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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기억을 서랍 속에 정돈하는 과정

인천 앞바다에서 가장 흔한 물고기가 망둥이이다. 망둥이 낚시는 기다리는 지루함이 없어 좋다. 갯지렁이를 낚시에 끼워 물에 넣으면 곧바로 문다. 낚싯대를 채 올리면 끌려 올라오다 도망치는 망둥이도 꽤 많다. 재미있는 것은 망둥이가 바늘에 입이 찢겼으면서도 이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금세 다시 미끼를 문다는 것이다. 이런 멍청이 같으니라고…. 기억력이 조금만 좋았어도 이렇게 잡혀서 올라오지는 않을 텐데….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기억은 어떻게 저장될까

망둥이를 보면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기억은 단편적인 경험을 체계적인 지식으로 저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망둥이는 기억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몇 초 전에 했던 실수를 되풀이한다. 반면 기억력이 뛰어난 인간은 실패의 경험을 되살려 더 잘하게 된다.

창의성도 뛰어난 기억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보가 서로 연관되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과학자가 젊어서 이룩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타는 이유는 기억력이 가장 좋을 때 창의성도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머리 회전 속도가 느려도 많은 것을 알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을 더 믿는다. 이런 사람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가운데서 필요한 정보를 꺼내서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느린지도 모른다.

기억은 어떻게 저장될까? 우선 기억은 순간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 세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부에서 집 근처 자장면집의 전화번호를 찾아보았다 치자. 책을 펼쳐 본 순간 숫자의 상이 뇌에 1초도 못 되게 잔상처럼 남는다. 이것이 순간기억이다. 우리가 만화영화를 볼 때 실제로는 끊어진 여러 장의 만화를 보는데도 마치 이어진 화면처럼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마음속에 전화번호를 외우고 번호를 누른다. 번호를 누른 뒤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번호를 기억한다. 이것이 단기기억이다. 다음 날 깨어나면 전화번호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만일 일주일에 한번씩 자장면집에 전화를 걸어 요리를 시켜 먹는다면 이 사람은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번호를 잊지 않게 된다. 이것이 장기기억이다.


기억 제조공장 - 해마

우리가 눈과 귀 등 오감을 통해 자극 받은 단기기억은 뇌의 원시적 부위인 변연계에 속하는 해마와 그 바로 옆의 편도체에 일시적으로 보관된다. 이 해마란 이름은 모양이 바다의 해마(海馬)와 닮았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해마는 크기가 새끼손가락만하지만 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해마와 편도체가 손상되면 손상되기 전에 한 일은 잘 기억하면서도 최근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학습도 할 수 없고 지식도 늘지 않는다.

편도체는 행복, 공포, 불쾌감 같은 감정을 맡아 동기를 부여하는 부분이다. 편도체를 없애면 사람은 전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감정과 동기를 만드는 편도체가 왜 기억에 관여할까?

감정이 기억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불쾌한 경험이나 자극, 공포의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경험, 한밤중에 산 속에서 맹수의 푸른 눈과 맞부딪친 순간, 첫 키스의 쾌감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 이런 일을 기억함으로 해서 다음에 비슷한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고 다음에 또 연인과 만나 그 쾌감을 반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감정은 기억 강화제이다. 따라서 기억은 차가운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또한 재미없는 공부를 기계적으로 할 때보다 흥미에 이끌려 하는 공부가 훨씬 오래 기억으로 저장된다.

해마는 단기 정보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한다. 해마는 뇌의 기억 제조공장이다. 해마에 단기기억이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시간은 불과 5분 정도이다. 5분 안에 단기기억으로 갈지 장기기억으로 갈지가 정해진다. 해마는 뇌에서 신경세포가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곳이다. 그만큼 가소성도 뛰어나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자란 쥐를 자극이 풍부한 곳으로 옮기면 쥐의 해마에서는 신경세포가 활발하게 만들어진다. 런던 시내 택시 운전사들은 운전 경력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해마의 뒷부분이 크다. 여러 군데를 다니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게 되는 택시 운전사는 많은 자극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해마의 특정 부위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단기기억 중 단편적 지식은 곧바로 기억에서 지워진다. 뇌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억 삭제 기능이다. 만일 중요하지 않은 단편적 지식을 모두 기억한다면 우리의 뇌는 기억 용량 초과로 결국 멈춰 버리고 말 것이다. 대신 중요한 지식과 경험은 축적됐다가 고등한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전두엽에 장기적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단기기억은 어느 정도의 속도로 지워질까? 독일의 심리학자인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100여 년 전 실험을 통해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이란 것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곡선에 따르면 암기한 단어는 네 시간 뒤에는 10개 중 5개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24시간 후에는 3∼4개, 또 48시간 뒤에는 2∼3개의 단어를 기억한다. 암기한 단어의 대부분은 잊혀지지만 머리 속에 살아 남은 몇 개의 단어는 비교적 오랫동안 기억된다. 에빙하우스는 망각 속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완만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공부를 할 때 되풀이해서 복습을 하면 망각 속도가 더욱 완만해져 더욱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기기억은 언제 장기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일까? 뇌는 잠자는 시간 동안 학습했던 내용을 정리한다는 이론이 가장 유력하다. 잠을 자면서 뇌에 입력된 정보를 정리하고 필요 없는 기억을 삭제하고 기억을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경험을 우리의 장기기억 시스템 속에 통합하는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잠을 잘 때 뇌에 새로운 신경 회로망을 만들어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다.


기억은 뗄 수 없는 관계

잠과 기억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하버드 대학 로버트 스틱골드 박사는 2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밤샘 공부를 한 사람과 공부를 한 뒤 잠을 잔 사람이 그 다음날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지 실험했다. 예상대로 충분히 잠을 잔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기억했다. 이처럼 잠은 장기기억의 형성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밤샘 공부는 시험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잠이 드는 순간 마치 불이 꺼지듯 의식이 멈추기 때문에 밤새 뇌가 쉬고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깨어서 활동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파가 발생하고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과 비 렘수면이 5∼7차례 반복된다. 특히 잠든 지 한 시간 반쯤 뒤 잠이 깊어졌을 때 시작되는 렘수면 때에는 깨어 있을 때처럼 톱니 모양의 뇌파가 나타난다. 또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 심장도 빨라지고 숨도 가쁘게 쉬고 혈압이 오르고 남자의 경우에는 발기가 된다. 잠을 잘 때 눈이 빙글빙글 도는 렘수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뇌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진다. 렘수면 때에 뇌교는 척추신경을 차단하고 대뇌와 시상하부 쪽으로 신호를 보낸다.

렘수면은 성인보다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서 훨씬 많이 나타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전체 수면 시간의 50%가 렘수면이지만 성인이 되면 렘수면이 20%가 되고 노인이 되면 더욱 줄어든다. 렘수면 상태에서는 꿈을 더 많이 꾸기 때문에 흔히 '꿈 수면'이라고도 부른다.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경험하고 습득하는 어린이가 꿈을 많이 꾸는 렘수면 시간이 길다는 것은 꿈과 기억이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말해 준다. 꿈의 기능에 대해 현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이론도 '기억과 학습 이론'이다. 이 이론은 꿈이 새로운 정보를 메모리 시스템 속에 짜 맞추면서 정서적 자극을 줄이는 동시에 다른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에 적응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즉 꿈을 꾸면서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은 그날 습득한 경험을 뇌가 정서적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다. 꿈은 단순히 렘수면 동안 발생하는 정신 활동의 부수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의견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색다른 경험을 한 날 꿈을 많이 꾼다. 특히 스트레스를 크게 받거나 또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그날 밤 강렬한 꿈을 꿀 가능성이 높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 때 불이 나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며 쫓긴다는 것이다. 이런 꿈은 며칠씩이고 반복되지만 결국 상처가 치유되면 희미해져 없어지게 된다.


따라 기억능력도 달라져

기억은 있는 그대로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따라 기억은 조작되기도 하고 쉽게 퇴화하기도 하며 전혀 없었던 일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언어의 간섭에 의한 시각 기억의 퇴화이다. 범행 현장에 있던 증인은 사건 직후 경찰에 불려가 범인의 얼굴을 설명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범인의 얼굴을 자꾸 말로 설명하다 보면 처음에는 또렷하게 기억하던 범인의 얼굴이 희미해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밝힌 인물은 미국 피츠버그 대학 심리학자 조너선 스쿨러 교수이다. 그는 증인의 기억을 오래 보존하려면 증인을 가만히 놔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쿨러 교수는 강도가 은행을 터는 비디오를 실험 대상자에게 보여주었다. 이어 절반에게는 강도의 얼굴을 말로 묘사하게 했고 나머지 절반은 쉬게 했다. 이어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준 결과 쉰 사람들의 3분의 2는 강도의 얼굴을 구분한 반면 얼굴을 묘사해야 했던 사람들은 3분의 1만이 강도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포착한 얼굴을 말로 설명하는 의식적 활동을 하다 보면 오히려 기억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사실 얼굴 생김새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니 기억이 희미해진 것이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 티모시 퍼펙트 교수는 귀로 들어 기억한 것도 언어로 묘사하게 하면 혼란스러워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퍼펙트 교수는 녹음한 음성을 실험 대상자에게 들려주었다. 실험 대상자 절반은 조용히 있게 했고, 나머지 절반은 음성의 특징을 열심히 쓰게 했다. 그 결과 조용히 있던 사람이 녹음된 목소리를 훨씬 잘 기억했다.
따라서 심리학자들은 경찰이 증인을 인터뷰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턱대고 불러다가 범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설명하라고 하는 것보다 쉬거나 음악을 들려줘 증인의 기억을 보호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기억에는 오히려 '침묵이 금'인 것이다.


세뇌가 얼마든지 가능한 기억

기억은 광고나 강압에 의해 얼마든지 주입되거나 조작될 수도 있다. 세뇌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미국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박사가 2001년 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총회에서 발표한 '벅스 버니 사례'는 기억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기억에 관한 저서를 모두 19권이나 쓴 전문가이다.

로프터스 교수는 대학생들에게 디즈니랜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워너 브라더스의 만화영화 주인공 벅스 버니(토끼)를 선전하는 '디즈니랜드의 광고'를 보여준 뒤 어렸을 적 디즈니랜드에 갔던 기억들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러자 이들 중 36%가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만났다는 대답을 했으며, 상당수가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쓰다듬었다던가 포옹을 했다던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자세한 경험을 얘기했다는 것이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수많은 만화영화의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지만 벅스 버니는 만날 수 없다. 벅스 버니는 워너 브라더스사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벅스 버니를 끼워 넣은 '디즈니랜드의 광고'를 보여주자 사람들은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만났다고 대답했다. 이는 기억이 얼마든지 영화 같은 수단에 의해 조작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벅스 버니 사례는 사람들 가운데 약 3분의 1은 허위 기억의 인위적인 주입을 통해 전혀 겪은 일이 없는 경험을 스스로 했다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프터스 교수는 경찰 수사관이 암시나 거짓말을 통해 혐의자에게 하지도 않은 범행을 자백하게 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문하는 사람은 피의자의 마음에 어떤 암시를 심어주는 일이 없게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프터스 박사는 정신적 외상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에 관한 기억도 조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의 동료 교수들과 일단의 러시아인들과의 대담을 통해 1999년 모스크바 폭탄 테러 사건과 9.11 테러에 관한 조작된 사실을 생생하게 주입시키자 나중에 이들 중 12%가 허위 사실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더라는 것이다. 로프터스 박사는 또 언론 매체가 지니는 강력한 암시의 힘도 시청자들에게 허위 영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얼마 전 워싱턴 연쇄 저격 사건이 발생했을 때 흰색 밴에 관한 보도가 나가자 사람마다 흰색 밴을 보았다는 신고가 들어온 사실을 지적했다. 기억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로프터스 박사는 지난 25년 동안 모두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로 볼 때 '기억이란 쉽게 조작할 수 있고, 깨지기 쉬우며, 되살린 기억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한다.

미국 윌리엄스 대학 사울 카신 교수팀이 벌였던 실험도 기억이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연구팀은 컴퓨터를 일부러 고장 낸 뒤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가 고장내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고 우기자 상당수가 혐의를 인정했고, 몇몇은 자신이 어떻게 하다가 고장을 냈는지 설명까지 했다. 주위의 압력이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의도적으로도 망각할 수 있어

사람은 의도적으로도 특정한 기억을 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주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고도 이를 잊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이를 계속해서 악몽처럼 기억한다면 이 사람은 정신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처럼 처참한 상황을 겪었거나 집단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우라 하더라도 모두 정신질환자가 되지 않는 것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우리의 뇌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프로이드가 성욕이나 학대의 경험과 같은 기억은 의도적으로 망각돼 무의식의 세계에 자리 잡는다고 설명한 것과도 궤도를 같이 한다. 하지만 이 무의식은 이후의 삶에 지속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경우 꿈이나 최면으로 이 기억들을 되살려 치료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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