈(性穴)이라 하여 여성을 상징한다고 보며 풍요, 다산, 재생의 의미를 지닙니다. 외곽선에는 머리카락처럼 생긴 가는 선을 짧게 나타내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이 기하문을 일컬어 무복(巫服)을 입은 샤먼을 형상화하였다 하여 패형(牌形)암각화, 시베리아계열 암각화에서 보이는 신면(특히 태양신)으로 보는 신상(神像)암각화, 방패와 같은 모양에서 방패형암각화, 석검의 손잡이 부분에서 유래하였다는 검파(劍把)형암각화 등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이 글에서는 생김새만 따서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방형기하문이라 기술합니다.
이 독특한 기하문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우리로서는 선사인들의 생활상과 신앙관, 예술의식 등을 단지 추측만 할 뿐 비밀을 풀기는 아직 요원합니다. 우주여행을 하는 이 시대에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라 하겠습니다. 인류 최초의 도구이자 외경(畏敬)의 대상이었던 돌에 새겨진 이 수수께끼는 ‘우매한 현대인들아, 내가 남긴 문제 좀 풀어봐라, 모르겠지? 메롱!’ 하며 우리들을 놀리듯 합니다.
방형기하문의 본고장 고령 일대 암각화
우리나라 방형기하문의 시작은 고령 양전리암각화에서 시작합니다. 1970년에 발견되었지만 반구대와 천전리암각화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하다 199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암각화들이 발견되면서 그 위상을 인정받습니다. 현재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알터암각화’는 낙동강의 지류인 회천과 인접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이 낮고 왼쪽이 높게 생긴 미끈한 바위 면에 방형기하문양과 동심원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방형의 아랫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에 머리카락과 같은 짧은 선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였고 윗부분에는 ‘U’자 형으로 바위를 파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문양은 점차 머리카락을 모양의 짧은 선 부분이 간략화 되고 생략되어 가는 양상으로 새긴 것으로 보아 이곳의 것은 시대가 앞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곳의 동심원은 함안 도항리나 천전리암각화와 같이 태양신을 묘사했다고 봅니다.
이곳과 가까운 안림천변 안화리에도 암각화가 있습니다. 양전리 것에 비해 소규모로 태양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기하문 또한 양전리 것과 유사합니다.
울산과 고령의 암각화에서 보았듯 우리나라 암각화가 위치한 곳은 하천과 밀접합니다.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암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100여 미터 떨어진 하천가에 있었는데 거북을 빼닮은 길한 형상이라 마을 입구에 모셔둔 것입니다. 거북 등에 해당하는 부위에 기하 문을 새기고 가로줄을 그어 위아래에 각각 두 개의 성혈을 조성했습니다. 선사시대에도 거북모양의 물상은 길한 것이었나 봅니다. 거북을 닮은 반구대에 암각화를 새겼고 이곳 거북을 닮은 바위에도 역시 암각화를 남겼으니까요.
태양신을 맞는 포항 일대 암각화
포항이란 도시는 세계적인 제철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공장은 기계가 있는 곳이죠? 그래서 그런가요, 포항에는 ‘기계’라는 행정구역이 있습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이지요. 물론 한자가 다르니 그 의미도 다르겠지만 이렇듯 재미있는 지명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특히, 전라남도 쪽에 가면 대구면, 마산면, 부산면 등의 지명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기계면 인비리에는 보기 드물게 석검 형태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논 한가운데 모인 세 기의 바위 중 제일 키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방형기하문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바위들은 생김새로 보아 고인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원래는 석검의 끝부분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고 하는데 논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바위가 옆으로 누웠다고 합니다. 석검이 두 점, 맨 아래에 석촉 형태의 암각이 한 점 새겨져 있습니다.
맨 윗부분에 새겨진 석검의 경우는 이중선으로 나타나 아마도 칼집을 나타낸 듯합니다. 여수 오림동에서 발견된 암각화와 함께 보기 드문 경우라 하겠습니다.
석검 형태의 암각화는 방형기하문 형태를 검파형암각화라고 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석검의 칼자루 부분이 방형기하문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방형기하문이 검파형암각화라고 학계에서 의견일치를 본다면 이곳 암각화는 검파형암각화의 시원이라고 봐도 무난하겠죠?
흥해읍 칠포리암각화는 곤륜산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암각화가 분포해 있습니다. 이곳이 위치한 영일만 일대는 해(태양신)를 맞는다는 뜻이니 태양숭배사상이 지배했던 선사시대에 이곳은 특히 신성한 곳이었나 봅니다. 또한 곤륜산은 전설의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는 곳이고 마시면 불사신이 된다는 강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지상의 낙원이 아니던가요.
칠포해수욕장으로 흐르는 곡강천 인근에 규모면에서 으뜸가는 성혈바위가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칠성바위라 부르는데 바위 정상부뿐만 아니라 곳곳에 성혈을 파두고 정상부에서 아래로 바위 전체를 죽죽 파내어 온통 골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바위는 다른 곳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이 일대가 성혈과 암각화 천지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일대 암각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소위 곤륜산 ‘가’지구로 서북쪽 기슭 3부 능선의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모인 암면 네 곳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하문의 크기도 대규모로 위 길이가 96센티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길쭉하게 생겨 흙에 덮여있는 바위 면에는 여근암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곤륜산 ‘나’지구는 칠포2리 인근 바닷가에 위치한 범선 레스토랑 옆 계곡 일대입니다. 아쉽게도 곤륜산 일대에 대규모 산불이 난 후 나무더미를 계곡으로 모아 방치해 두어 접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불 덕분에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암각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별자리에서 따왔을 거라는 윷판형 암각화의 흔적도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지를 불태우는 엄청난 재앙 속에서 몸서리쳤겠지만 돌이라서, 바위라서 화마를 뿌리치고 살아남았습니다. 돌은 선사와 현대를 잇는 힘입니다.
선사도시 경주의 암각화
경주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도시입니다. 하지만 선사시대 암각화도 볼 수 있는 선사도시이기도 합니다. 금장대암각화는 형산강 수면위에서 약 15미터 높이에 있는 암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조선시대 금장대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암각화로 가기 전 만나는 산소에 초석자리가 남아 있지요.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면 앞으로는 제의공간으로 여겨지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서 경주시내를 바라보는 전경은 가히 일품인데 옛사람들은 ‘금장낙안(金丈落雁)’이라 하여 경주팔괴의 하나로 일렀습니다.
이 암각화에는 방형기하문은 물론이고 동물의 발자국, 꽃처럼 묘사한 원형다공문, 여근, 인면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특히, 미완성 형태의 방형기하문이 한 점 보이고 있는데 그 형태가 두 눈(성혈)을 말똥말똥 뜨고 바위 면에 붙어있는 매미와 같습니다. 현재 육안으로 잘 보이는 암각화는 ‘V’자로 꺾인 주암면의 왼쪽 암면 좌측 끝에 모여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역‘V’자형 바위 면에 방형기하문 여러 점과 여근형상 한 점, 동물 발자국 두 점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바위 면은 지의류(地衣類)가 퍼지면서 백화현상마냥 탈색해가고 있고 균열조짐까지 보여 안타깝습니다.
그런 바위 면에 안타까운 눈짓을 주고 시원하게 펼쳐진 형산강 너머 경주분지를 내다보다 잠시 눈을 감습니다. 이제부터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새벽부터 금장산 아래 강가는 분주했다. 며칠 전 제사장이 하늘신을 모실 제의 장소로 이곳으로 결정했고 드디어 오늘 신을 부르는 바위그림을 새기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부족에서 제일 솜씨가 좋은 청년들 몇이 제사장으로부터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치른 후 바위를 타고 올라와 바위 앞에 서 있다. 긴장했을까. 그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다. 동경을 만지작거리는 제사장은 태양신이 왕림하길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벌판을 비추자 제사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동경 빛이 눈부시다. 부족원들은 강 아래서 엄숙한 침묵으로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이윽고 그림 한 점이 새겨지고 제사장은 신에 대한 의례에 여념 없다. 방패처럼 든든하게 태양신이 이 마을을 지켜주십사 하는 기원이었다. 이번에는 바위를 쪼아내 동물의 발자국을 새겼다. 더 많은 수확을 위한 기원이었다. 이어서 종족 번영을 위한 성혈을 새겨 넣었다. 얼마 전 다른 부족의 침입으로 피해가 극심했던지라 이들의 제의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바람이 있다."
안심리암각화는 경주 내남면 안심리 광석마을에 있습니다. ‘광석(廣石)’이란 이 일대에 고인돌 덮개돌과 같은 넓은 돌이 많아서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암각화가 새겨진 2미터 넘는 길이의 바위를 고인돌의 덮개돌로 보기도 합니다. 현재 바위의 정상부에 성혈이 뚜렷이 확인될 뿐, 바위 동쪽 윗부분에 집중된 방형기하문은 육안으로는 극히 일부만 확인됩니다. 이곳에도 지의류의 횡포가 말이 아닙니다. 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사람에 의해 훼손된 부분도 보입니다. 마을 이름은 ‘안심(安心)’인데 문화재 관리는 정 반대로 불안(不安)하기 그지없습니다.
암각화와 부처님의 만남-영주 가흥동암각화
시루떡을 옆으로 뉜 듯한 길쭉한 암벽에 자리하고 있는 이 암각화는 마치 새끼 게들이 영주시내를 흐르는 서천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의 암각화에 비해 많이 도식화되어서 암각화 중에서 후대에 속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로선만 나타나고 내부에 성혈이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위치에 암각화가 세 점 나란히 자리하고 보니 세로선과 세로선이 만나 원을 만들어 게의 몸체를 이룬 듯하고 두 줄로 그어진 내부의 가로줄이 게의 다리를 나타낸 듯합니다.
특히 이 암각화가 있는 암벽에는 보물 제221호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이 자리하고 있고, 지난 2003년에는 6월 집중호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마애여래좌상이 함께 있어서 선사시대부터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애삼존불이나 마애여래좌상이나 불상의 눈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파져있습니다. 돌부처의 눈이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중들의 그릇된 믿음의 결과라 아쉽기도 하지만 눈과 코마저도 민중들에게 과감히 내던져준 부처의 자비가 돋보인다 할 것입니다. 다른 암각화에서는 성혈이 흔히 보이는 데 반해 이곳의 성혈은 기하문 위쪽 한 곳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들을 바라는 민중들이 불상의 눈에 성혈을 새긴 모양입니다. 그들의 기자신앙은 곧 생산과 번식을 의미하는 성혈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Out of Altai, Out of Korea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에서 찾는 소위 ‘out of Africa’ 가설에 의하면 한국, 일본, 티베트, 몽골, 에스키모, 인디언들은 유전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일하답니다. 이 북부아시아인들은 바이칼호 근처에서 살다 빙하기를 거치면서 이곳이 거대한 호수로 변하자 남으로 이동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바이칼호 일대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도 이곳을 한민족의 시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암각화가 알타이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걸작이건, 이 지역 토착세력의 걸작이건 관계 없이 방형기하문양만큼은 ‘한국형’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장방형의 기하문양은 우리 땅에서만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방형기하문 암각화는 ‘out of Altai’가 아니라 ‘out of Korea’가 아닐까요? 우리 암각화의 정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지금도 흔한 바위 한 곳에서 ‘나야 나, 내가 암각화야’하며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놈들이 있습니다. 아울러 매일 보는 아이들에게서도 숨어있는 재능과 장점을 발견해내는 혜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