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란 거래 내용이 세무 당국에 포착되지 않아 세금 부과 대상에서 빠지고 국민경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경제 활동을 말한다. ‘공식경제(official economy)’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지하경제가 커지면 정부로서는 정당하게 거둬들여야 할 세금을 걷지 못한다.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규모, 증가 이유, 줄여나갈 대책을 알아본다.
최근 지하경제가 부쩍 커져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나라 경제를 더욱더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하경제란 무엇일까, 그리고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지하경제란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란 거래 내용이 세무 당국에 포착되지 않아 세금 부과 대상에서 빠지고, 국민경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경제 활동을 말한다. ‘공식경제(official economy)’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는 경제 활동이라고 해서 다 불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파출부가 노임을 받는 활동은 세금을 내지 않는 한 지하경제에 속하지만 불법은 아니다.
그래도 지하경제에는 불법 활동의 비중이 크다. 밀수, 마약 제조나 판매, 매춘, 사설 도박장 영업, 불법 부동산 투기 같은 것이 가장 전형적인 지하경제 형태이기 때문이다. 뇌물이나 촌지라는 이름의 음성적 자금 거래도 불법 지하경제의 일부다. 기업 활동과 관련해서는 비자금이 불법 지하경제의 대표적 형태로 손꼽힌다. 비자금이란 출처와 용도가 가려진 돈을 말한다. 보통 기업들이 회계장부에 수입액을 실제로 번 것보다 적게 기록하거나 지출 액수를 부풀려 장부 밖으로 빼돌려 조성한다. 장부에 없는 돈이니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고 주로 뇌물이나 촌지에 충당하므로 부정부패를 낳는다. 그렇기는 해도 지하경제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소비를 늘려 경제에 좋은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가 물건을 팔아 소득을 얻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는다고 하자. 말하자면 탈세를 하는 것인데, 해당 자영업자로서는 세금으로 나가지 않는 만큼 소득이 늘어 소비를 더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지하경제로부터 득을 보는 이들은 탈세를 하고 국민경제의 성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탈세와 지하경제가 커지면 정부로서는 정당하게 거둬들여야 할 세금을 걷지 못한다. 자영업자들의 탈세가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정부의 세수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생긴다. 세수가 부족해지면 정부는 흔히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한다. 세금을 더 내는 사람들로선 소득이 줄어드니 그만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비가 줄고, 소비 위축에 따라 기업의 판매가 줄고, 경기가 위축된다.
결국 지하경제가 커지면 부분적으로는 탈세자들의 소비를 늘리는 효과도 있지만, 공식 부문 경제로 자금이 흘러 국내 경제 자원이 생산적으로 쓰이는 것을 막고, 소비 증가 → 판매 증가 → 생산 및 고용, 투자의 증가 → 소비와 판매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막아 국민경제의 성장세를 낮추고 공식 부문 경제를 좀먹는다. 그 결과는 공식 부문 경제의 성장률 하락으로 집약된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 얼마나 되나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밝힌 연구에 따르면, 지하경제 규모까지 포함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실제보다 훨씬 높아진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4.8%로 추정되는데, 지하경제를 감안한다면 5.4%로 올라선다. 2003년에도 우리 경제는 전년 대비 3.1%의 저성장을 보였지만 지하경제를 합하면 5.1%로 훌쩍 뛴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보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997년 이래 지하경제로 인해 연평균 1.4%p씩 줄어들었다. 근년 국내 경제가 연평균 3%대의 저성장 늪에 빠진 데는 지하경제가 커진 탓도 한몫 단단히 한 셈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종합투자계획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 계획이 경기 부양 효과를 낸다면 약 0.2~0.3% 가량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데, 지하경제의 경우 경제성장률을 1%p 이상 줄였다는 것이므로 지하경제가 경제성장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2003년 현재 150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 2003년 국내총생산(GDP)의 21% 정도 규모다. 1998년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약 16.6%로 선진국보다 약 1.6%p~7.7%p 높다. 미국은 GNP 대비 지하경제 규모가 1970년 2.6~4.6%에서 1998년 8.9%로 약 168% 증가했고,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은 지하경제 규모가 1960년대 GNP의 5% 미만에서 1998년 들어 GNP의 약 13%를 넘는 수준이다.
정확한 규모 파악이 어려운 지하경제 속성상 대략적인 추산으로는 2000년 이후 미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의 경우 지하경제의 GDP 대비 비율이 10% 미만이고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홍콩 등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필리핀, 태국, 멕시코, 페루 등은 지하경제 비중이 매우 커 GDP 대비 50% 안팎인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지하경제가 커지는 이유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약 14%에서 19%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다 1993년 이후부터 규모가 꾸준히 줄어 1999년 GDP 대비 16%대까지 됐다. 그러나 1999년을 기점으로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추세다. 지하경제가 감소했던 1994∼1999년 사이에는 금융실명제 도입, 외환위기, 코스닥의 IT 주식 붐(Boom)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94년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지하경제에서 움직이던 자금이 공식경제로 많이 유입됐고,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소비가 줄면서 주로 소비 부문에서 많이 움직이는 지하경제로의 자금 유입이 줄었다. 1999년 IT 붐으로 코스닥 시장에서 주가가 뛸 때는 지하경제 자금이 공식 부문인 주식시장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이 기간 동안 지하경제 규모는 약 18%에서 16%로 줄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03년 사이엔 지하경제 규모가 약 19.6%에서 약 21%로 증가했다. 한동안 줄어들던 지하경제 규모가 최근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편 경제정책에서 빚어진 부작용이 꽤 기여했다.
첫째, 지난 1998년부터 정부가 부동산 부양정책을 편 것이 지하경제 자금을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게 해 단기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1998년 이래 정부의 주택경기 활성화 정책은 간단(間斷)없이 이어졌다. 1998년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한 자금 지원 방안으로 국민주택 중도금 5조 6400억 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1999년엔 주택자금 지원조로 중도금 4조 원, 그리고 추가 지원금 1조 7522억 원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주택구입 자금 상환액에 대한 소득공제를 확대했고 주택구입 자금 대출 금리를 낮췄다. 2000년엔 11조 7000억 원 상당의 국민주택기금 지원 방안을 내놓았고 분양중도금 대출 한도를 올리는 한편 대출 금리는 내렸다. 지방 건설 활성화를 위해 사업비의 50%까지 지원하고, 재개발 조합원에게는 이주 전세금을 신규 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건설자금 융자 이율을 내렸다. 2001년엔 신축 주택 구입 때 양도소득세를 면제하며, 부산, 대구, 천안 등 6개 신시가지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1998년~2001년간에 걸쳐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가 약 23조 원에 달한다. 이런 부양책을 거쳐 전국의 지가는 2002년에 전년 대비 16.4% 올랐고, 서울 강남의 지가는 27.4%나 올랐다.
둘째, 역시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금융정책 당국이 금리를 내리고, 낮게 가져간 정책이 지하경제 자금을 공식경제로 흘러가는 길목을 막는 데 한몫했다. 1990년대 말 연 8~9%이던 실질 이자율은 지속으로 하락해 2003년 약 1.8%대로 떨어졌다. 일부 지하경제 자금은 정부가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재정지출을 늘려 주택 경기를 띄우는 것을 보고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지가 상승에 따른 단기 시세차익을 봤다.
셋째, 정부가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신용카드 발급 남발을 방치한 정책 등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면서 불법 사채시장을 키웠다. 신용카드 발급 남발은 신용불량자의 양산과 사채시장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지하경제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용불량자 수는 2000년 약 284만 명에서 2003년 약 370만 명으로 약 78.5%나 급증했다. 정부가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응한다며 2002~2003년 현금 서비스 한도를 줄이자, 돌려막기 등으로 신용불량을 면하려 했던 사람들이 대부업체나 카드 할인을 이용하는 사금융으로 몰리면서 이 기간에 사채시장과 지하경제는 규모가 한층 커졌다.
지하경제를 줄여나갈 대책은 최근 늘어나는 지하경제를 줄여나갈 대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정부가 진정한 의지를 갖고 단기적으로 경제이득을 취하려는 경제 주체들의 투기적 경제 활동을 근절해 나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장기적으로 지하경제의 양지화를 촉진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성장은 공식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전체 경제성장 정책을 수단 삼아 임시방편으로 부동산 시장 띄우기를 앞세우는 경기 대책은 자제해야 한다.
지하경제를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형평성과 효율성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부동산 투기는 이를 저해하므로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사금융 시장의 양지화와 관리감독 강화도 필요하다. 신용카드 남발에 따른 불법 사금융 시장 발달로 인해 지하경제 규모가 커진 예에서 보듯이 건전한 사금융 업체 양성화가 필요하고 불법 사금융에 대한 규제,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건전한 사금융 업체에는 과감한 세제혜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양성화 방안과 함께 고리대금업체에 대해서는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개혁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실업률을 줄일 목적으로 근로시간 감축이 추진되고 있는데, 그 결과 비정규직 근로자 고용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수(임시직+일용직)는 1999년 652만 9000명이던 것이 2002년엔 731만 9000명으로 약 12.1% 늘었다. 그 결과 실업률을 줄이는 쪽으로는 영향이 미미한 대신 불완전고용자들이 가난한 가계를 사금융에 의지해 메워나가는 성향은 높아져, 결국 지하경제가 더 커지는 결과가 빚어졌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는 축소하고, 노령인구를 위한 일자리 창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특히 노령인구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 인구 노령화로 인해 노령 노동자들의 지하경제 참여가 가속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지하경제 참여 억제를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더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고령자 일자리 창출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학생과 성인을 상대로, 지하경제를 타기(唾棄)하는 방향으로 경제 규범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탈세와 체납 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세금과 경제에 관련된 교육도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